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자주 찾는 카페에 갔다가 만석이어서 별 수 없이 바로 옆 공원 정자에 잠시 앉았다. 비가 걷힌 뒤 푹푹 찌는 듯한 날씨였다.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넋놓고 앉아 있는데, 정자 위 마루에서 페트병으로 장난치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더위에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아이인지 내가 오고 나서 나타난 아이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내게 다가와 연신 살갑게 부대낀다. 아마 나한테서 강아지 냄새가 나서일 수도 있고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일 수도 있다. 그 품이 예뻐서 나도 놀아주게 된다. 사내 아이는 물이 반쯤 담긴 페트병을 던지며 노는 데 여념이 없다. 내가 강아지 나이를 물으니 그제서야 8개월이라고 짧게 답한다. 이름은 라이. 이 더위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겠다고 나온 꼬마의 개구지고 앙증맞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아지는 아직 내 손안에서 꼬물꼬물 뒹굴어대고 있다. 조금 이따가 귀여운 꼬마의 눈이 일순 매서워지더니 나한테 뭐라고 말한다. 말벌이 날아다니고 있다며 얼음이 된 자세로 그놈 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모습에 벌을 무서워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때를 떠올리며 느끼는 시간의 깊은 골에 어떤 상념에 빠져들어 버렸다. 어떤 상념. 벌이 또 찾아올까 무서웠던 꼬마는 더 있기 무섭다며 몇 번인가 혼잣말을 하더니 라이를 데리고 타박타박 정자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