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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의 일기(下): 영화의 도시(Ville cinéphile, Cannes)Vᵉ arrondissement de Paris/Juin 2022. 9. 16. 13:53
# 칸느의 경우에도 굳이 따지자면 만족스런 여행이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기간의 칸느는 남프랑스의 특색 없는 도시처럼 생각된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큰 도시인 부산이나 전주도, 영화제가 아닌 때에 여행을 가면 영화와 관련된 구경거리를 찾기 어렵다. 그래도 영화 박물관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부산의 국제시장 쪽과 비교를 해도 도시가 너무 말끔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날 여행에서 칸느에서 A를 다시 만남으로써 말동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A와 합류하는 것도 순탄치는 않았지만.
# 칸느로 넘어오는 버스 안에서 A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메시지는 크화세트 해변(Plage Croisette)에서 해수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좌표를 하나 찍어서 보내주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후에 생트 마흐그히트(Sainte Marguerite) 섬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새 계획이 바뀐 모양이었다. 문제는 알려준 좌표에 도착했을 때 A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백사장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통화연결도 안 되는 걸 보아 이미 물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해수욕을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점심을 먹으러 칸느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향하는 해안가에는 럭셔리 부티크들과 명배우들이 묵었다는 고급 호텔들이 즐비했다.
# 시트로넬르(Citronelle). 참 재미있게도 남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포케와 샐러드같은 간편식을 파는 다섯 평 남짓한 가게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야외의 테라스만을 두고 있었다. 그마저도 두어 테이블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아줌마의 표정이 너무 따뜻해서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나는 문어 포케를 주문했다. 주문하면서 갈증을 느껴 직접 짠 오렌지 주스가 있는지 물었는데, 착즙기를 창고에서 내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착즙기를 준비하는 동안 식사를 하고 있으면 금방 오렌지 주스를 내오겠다는 아주머니의 프랑스어는 상냥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나 때때로 거리를 두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중에 치이고 있었기에, 나를 꾹 응시해가면서 주문을 도와주는 아주머니의 친절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칸느에서는 이날의 오후 일정이 전부였기에, 이 가게를 더 들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 점심을 먹고 난 뒤 A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아직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기에 한 시간 반쯤 후에 축제의 궁전 앞에서 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을 이용해 노트르담 데스페헝스 성당(Église Notre-dame d'Éspérance)을 다녀왔다. 칸느 시청 주위로는 자카란다 나무가 소담하게 자라, 구름처럼 찢긴 연보랏빛 솜사탕이 도심 이곳저곳에 흩뿌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인들을 묘사한 거대한 벽화(Le murs peints)를 지나면, 뱀처럼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나타난다. 성당 앞에는 나처럼 칸느 항을 넓게 조망하기 위해 올라온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한낮을 넘긴 이 시간에는 서쪽 하늘이 소쇄(瀟灑)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로 니스를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돌아오는 길은 A와 함께였다. 축제의 궁전 앞에서 그와 만나 곧바로 칸느 역을 거쳐 니스로 돌아왔다. 열차 안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A는 지금은 독일의 한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난민이 법적 지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법률자문 단체라고 했다. 그 전에는 핀란드에서도 잠깐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독일에 머무르면서 박사 학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A는 일주일 여름 휴가를 얻어 남프랑스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는 신뢰감과 진중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는 영어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면서, 이따금씩 2010년도에 있었던 아랍의 봄과 이후 이집트의 사회적 혼란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혁명 당시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었던 혁명 정신들이 지금에는 희박해졌다는 그의 말에서는 젊음같은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더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 그의 나이와 내 나이는 그리 차이나지 않음에도 말이다.
