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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의 일기: 총검과 피—삶과 죽음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26. 18:12
# 개인적으로 옷가게에 들락거리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파리 시내를 다니다보면 여기가 패션의 도시라는 걸 실감하고 이들의 패션—옷차림이든 가게든—을 관찰할 때가 있다. 지켜보다 보면 왜 여기서 성공한 옷들이 해외에서 상표를 달고 날게 돋힌 듯 팔리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하다. 이미 국내에 잘 알려진 브랜드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일단은 브랜드가 너무나 다양하다. 이름 모를 개인 부티크들도 어떻게 마진을 남길까 싶을 정도로 자체적으로 고급스런 옷들을 진열해 놓는다. 사실 이렇게 옷을 만드는 곳들은 그냥 옷만 만드는 게 아니라, 옷과 어울리는 신발과 각종 악세사리까지 같이 구비해 놓는데 이걸 어떻게 가게 한 곳에서 해낼 수 있는지 원가 책정 방식이나 제작 과정이 궁금해질 정도다.
여하간 샹젤리제는 말할 것도 없고 생제르망, 마레, 생토노레 등 파리의 번화가들 자체가 의류점으로 가득하다보니, 꼭 쇼핑을 목적으로 밖을 나서지 않더라도 길을 걷다보면 이게 여기 있었구나, 하는 가게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만큼 시장이 형성이 되어 있는데 좋은 브랜드가 나오지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인 것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좋은 물건이 나오려면 그 이전에 좋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 이곳에서 파리 16구는 하나의 고유 명사로 쓰인다. 특히 프랑스어를 배울 때, 부르주아처럼 연음을 처리한다든가 부르주아처럼 억양을 늘린다든가 부르주아처럼 장식적인 어휘를 쓴다든가 할 때 비유적으로 꼭 언급되는 게 파리 16구다. 여기서 16구는 경제적인 차이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계층으로써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곳에 유학 와 있는 학생 중 16구에 사는 친구들을 몇몇 보았지만, 이들이 토박이 파리지앵이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16구 주민의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 공용주방을 쓰다보면 심심찮게 사라지는 식기나 재료가 생긴다. 사라질 일이 잘 없는 세제나 수세미 같은 걸 빼면 학생들도 점점 개인 식기를 쓰게 된다. 나도 아무래도 접시가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벼룩시장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방브 벼룩시장보다는 가보지 않은 생투앙 벼룩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생투앙 벼룩시장은 파리의 남쪽에 위치한 방브 벼룩시장의 정반대인 파리 북쪽 포흐트 드 클리냥쿠흐(Porte de Clignagcourt) 살짝 바깥쪽에 위치한다.
버스를 타고 파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생투앙 벼룩시장으로 온 걸 조금 후회했다. 잠시 뉴델리의 풍경이 눈앞을 스쳐지나 간다. 무질서하고 무방비하게 늘어선 허술한 집들을 보면서, 치안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늘 들른 도핀 시장(Marché Dauphine)과 베흐네종 시장(Marché Vernaison)은 주변 지역과 교묘하게 격리되어 있어서 안전한 편이다.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탔더니 목이 타서 카페에 들어가 크루아상에다 커피를 마시며 기운을 충전했다. 이곳도 관광객에게 알려진 곳인 모양으로, 특히나 독일어가 많이 들리고 일본인도 심심찮게 보인다.
# 길 위 가판대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방브 벼룩시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모두 점포에서 물건을 판매한다. 취급하는 물건도 조금 달라서 방브 벼룩시장은 식기나 작은 골동품 위주였다면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취급하는 물건들은 하나의 종합시장이라 봐도 될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벼룩시장이라고 하기에는 가게들이 대체로 대형인데다 중고품보다 신제품을 더 많이 취급하는 가게들도 보이고, 방브 벼룩시장에 비해 비교적 값나가는 물건들을 파는 편이다. 또한 아무래도 점포를 두고 물건을 팔다보니 여러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팔기보다 일본 골동품이면 일본 골동품, LP판이면 LP판, 피규어면 피규어 같은 식으로 가게마다 컨셉이 있다. 간단하면서도 개성있는 식기를 물색하러 나온 나로서는 찾는 물건과 맞지 않는 가게가 많아서, 그릇을 사는 건 포기하고 그냥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았다.
