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사를 했다. 늘 그렇듯이 짐이랄 게 정해져 있고 많지도 않다. 그 중에 늘 껴 있는 건 찰스 에베츠의 커다란 흑백사진 벽보도 있다. 어쨌든 짐은 단출한데,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이사 후에 짐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들을 새로이 사들여야 할 텐데, 넓지도 않은 집에 더 많은 물건을 들이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고민하다가 책장으로 쓸만한 선반을 하나 중고거래로 사들였다. 새까만 2단 철제 선반이다. 가운데 선반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서 좁은 방에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시원한 디자인이다. 나는 장대비가 오락가락 하는 어느 저녁에 이 녀석을 사들고 30분 거리를 낑낑대며 걸어왔다. 거래한 장소에서 손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물건을 곧바로 분해한 뒤 준비해온 노끈으로 칭칭 동여매고 손잡이 형태를 만들어 이사한 집까지 들고 왔다. 들이고보니 마음에 들어 다행이기는 한데, 걸어 오는 사이에 분해하면서 빼놓은 나사 하나를 잃어버려 헐거운 이음새가 남아버렸다. 간밤에 걸어온 길을 되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을 접었다.
이사를 하면서 회사와는 한결 가까워졌다. 회사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곳을 찾았었다. 아직은 이 동네가 익숙하지도 않고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집을 알아볼 때는 그저 도심지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노숙인들을 보며 이 커다란 도시에서 꼭 첨단적이지만은 않은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사는 세계가 원하든 원치 않든 미추(美醜)를 막론한 온갖 군상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길 위를 또박또박 걸어가는 무표정한 행인을 보며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물음표도 찍어 본다.
출근길에는 지하철을 타기가 싫어 버스를 탄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동굴로 내려가는 행위와 휴대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는 인파에 휩쓸리는 과정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출근길에 피로가 채 덜 풀린 상태인데, 이른 아침부터 눈깜박임도 없이 휴대폰 화면에 골몰한 사람들을 보면 에너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그 많은 에너지를 어디에 썼기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이른 아침부터 넋이 나가 있는 것인지.
횟수를 헤아려보니 거처를 옮기는 것도 벌써 다섯 번째의 일이다. 정주(定住)는 요원해 보이고, 내 삶은 여전히 유목민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정주(定住)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만 근래 들어 이대로 안주(安住)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곤 했다. 이쯤이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나는 당분간 새로운 거처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갈 것이다. 그게 어떤 선택과 이야기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럼에도 조금은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