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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의 일기: 리옹(Lyon)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3. 1. 4. 00:33
리옹(Lyon)은 이번 남프랑스 여행의 종착지이다. 내 기억 속 리옹 여행은 대단히 빈약한 일정으로 꾸려졌었는데, 다시 기억을 소환해보면 주요 명소는 놓친 게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우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숙박을 전혀 정해두지 않은 채로 이동했기 때문에, 리옹에 도착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했던 건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리옹에 도착하기 전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리옹엔 예산 범위 안에서 숙박시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경험상 어딜 가든 당일 취소 케이스가 생겼던지라, 리옹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 배낭여행객의 리뷰가 많은 대형 게스트하우스 두 곳을 직접 찾았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서 적절한 숙소를 찾지 못했고, 결국에는 리옹에 머물지 않는 쪽을 택했다. 마지막에 리옹 페하쉬 역(Lyon-Perrache Gare Routière) 근처의 호텔까지 찾아갔지만, 가격적인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아 숙박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아니면 오늘 중 리옹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 다음에는 벨쿠르 광장(Place Bellcour)의 안내센터에서 몇 가지 관광정보를 확인한 뒤, 살라 가(R Sala)에 위치한 사설 라커에 배낭을 보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옹에서의 일정은 준비된 게 너무 없기도 했고, 즉흥적인 여행을 감행할 만큼의 의욕도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던 무기력한 여행이었다. 나는 Menthe Poivrée라는 작은 비건 레스토랑에서 오리엔탈 느낌의 간단한 식사를 했다. 신촌에서 종종 찾던 수수밭이라는 가게의 메뉴를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맛이었다.
이후 팔레 뒤 쥐스티스 교각(passerelle du Palais-de-Justice)을 건너 리옹의 구시가지로 움직였다. 리옹의 구시가지에는 트하불(Traboules)이라 해서 건물이나 땅 아래로 얼기설기 연결된 골목들이 형성되어 있다. 4세기까지 유래가 거슬러 올라가는 트하불은 리옹을 양갈래로 가로지르는 손 강(La Saône)에 접근하기 위해 고안된 통로로써 처음 고안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사진은 남아 있지 않지만, 툴루즈에 있을 때 흔히 보았던 적색토로 된 골목골목을 둘러보았다. 이후에는 Ô passage라는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로 목을 축인 뒤 푸니쿨라를 타고 갈로-로마 원형극장으로 향했다.
리옹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갈로-로마 극장의 언덕길을 오르고 나면 호제 하디송 길(R Roger Radisson)이 끝나는 지점에서 리옹에서 가장 상징적 건물인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La Basilique Notre Dame de Fourvière)이 나타난다. 여느 프랑스의 성당들처럼 자유롭게 실내를 둘러볼 수 있지만, 탑에 올라 시내 전망을 구경하려면 사전에 별도의 예약이 필요하다. 나는 마침 안내센터를 발견하고 한 번 더 성수기에 리옹에서 경제적으로 투숙할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아주머니가 내가 적절한 숙소를 찾을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도와주셨고, 그렇게 알려준 곳이 근방의 유스호스텔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운영을 중단된 상태여서 고민의 여지 없이 파리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나마 리옹에서 가까운 안시(Annecy)를 들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도 접고, 푸비에르 대성당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알프스의 새하얀 산자락을 눈으로 좇으면서 그 쯤 어딘가에 안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샤조 골목(Mnt des Chazeaux)을 따라 리옹 대성당(Cathédrale Saint-Jean-Baptiste)을 바라보며 구시가지 골목으로 되돌아왔다. 구시가지의 축을 이루는 뵈프 길(R du Bœuf)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이번에는 생 방셍 교각(Passerelle Saint-Vincent)을 거쳐 손 강을 다시 건넜다. 끝으로 리옹 출신의 유명인사가 그려진 건물벽을 보는 것으로 리옹 여행을 마치고 파리 행 막차에 올라타기로 했다. 벽화에 묘사된 24인의 유명인사들 가운데 내게 익숙한 인물은 두어 명에 불과했는데, 먼저 전류 측정단위인 암페어(Ampere)의 어원이 된 전자기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André-Marie Ampère)가 있고, 『어린 왕자』의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Antoine de St Exupéry)가 있었다.
파리에 6개월간 머물면서 나는 리옹 역(Gare de Lyon)에 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다. 더 정확히는 그 전까지도 좋지 않은 기억들 뿐이었는데 이날 마침내 방점을 찍었다. 늦은 저녁 리옹을 출발한 열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이번 프랑스 체류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다. 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덥석 수락한 것이다. 리옹 역에서 고등사범학교로 곧바로 이어주는 24번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오토바이에서 신원미상의 남자가 학교까지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여분의 하이바를 친절하게 내미는 그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다가 선뜻 뒷자리에 올라탔다. 리옹 역에서 고등사범학교까지는 직선거리로 멀지 않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탄 시간이 결코 길지는 않았는데, 그의 운전은 확실히 난폭했고 약을 한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본격적인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학교 앞까지 나를 바래다 준 남자는 내가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가방을 챙기자 살기등등한 태도로 돌변하더니 돈을 요구했다.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가장한 강취였다. 마침 현금이 한 푼도 없던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 현금을 좀 챙겨오겠다고 했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상쩍고 어설픈 양아치였는데, 내 그렇게 말한다고 순순히 기숙사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면서 심지어 자신이 나를 진심으로 신뢰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멘트로 협박을 했다. 기숙사의 층계참을 오르며 상황을 계산해봤다. 이 일대에 아시안이 흔치 않으니 내 신상이 어느 정도 특정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숙사 안에 들어온 것으로 상황 종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창문 너머 하이바를 쓴 채로 기숙사 앞을 지키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그러모으자면 얼마간의 현금은 만들 수 있었지만, 다시 기숙사 현관을 나와 나는 돈 없는 학생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어떻게 마음이 동했는지 남자는 괘념치 않겠다는 듯 알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소름끼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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