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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그리니치(Greenwich)여행/2022 영국 런던 2023. 3. 26. 20:33
선착장에 배를 고정시키기 위해 승무원들이 밧줄을 내린다. 이윽고 런던 탑 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강변을 잠시 맴돌다가 템즈강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배는 도개교인 타워 브릿지를 지나 동으로 동으로 시원하게 내달린다. 저멀리 신기루처럼 도크랜드의 시원한 고층 빌딩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티 구역보다는 획일적인 건물들이지만, 그 느닷없는 높이만으로도 새로운 런던을 발견한 기분이다. 카나리 워프 선착장에서 승객을 쏟아낸 배는 이제 그리니치(Greenwich)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렸다. 배는 이제 밀레니엄 돔이 있는북 그리니치(North Greenwich) 선착장으로 향할 것이다.
선착장을 빠져나온 다음 그리니치 대학교의 담벼락을 곁에 두고 좁은 길을 걸었다. 어딘가로 이어져 있는 길이지만 그 어딘가가 공원일 것 같지는 않은 직선도로. 그 끝에 그리니치 공원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입구가 있었다. 야트막한 둔덕이 저 멀리까지 넓게 뻗어 있고, 군데군데 잡목이 솟아올라와 있다. 먹구름 탓에 생기가 시들해진 잔디밭 위로,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저마다의 동작과 동선으로 커다란 여백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 앞에서 바라본 런던의 전경은 반 년간의 해외 체류에 마침표를 찍기에 좋은 그럴듯한 풍경이었다. 언덕의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해양박물관의 새하얀 석조 건물이 수평으로 뻗어 있고, 그 위에 색을 잃은 템즈강의 수평선이 더해진다. 그 너머 카나리 워프의 고층 빌딩들은 개별적으로는 몰개성적이면서도 무리를 이룬 윤곽으로서는 대담무쌍함이 느껴진다. 이곳은 본초 자오선이 관통하는 아주 추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두 눈을 통해 런던의 자본력을 똑똑히 감지할 수 있는 실체적인 공간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비가 쏟아졌다. 쉽게 멈추지 않을 것처럼 제법 굵게 내리던 비가 이내 멎었다. 그리니치 전망대에서 내 사진을 성심성의껏 담아주던 인도계 학생의 맹수 같은 시선이 오랫동안 마음에 머문다. 런던에 왔을 때처럼 다시 야간버스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다시 1시간이 늦춰져 있었다. 해협을 건너면 코닿는 거리에 있는 런던과 파리는 그들의 관계 설정이 늘 편치 않았듯이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작은 공간적 차이가 큰 시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두 도시 사이에서 나는 마침내 이번 여정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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