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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의 일기: 디데이(D-Day; Jour J)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30. 03:31
베이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성당인데, 이제는 성당을 너무 많이 다녀서 큰 감흥도 없다.. # 새벽 여섯 시쯤 눈을 떴을 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생각에 잠겼다. 오늘 노르망디 지역을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새벽에 눈을 뜨니 가지 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공부할 거리도 쌓여 있고—공부를 계속해도 좀처럼 공부량이 쌓이지 않는 기분이다—파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죄다 돈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운 채로 곰곰히 저울질하다가 결국 기숙사를 나설 채비를 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생각이 길어질 수록 좋은 일이 없다.
여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최대격전지로 꼽히는 푸앙뒤옥(Pointe du hoc) 그냥 빨리 발음해서 푸앙뒤옥이라고들 하는 것 같다 독일군이 파놓은 무수히 많은 참호와 벙커들이 있다 기숙사를 나와 27번 버스를 타고 생라자르 역으로 향했다. 학교 근처 길목에서 걸인에게 얼마 전 1유로를 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나만 보면 유난히 아는 척을 한다. 기숙사를 나선 게 아침 여덟 시였나 꽤 이른 아침이었는데 벌써 고정좌석에 자리를 잡은 노년의 여성은 오늘따라 내게 더 과감하게 손짓—오늘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입 언저리에서 손목을 꺾어 보인다…—을 해보이며 돈을 구걸했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정류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쯤 되면 호의를 잘못 베푼 것 같다고 후회가 든다.
도무지 상륙이 적합해 보이지 않는 지형인데 그럼에도 이곳에 작전이 이뤄졌던 건 이곳에 배치된 독일군의 화력을 무력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생라자르 역을 출발한 열차 안에서 과제를 끝으로 손을 보고 FF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 뒤 쪽잠에 들었다. 11시 19분 열차는 베이유(Bayeux)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마하 해변(Omaha Beach)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12분 30분에 있으므로 약 한 시간 정도 비는 시간이 생긴다. 잠시 베이유 시내로 들어가 휴대폰 충전기를 샀다. 주저주저하다 출발하는 나머지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오지 않았는데, 열차 안에서 인터넷을 쓰느라 휴대폰 배터리가 벌써 방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섭게 추운 날씨 지금은 매우 평화롭고 독일사람들도 즐겁게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 오마하 해변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전개 된 다섯 해안—유타(Utah), 오마하(Omaha), 골드(Gold), 주노(Juno), 스워드(Sword) 해안—중 한 곳이다. 유타와 오마하는 미군이, 골드와 스워드는 영국군이, 주노는 캐나다군이 각각 투입되었는데, 오마하 상륙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가운데 가장 초기에 작전이 이뤄졌고, 가장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으며 그만큼 가장 막대한 사상자가 나온 곳이다. 이른바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라고 명명된 이 노르망디 전투에 투입된 군인은 미군과 영국군, 캐나다군을 모두 합해 2만 5천 명에 달한다.
# 나는 푸앙트 뒤옥(Pointe du hoc)에서부터 일정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오마하 해변을 걷다보면 왜 연합군이 독일군을 돌파할 지점으로 노르망디 일대 해안가 50마일(80km)을 택했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조수간만의 차로 물이 빠져나간 오마하의 광대한 해안은 수륙양용 작전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다만 베이유에서 먼저 내리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게 ‘춥다’였는데, 작전이 전개된 게 6월 6일 여름이었다고는 해도, 동트는 아침 무렵부터 개시되었다는 점과, 당시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합군 입장에서는 굉장히 처절한 전투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같은 지역으로 묶이는 줄 알고 푸앙뒤옥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건데 고생길 시작이었다, 이렇게 떨어진 거리인 줄 미리 알았다면 푸앙뒤옥은 생략했을 거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이제부터 두 시간 가량을 걷게 된다 그런 이미지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바닷가를 걷다보면 이 거대한 작전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미국은 일본에 의해 진주만이, 영국은 독일에 의해 런던이 침공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마찬가지로 독일에 의해 침공을 당한 스탈린이 서유럽에 새로운 전선이 필요하다고 서방 국가들을 열심히 설득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합군에 의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나 무모한 계획이었다.