생투앙 벼룩시장은 ‘생투앙’이라는 지명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이 일대의 크고 작은 벼룩시장과 화랑을 모아서 통칭하는 말이다. 말라시스 시장(Marché Malassis), 비홍 시장(Marché Biron)처럼 인접한 시장들은 특히 고급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취급하는 곳들이다. 아주 약간 발걸음을 옮기면 순환도로와 메트로 역을 잇는 대로를 따라 가판대가 이어지는데, 이 구간은 파리 바로 바깥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험하다. 한편 우리나라의 황학시장과 비교해보자면, 황학시장은 방브 벼룩시장과 베르나송 시장을 묘하게 섞어놓은 느낌이다.
# 하루이틀 사이로 거짓말처럼 가로수마다 어린 잎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덩달아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북적하다. 센느 강의 수상 레스토랑에도, 샹젤리제 거리에도, 뤽상부르 정원에도 봄날씨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인파가 많은 곳은 홍대 같은 곳보다도 사람이 많아 입이 떡 벌어진다. 기숙사에 뒹굴뒹굴하기에는 아까운 날씨지만, 막상 어디든 붐비는 상태여서 공원을 가기는 부담스럽고 늦은 오후 앙발리드를 가보기로 했다. 앙발리드(Invalides)는 말 그대로 상이군인의 보훈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7구는 갈 일이 잘 없는 지역인데 자전거를 타고 앙발리드까지 나갔다.
두 시간 반 정도 머무르면서 군사박물관의 절반도 채 둘러보지 못했는데, 파리 시내의 박물관은 대부분 규모가 크다보니 한 번 방문하는 걸로 다 둘러보지 못할 거라고는 일찍이 예상했었다. 하지만 군사박물관이 아니더라도 나폴레옹의 묘소가 안치된 돔 교회를 둘러본 것만으로도 커다란 소득이었다. 앙발리드를 둘러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1706년에 완공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새 건물 같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개보수가 되기는 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파리 시내의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도 새것 같은 느낌이 있다.
군사박물관에서 내가 둘러본 곳은 중세 무기와 20세기 전쟁에 관해 전시된 박물관의 동쪽 건물이었다. (서쪽은 아예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두 전시 모두 인상적이었다. 중세 무기 전시실의 경우 갑옷, 검(檢), 화승총, 석궁 같은 것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 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무기고(Arsenal) 구역을 따로 둘 정도인데, 무감각해질 정도로 계속해서 쇳덩어리들을 보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피(血)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사실 중세 무기들은 그리 효율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방어복도 너무 무거워 보이고 공격무기 또한 무거워보여서 상대에게 얼마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검이니 갑옷이니 해도 결국은 육탄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다, 하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본다. 칼이 있음으로 해서 공격상대를 베어내는 것보다는, 결국 최대한의 완력을 써서 찌르고 뭉개는 방식이 주로 쓰였을 것같다. 상대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 보면서 내가 살기 위해 갑옷의 빈틈으로 칼을 밀어넣고 끝까지 상대를 죽음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전쟁이란 얼마나 야만스러운 것이었을까.
# 앙발리드의 정수(精髓)는 단연 돔 교회다. 이곳에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장군들의 묘가 안치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나폴레옹의 묘가 상징적으로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하묘(crypto)를 들어서면 나폴레옹의 석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그는 사실상 살아있는 신(神)이다. 돔 교회는 언뜻 보아도 굉장히 공을 들인 건물이다. 일단 다른 건축물에서는 본 적이 없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기암괴석이 쓰였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만큼 건축에 투자했다는 게 인상적이다.
프랑스에 머물면서 인상적인 광경 중에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심지어 그게 단순 사고사라 할지라도—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소도시의 앙증맞은 개선문을 가도 전몰자를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오늘날 전시 상황에 가까운 건 오히려 우리나라일 텐데, 상이군인에 대한 처우는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실컷 식민전쟁을 벌이고 제국간 경쟁을 펼치던 프랑스에서 더 잘 갖춰져 있다니 인상적이면서도 역설적인 느낌을 받는다.
# 나폴레옹은 19세기 프랑스가 헤게모니를 쥘 수 있도록 한 인물이고, 그러한 국가적 영웅을 기리겠다는 야심작이라 할 만큼 앙발리드는 웅장했다. 한편으로는 사치스럽다 싶을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다. 폐관시간이 다 되어 앙발리드를 나선 뒤에는 앙발리드 다리를 건너 샹젤리제 거리까지 조금 나가보았다. 샹젤리제 거리의 인도(人道)는 차도만큼이나 넓지만, 그런 인도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사람이 많다. 해가 저물 즈음이 되어 다시 기숙사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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