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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의 일기: 셰르부르(Cherbourg) 가는 길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30. 17:46
# 간밤에는 결국 베이유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노르망디 지역에 이렇게 오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파리에서 멀지 않은 곳 중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노르망디 지역을 두 번째로 찾게 되었다. (첫 방문은 몽생미셸..) 파리를 벗어나 숙박하게 되면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게 된다. 어제도 잠들 때까지 텔레비전을 끄지 못하고 서너 시간 가까이 보든 안 보든 TV를 틀어놨다.
뉴스에는 마크롱의 대선 승리 이후 내각 구성 단계에서 멜랑숑을 비롯한 좌파 진영이 연합을 통해 얼마나 존재감을 과시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경제 섹션에서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조명되었고, 국제 섹션에서는 단연 우크라이나 전쟁 얘기가 흘러나왔다. 러시아의 우주비행사가 소유즈 우주선에서 자국의 국기를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등 (유치한) 프로파간다를 펼치고 있다든가, 러시아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런던, 파리, 베를린까지의 미사일 탄도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도하고 있다든가, 꽤 생생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Cherie 5 채널에서 나오는 드라마도 내용을 다 알아듣는 건 아니었지만 치정극이라 재미있게 봤다=_=
# 아침에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베이유의 태피스트리 박물관에 다녀왔다. 어제 실비도 태피스트리 박물관에 대해서 이야기했었고, 검색을 해보아도 전체적으로 평가가 좋은 것 같아 다녀와보기로 했다. (나중에 파리로 돌아와 몇몇 현지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꽤나 유명한 곳이 모양이었다) 박물관은 태피스트리뿐만 아니라 군사 박물관을 포함해 총 세 개의 독립된 전시공간이 있는데, 나는 태피스트리만 감상하는 코스를 택했다. 태피스트리 전시실을 둘러보는 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해서 일단 한 번 지나간 장소를 다시 둘러보기가 어렵게 구성돼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조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70미터짜리 태피스트리의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20~30분만에 관람이 끝난다.
총 70미터에 달하는 태피스트리는 벌써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 공작에서 출발해 잉글랜드의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대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서사를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태피스트리를 만들었고, 해마다 특정 기간에 성당에서 2주간 이 태피스트리를 공개하면서 에피소드를 서로 공유했다고 한다. 그런 에피소드가 태피스트리에 총 58개 담겨 있다. 랭스에 갔을 때도 태피스트리를 많이 보기는 했지만, 이곳의 태피스트리는 제작된 방식도 다르고 훨씬 생생한 느낌이 든다. 충분히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일단 70미터에 달하는 길이로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는 발상 자체가 지금 봐도 대단하다.
# 틈틈이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프랑스의 진면목은 파리가 아닌 소도시로 갈 수록 뚜렷해지는 것 같다. 74번 버스를 타고 오후에 간 아호멍슈 또는 아로망슈(Arromanche)는 아기자기하고 조용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아로망슈로 들어가는 길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이나 유채꽃밭이 펼쳐졌다. 나와 같은 정류소에서 내린 나이 지긋한 백발의 아저씨가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으며 영어로 짧게 이곳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를 알려주었다. 노르망디 안에서도 이곳 칼바도스 지역은 영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영어를 듣는 게 그리 어렵지가 않기는 한데, 내게 친절을 베푸신 할아버지는 미국식 영어를 쓰셨다.
아로망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영국군이 투입됐던 곳이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춥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깨닫는 건 뭔가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제 오마하에서 봤던 넓은 백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밀물이 들어와서 부두까지 바닷물이 높이 들이닥쳐 있었다. 바닷바람은 무척 거세고 차갑다. 그리고 기이한 광경이 들어오는데 수면 위로 군데군데 올라온 거대하고 편평한 암초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보면 암초들이 아니라 상륙작전에 동원된 탱크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로망슈 해안가에는 이렇게 바닷가에 방치된 탱크들이 십수 대 되는 것 같은데—물에 거의 잠긴 건 탱큰지 콘크리튼지 잘 모르겠다—썰물 때는 탱크의 전체 모습이 드러난다.
짧은 바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74번을 타러 정류소로 되돌아 왔다.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정류소에 도착했는데 나이드신 분들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멀리 지나가는 이웃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오늘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니, 이웃도 오늘 얼 것 같다(glacé)고 대답한다. 이어서 할머니가 말상대를 나로 바꾸기로 생각한 것 같았다. 버스가 예정시각보다 늦어지면서 나도 초조해지던 차라 버스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10분 전쯤 미리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버스가 지나갔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면, 할머니는 원래 시간을 잘 지키는 버스다, 그런데 성당 종소리도 났는데 아직 안 오니 희한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오는 혼잣말과 나를 안심시키는 말.