풍경 자체는 참 좋은데 너무 추운 날씨였다 순이 조금씩 올라오는 밀밭 때문에 전투 초반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노르망디 해안 다섯 곳을 공략했지만, 공격 첫날 전선이 합쳐진 곳은 영국군의 골드 해안과 캐나다군의 주노 해안 두 곳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였던 캉(Caen)을 점령하는 것은 7월을 한참 넘겨서의 일이다. 하지만 무모한 작전이었기는 했어도 일단 승기를 잡기 시작하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다라가면서 오마하 해안가에 나란히 나부끼는 성조기와 프랑스 삼색기, 그리고 EU 국기를 보니 어쩐지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까지 너무 흐려서 여행 시작부터 걱정이었는데, 오후가 되니 서서히 날씨가 풀렸다 유채꽃! # 푸앙뒤옥은 독일 입장에서는 사실 상륙작전이 전개될 가능성을 가장 적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곶(pointe) 지형인 이곳은 대단히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방어진을 치고 있는 독일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었다. 더군다나 푸앙뒤옥에서부터 오마하 해변이 이르는 지역은 독일군이 가장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사상자가 속출했던 곳이다. 푸앙뒤옥의 한 안내문구에 따르면, 푸앙뒤옥에 처음 상륙을 시도했던 공습대원 225명 가운데 잔류병력이 해안에 도착했을 때 무장한 채로 남아 있었던 대원은 9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머지는 사망, 실종, 부상 상태였다고. 푸앙뒤옥과 오마하 해안을 포함해 이곳의 전몰자만 천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내 나타난 오마하 해변, 정말 사진으로도 담기지 않을 광활한 백사장이었다 해안이 너무 커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깨알 같이 보였다 # 푸앙뒤옥에서 오마하 해안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해안 절벽을 따라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오마하 해안이 나온다. 대체로 여행을 즉흥적으로 나서는 나로서는 미처 충분히 알아보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이번에도 발이 고생하는 수밖에 없었다(ㅠ)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걷는 거야 문제되진 않았는데, 오마하 해변에서 베이유로 되돌아가는 버스 막차가 4시 50분에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 이후에는 베이유로 돌아갈 교통편이 없다. 처음에는 그런 계산도 하지 않고 푸앙뒤옥을 느긋하게 둘러보느라 나머지 구간을 서둘러 움직였다.
마을 입성 성조기와 삼색기가 나란히 하지만 서둘러 움직였음에도 막차를 놓칠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이 선 순간, 정 안 되면 오마하 해변에 숙박을 알아봐야겠다, 생각하고 자포자기 한 채로 될 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썰물이 빠진 바닷가 멀리까지 나가보고 모래언덕을 걸어보기도 하고. 오늘날 이곳은 상륙작전에서 가장 많은 전몰자가 발생한 역사적 장소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롭다. 갯벌을 따라 승마를 하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연인, 요트를 타는 사람, 모래 위를 뒹구는 어린 아이 등등등. 끝으로 내가 둘러본 곳은 미군 묘지였다. 폐관 시간이 다 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길게 둘러보지는 못했다.
오마하 해변 오마하 해변 삼색기와 성조기 # 노르망디 미군묘지를 나오면서 관리 직원에게 물어 가장 가까운 호텔이 있는지 물었다. 휴대폰 전원이 다 나간데다 중간에 충전할 만한 곳을 찾지도 못해서 숙박에 관한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워낙 미국과 영국에서 찾는 방문객이 많다보니 직원들이 대체로 영어를 구사한다. 직원은 내게 가장 가까운 호텔을 소개해주었다.
