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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시간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4. 6. 19. 11:37
출장중 남기는 일기. 나는 지금 부산 해운대에 와 있다. 불과 반년이 안된 사이 이뤄진 두 번째 부산 방문. 지난번 당일치기로 부산을 찾았을 때는 도시구경을 엄두낼 수 없었지만, 이번 일정에서는 다행히도 다른 지역을 같이 둘러보는 긴 일정으로 오게 되면서 바다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부산은 여행으로도 업무로도 여러 차례 와서 이제는 몇 번 왔었는지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매번 보는 부산의 풍경은 그때마다 달라져 있고 해운대는 그 변화가 더 극적이다. 경쟁하듯이 올라가는 마천루들과 그 사이를 누비는 각국의 외국인들. 거리에 거대하게 들어선 고급상점들을 보면서 기시감과 함께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 도시가 어떻게 새롭게 비칠지 궁금하다.
내 일상에는 많은 변화랄 것이 없다. 그래도 근래에 내 일상에 조금씩 다른 리듬이 되어주었던 사건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프랑스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 달리기 모임에서 북한산을 함께 간 것. 10년 전 군대동기들을 만나 근황을 공유한 것. 회사 동기들과 함께한 전북으로의 여행.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일들을 지나쳐옴에도 불구하고, 변화랄 게 없다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사람에 대한 나의 감각은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무디게 넘긴다. 그렇게 내 마음에 더 이상 마모될 것이 없다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종종 마음을 비집고 나오는 뾰족한 모서리들은 세상을 향하기보다는 나를 향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모서리마저 무뎌져 시간의 협곡 속으로 형해(形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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