# 항상 느끼는 거지만 파리 사람들이 예외적으로 무관심한 거지, 파리만 살짝 벗어나도 사람들이 대체로 상냥하고 붙임성 있어서 먼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파리처럼 외지인이 워낙 많은 곳이라면 토박이들이 가깝지 않은 상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걸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파리는 사람들과 부딪치다보면 종종 이 사람들이 무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베푸는 상냥함이라는 것도 묘하게 피상적이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가끔 진이 빠지는데 어쩌다가 길에서 부랑자나 거동수상자가 나타나면 몸까지 사려야 한다..
# 다시 베이유로 돌아왔다. Bayeux. 우리말로 하면 가장 가까운 발음이 ‘베이유’가 될 텐데, 사실 현지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바이유’에 가깝다. 이쪽 지방의 독특한 억양인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30분 안에 역에서 버스를 타야해서 좀 급하게 음식을 주문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할 때, ‘역에서(à la gare)’가 파리 식대로라면 ‘아 라 갸흐’로 발음돼야 할 텐데 종종 ‘아 라 가흐’로 들린다. ‘a’ 발음을 우리가 흔히 아는 ‘아’로 살리는 것이다. 영국과 가까운 지역이다보니 영어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 같기도 하다.
# 프랑스 사람들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조경사인 게 분명하다. (좀 넋나간 사람처럼) 정원을 가꾸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분주한 손놀림으로 불필요한 풀을 뽑고 가지치기를 한다. 정말 열심히 한다. 그래서 어딜 가든 녹지가 참 예쁘게 가꿔져 있다. 그리고 포도나무도 징그럽다 싶을 만큼 인위적인 형태로 가지가 뻗어나가도록 쉼없이 가지치기를 하는 모양이다. (분재와는 또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가꿔진 포도나무는 유대교 의식에 쓰이는 메노라처럼 생겼다. 이런 걸 보면 조금 무섭다 싶을 만큼 집요함이 느껴진다.
# 애당초 이번 여행은 명확한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실비가 얼마나 노르망디에 머무를 예정이냐고 물었을 때 프랑스에 와서 처음으로 싸데펑(Ça dépend)이란 말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이번 여정에서 마지막 체류지로 생각해둔 곳, 셰르부르로 향했다. 여행을 더 길게 가져가지는 않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쉘부르’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이곳은, 코텅탕(Cotentin)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다. 관광지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실제로 관광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지만, 그냥 실망해도 좋으니 실망이라도 좀 해보자는 생각으로 셰르부르에 향했다.
셰르부르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관광센터에서 ‘쉘부르의 우산’의 촬영장소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도 정보가 좀처럼 나오질 않았는데, 직원에게 영화 이름을 말하자마자 소책자 하나를 곧바로 꺼내오면서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관광센터를 나와서 다음으로 한 일은 숙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숙소를 고르는 최우선 순위는 가격이었는데 시내를 이동하던 중 ‘58유로부터(à partir de €58)’라고 소개된 호텔을 우연히 발견했다. 최저가격을 55유로 정도로 확인해뒀던 터라 58유로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성비를 생각해보면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 이후 <쉘부르의 우산>에 나왔던 장소들을 하나씩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 영화 속에 나왔던 음악과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다가 잠이 들기까지 했다. 영화 속 장소 중에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은 당연하게도 마들렌이 일했던 우산 가게다. 지금은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로 바뀌었지만 ‘Les parapluies de Cherbourg’라는 옛 명칭만은 그대로다. 축제 장면이 촬영됐던 헤볼뤼시옹 광장(Pl. de Révolution)은 가게 바로 옆이고, 마들렌이 결혼식을 올린 성당도 아주 가깝다.
한편 기(Guy)가 일을 하는 곳으로 영화 속에 그려졌던 차고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내심 가장 보고 싶은 장소는 마지막에 마들렌과 기가 해후하는 주유소(station-service)였는데, 기가 일한 차고와 거의 비슷한 위치로 추정되는 이곳도 지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소책자에 소개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이 주유소에 눈이 내리는 연출을 하기 위해 2~3톤에 가까운 소금이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눈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는데 흥미로웠다.
성당을 지나 옥트빌(Octeville) 최북단 방파제까지 걸어갔다 되돌아 왔다. 칼바도스 지역과 셰르부르에는 길을 걷다보면 피쉬 앤 칩스를 파는 가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확실히 영국과 가깝다는 게 느껴진다. 셰르부르 시내로 가면 마리 뜰(Cour Marie)이 있다. 이 뜰을 에워싼 건물은 기가 이모와 사는 곳으로 묘사되었던 곳으로, 아파트의 실내 촬영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이 곳은 영화 속 장면이 가장 생생하게 떠올랐던 곳이다. 기는 자전거를 끌고 오며 알제리 전투에 징집되었다고 마들렌에게 슬프게 노래하고, 마들렌은 그 사이 2년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절절하게 노래한다. 그리고 결국 둘의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
# 저녁을 숙소에서 쉬다가 밤공기를 쐴 겸 바깥 산책을 했다. 마들렌과 기가 서로를 끌어 안고 걸었던 부둣가는 알렉상드르 3세 거리다. 이곳의 해는 이제 9시 반은 돼야 떨어져서 가로등도 꽤 늦은 시간이 돼야 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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