"Les braves"라는 조각상인데 세 개의 독립된 조각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쯤부터 베이유로 돌아가는 막차를 못 탈 것 같다고 예감했다.. "도멘 드 로스테히에흐(Domaine de l’Hostérière)." 개인적으로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될 것 같다. 이 호텔에서 나는 은인(!)을 만났다. 방 가격에 대해서 물어보다가 사실 저녁 베이유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버스 막차를 놓쳤다고 말했더니 호텔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 베이유까지 차를 태워다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길을 나서려던 참인데 베이유에 갈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가는 길에서 멀지 않으니 베이유까지 데려다 줄 수 있다, 그냥 이대로 하루 오마하에서 묵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라, 잠시 사무실에 짐을 챙겨오는 동안 생각해보라고 했다. 숙소든 레스토랑이든 교통편이든 베이유로 가는 게 모로 보나 유리했기 때문에, 잠시 생각이고 뭐고 횡재를 만났구나, 하는 표정을 감추며 베이유까지 동행을 부탁한다고 했다.
바닷바람 맞으며 자라는 양들 제5공병여단 기념비 ‘실비’라는 이름의 이 중년 여성은 이 호텔에서는 경리(comptabilité) 업무를 보고 있다고 했는데,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사고 경력이 하나도 없는 프로 운전자라고 소개했다. 말하는 방식이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이다. 나는 한국에서는 이보다 운전이 훨씬 거칠기 때문에 전혀 염려할 필요 없다고 말했더니 신기하다는듯 정말 그러냐고 되묻는다.
이곳은 미군묘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촬영되기도 했던 그녀는 베이유를 근거로 열두 곳에서 경리 업무를 보고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자신에게 열두 명의 고용인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고 두 명의 고용인(deux employeurs)이냐고 되물었다가 그녀가 열두 명(douze employeurs)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본인이 경리업체를 운영하면서 경리 업무를 필요로 하는 열두 곳에 직원을 파견한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차를 끌고 여기저기 이동할 일이 많다는 걸 보면 본인이 12개의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프랑스에는 특정 직무를 수행하면서 여기저기에 적(籍)을 두고 일하는 마이크로 업무방식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비 덕분에 베이유로 돌아와 아침에 밖에서만 봤던 성당을 잠시 둘러볼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얼마전 갔던 19구의 건축물을 떠올리며 오르간도 한 장! 내가 파리의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얘기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히 그녀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바깥을 거의 벗어나본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셰르부르에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내가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말했더니 너무 오래된 영화 아니냐며 카트린 드뇌브의 이름을 읊었다. 프랑스 사람들도 잘 아는 프랑스 영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석양이 내리쬐는 성당 # 오마하에서 베이유까지는 차로 대략 30분 가량 걸리는 거리다. 내게 실비가 일하는 호텔을 알려줬던 미군묘지의 직원은 택시비가 숙박비보다 더 들 거라 했었는데, 그 비용을 아낀 것이다. 실비는 정말 감사하게도 베이유의 중심가인 생파트리스(St-Patrice) 지역에 나를 내려주었다. 내리자마자 나는 갈레트 방앗간(Le moulin de la galette)이라는 곳에 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원래 점심에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었는데 70번 버스를 놓칠까봐 점심에 발걸음을 돌렸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은 오늘 첫 식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Le moulin de la galette/ 노르망디에 왔으니 갈레트를 먹어야.. 순식간에 해치웠다 원래 실비를 만났던 호텔 식당이 열려 있었다면 그대로 오마하에 머물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식당이 문을 닫고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도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고 했다. 나로서는 더더욱 오마하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이러나 저러나 호텔에서 실비를 만난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만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뤄진 이곳 일대는 차 없이 자유여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다.
숙소 직원이 간단히 시설을 안내해준 후 대뜸 '감사합니다~'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Vᵉ arrondissement de Paris > Avr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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