# 니스로 돌아와 숙소에서 한 시간 여 쉬었다가, A와 저녁을 먹으러 다시 장 메드상 가로 나왔다. 우리가 향한 곳은 니스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vielle ville)의 l'Épicerie Georges라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원래는 메세나 광장 일대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으려고 했지만, 찾았던 레스토랑은 대기줄이 너무 길어서 입장을 포기했다. 그리고 샤를 펠릭스 광장(Pl. Charles Félix)을 따라 구시가지로 접어들었다. A의 말에 따르면 샤를 펠릭스 광장은 아침에는 청과물, 해산물, 공예품을 파는 장이 서는데, 저녁이 되면 지금 보듯이 레스토랑과 브라세리들이 쓰는 테라스로 탈바꿈한다고 했다. 광장의 테라스는 거대한 카니발이 열린 것처럼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 여주인 한 명과 남자 서빙 직원이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l'Épicerie Georges는 비록 대여섯 개의 테이블만이 마련된 아담한 가게였지만 환대하는 분위기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양고기(Soupe d'agneau)를 비롯해 메인 요리를 세 개 주문했다. A가 술을 하지 않아서 와인 대신 탄산음료도 두 개 주문했다. 분명 맛있는 요리이고 같이 먹을 수 있는 빵이 달려 나왔지만, 이날따라 기름기가 부담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속이 편하게 느껴지는 음식은 아니었다.
# 그렇게 해서 다시 수다 삼매경이 시작되었다. 대화에서 내가 3할을 말하면 7할은 A가 말하는 식이었다. A는 조용한 화법과 다르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듯했고, 자신의 연애사를 이야기하면서부터는 쉼없이 말을 쏟아냈다. 때로는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가, 20대 초반 대학에서 만난 여학생과 약혼을 했다가 헤어지게 되었다는 옛적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 일화를 들을 땐 개방적인 대학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이집트에서 약혼과 파혼이 문화적으로 흔히 수용되는 일인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심 헷갈렸다. 그래도 A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A가 유복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고—일단은 영어가 매우 유창하고 정확한 편이었다—그런 치기 어린 지난 일들도 그가 온 나라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다만 한번 대화의 맥이 끊긴 순간이 있었는데, 그가 군 복무를 미루기 위해 해외 체류를 연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였다. 처음에는 이집트에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여사친이 있다는 얘기에서 출발했는데, 뭔가 대화의 흐름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녀와 호감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도 이집트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싶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보니, 이집트에 입국하면 자동적으로 군 복무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나이상 내년까지는 해외에서 체류해야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당시 BTS의 군 면제 문제가 뜨거운 이슈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위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이 해묵은 화젯거리였기 때문에, A의 말을 듣고 생각이 앞뒤로 조립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난민 구제라는 정의를 위해 일하고 있는 A, 본인의 연애사를 해맑게 늘어놓는 A, 그러면서도 군 복무 의무를 피하기 위해 해외 체류를 늘리는 A는 동일인이다. 위선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고상하고 담백한 형태를 띠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돌아오는 길에는 영국인 산책로를 지나왔다. 바닷가에서 열리는 즉흥 공연을 보기도 했다. A는 식사의 말미에 본인이 한 말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어딘가 시무룩해 보였다. 다시 장 메드상 가로 접어들었을 때, A는 구태여 차(茶)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이미 밤 열 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카페들은 문을 닫기 시작할 시간이었는데도, 우리는 디저트 가게며,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를 전전하며 차를 파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차를 파는 곳은 찾을 수 없었고 이제는 숙소에 거의 가까워졌다. 그때, 나는 어쩐지 로비에 탕비 시설이 되어 있을 것 같은 한 호스텔 입구를 A에게 가리켜 보였다. 입구를 지키는 컨시어지에게 물어보니 좋은 차는 아니지만 인스턴트 티백으로 우린 차 정도는 줄 수 있다고 했다. 곰살궂은 A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은 없었고, A는 마침내 일회용컵에 차를 얻을 수 있었다. 호스텔을 나오는 길에 A는 컨시어지에게 팁으로 5유로를 건넸다. 컨시어지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A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동했다. 어딘가 시작과 끝이 조화롭지 않은 이날 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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