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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의 일기: 마로니에(marronier)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25. 02:14
# 수업을 꽉꽉 채워서 들은 걸 빼면 한 게 별로 없는 하루다. 과욕을 부리지 않으려고 목요일에 청강하던 프랑스어 수업 두 개 중 하나만 선택/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오늘은 수업을 둘 모두 들어갔고 그 사이에는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다. 오전에는 어제 읽다만 논문의 나머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날씨도 퍽 좋아졌고 부쩍 잎이 올라온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센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센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려 약속을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나는 어제 식물원 일대를 산책한 데 이어 오늘 점심에 잠시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한 게 소소한 위안이 되었다.
# 지난 주말 에페흐네에서 랭스까지 트레킹을 한 여파가 한 주 내내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피로감이 누적된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도 지난 주말은 답답한 마음에 조금 무리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지난 주 이후로 한 단계 말문이 더 트인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떤 발표를 하든 그리 긴장한 적이 없는데, 지난 주 두 차례의 발표는 정말 너무나 긴장이 되었다. 언어도 언어지만 그렇게까지 긴장한 까닭은 여기가 외국이라는 점 말고는 찾지 못하겠다. 어쨌든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나니 완벽한 문장이든 그렇지 않은 문장이든, 영어든 프랑스어든 일단 뱉을 수 있게 되었다(;;)
# 저녁 HB의 프랑스어 수업에서 서로 돌아가며 프랑스에서 거닐기 좋은 장소를 하나씩 소개한다. 나는 페흐라셰즈를 소개했고, 다른 누군가는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 몽수히 공원을 말한다. 그런데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몽수히 공원이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라는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몽수히 공원은 파리 시내의 다른 공원에 비해서는 딱히 특징적인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닌데, 수업이 끝나고 영화 이미지를 찾아보니 영화 속에 몽수히 공원의 풍경이 나타나기는 나타난다. 매주 꼭 한두 번은 찾게 되는 몽수히 공원이 영화 속에 나오던 곳이었다는 게 어쩐지 신기했고, 아직 가보지 않은 파리의 유명 공원—몽소 공원이나 뷔트 쇼몽 공원—도 어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 HB는 개인적으로 12구의 쿨레 베흐트(la coulée verte)를 파리 시내에서 걷기 좋은 길로 소개해주었다. 어떻게 쿨레 베흐트를 언급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수 있냐는 HB의 반응이지만, 학생들은 이미 서로 가장 독특한 장소를 소개하려고 저마다 작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쿨레 베흐트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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