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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II일상/book 2017. 1. 6. 17:30
<러시아의 역사 II / 니콜라스 V. 랴자놉스키, 마크 D. 스타인버그 / 까치>
우리나라는 운이 없었다.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 실험을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운명적으로 우리는 정확히 이 방향으로 밀려들어갔다.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그들은 우리를 가지고 이 실험을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이 사상을 위한 장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것은 세계의 문명국가들이 선택한 길로부터 우리를 밀어냈을 따름이다. -옐친(1991년 6월)
혁명 뒤에는 보통 반혁명이 뒤따르고, 개혁 뒤에는 반개혁이 뒤따르며, 그 다음에는 혁명기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뒤따른다. 러시아의 역사적 경험에는 그런 사례가 풍부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이클이 종식되었다고 확고히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혁명이나 반혁명도 없을 것이다. 러시아와 그 국민으로서는 확고하고도 경제적으로 지지되는 국가의 안정이 좋은 것이며, 우리는 이런 정상적인 인간의 논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한참 늦은 지금에야 배우고 있다. -푸틴(2001년 3월)
러시아 역사는 밝고 행복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이상주의는 다양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웅적이기도 했고, 잔인하기도 했고, 비극적이기도 했다. 러시아가 혁명을 실컷 경험했다고 종종 선언했던 푸틴의 말은 이런 역사를 반영하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널리 피곤해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기도 한다. 여론조사 등이 보여주는 것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은 "정상 상태"이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그들 자신과 자기 나라에 대해서 원하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상적인 생활"이다. 많은 면에서 러시아는 "정상"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비록 최근인 1990년대에는 그렇게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삶이 러시아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모순과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이렇게 새롭지만 여전히 손상되기 쉬운 신념은 공산주의 이후의 아주 짧은 러시아의 역사에서 아주 고무적인 발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른 포스팅을 하고 책을 반납하려 했는데, 예기치 않게 블로그 스킨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느라 포스팅이 늦어졌다. 덩달아 아직까지 책 반납을 못 했다.
희한하게도 이번 <러시아의 역사>는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보다는 생각보다 쉽게 읽혔다. 상대적으로 쉽게 읽혔다는 것이지, 내용 자체가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소화할 수 있을지 가장 의문스러웠던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러시아 역사 파트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었다. 러시아는 라틴아메리카에 비하면 훨씬 생소한 나라인데도 책 자체는 더 잘 읽혔던 걸 보면, 저자가 책을 잘 쓴 건가..?
책을 읽은 지금도 러시아에 대한 생소함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래도 러시아의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쉼없는 "작용-반작용"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전제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반동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서사가 러시아 역사 내내 계속된다. 문제는 '상권'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각자의 입장을 개진하는 방식이 매우 투박하고 거칠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척점에 있는 두 세력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러한 극한(極限)-또는 본문에서 러시아 시민들이 진술하듯 "비정상"-의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대타협" (가히 대타협이라 부를 만하다)에 이르는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 첫 번째가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와 두 번째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다.
#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에 대해서는 이미 상권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역사'라는 것이 사후(事後)에 여러 각도로 해석되곤 하는데, 나는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야말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초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혁명의 불을 직접적으로 지핀 것은 1914년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농노제가 폐지됨으로써 비로소 사회주의 세력(멘셰비키와 볼셰비키)과 민족주의, 보수주의라는 정치적 균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최초에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제 폐지를 결심할 때에는, 농민들의 복지를 위해서라기보다 전제주의를 더욱 확고히 옹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사상과 운동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눈에 돋보였던 것이 신흥 중간계층(변호사, 교사 등등)을 주축으로 하는 사회주의자들이다. 여러 전환국면 속에서 기회를 거머쥔 급진파 볼셰비키가 온건파 멘셰비키를 누르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데 성공한다.
한 가지 염두에 두고 읽었던 부분은, 농노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자유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양상이 러시아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유럽에서는 일찍이 산업혁명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이 출현하고 정치화되지만,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이 완수되던 당시까지도 후진적인 농업기반 사회이었고 마르크스가 말하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빈약한 공간이었다. 일반시민들의 입장에서도 누가 혁명을 완수하든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달라는 근본적 요구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혁명이 말미에 이를 수록 레닌에게 지지를 보내기는 하지만, 서유럽에 비해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계급을 막론하고 그저 고된 삶에 신물이 나있던 상태였을 뿐.
이런 러시아의 환경은 소련정권에서도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한다. 다시 집단농장을 획정하는 문제에서부터(농노제가 폐지된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국가관리하에 농업을 해야 한다니 반발이 컸을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당정치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멍에를 씌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시작되면서 더욱 강해진다. 유럽에서 산업적으로 가장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가장 먼저 들어섰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향후 소련의 국정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국과 양자구도 속에서 소련은 가공할 만한 군사력과 과학기술을 과시하면서도, 경제 면에서는 여전히 서구에 뒤처지는 취약성을 보인다.
# 소련의 글라스노스트
사실 러시아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그 모든 문제점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러시아가 지닌 문제와 사회주의의 한계가 뒤엉켜 있어 소련체제 붕괴의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볼셰비키 정권이 처음 수립될 때까지만 해도 산업화된 다른 국가들 모두 공산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민중을 설득하기 위한 레토릭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그렇지만 서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견고했고,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논리를 손볼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사회주의의 확산이 더디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공산주의를 성공적으로 발달시켜 모범이 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련의 개방을 이끌었던 고르바초프가 자인(自認)한 것처럼 소련의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나서지 않는 이상, 국가의 존속을 보장하기 어려울 만큼 당시의 소련은 매우 허약했다. 소련의 몸체를 이루던 동유럽은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중앙아시아에서 신생국의 독립은 소련의 위상을 더욱 약화시켰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고 극동아시아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그리고 그 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미국에 맞서는 G2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아직까지도 소련의 거대한 유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련의 공산주의와 중국의 공산주의는 다르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중국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이래로 선별적이기는 해도 아주 공격적으로 자유경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공산주의국가라 보기 어렵다.
각설하고, 소련이 내부적으로 취약했던 가장 큰 원인은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찾고 싶다. 볼셰비키 이외의 정치사상을 배격했던 레닌 정권의 비민주성은 스탈린을 거치면서 심화된다. 가차없는 검열, 취조, 숙청.. 스탈린 정권이라고 하면 따라붙는 단어들인데, 지금도 그 희생자의 규모를 가늠할 수가 없단다. 문제는 민주주의의 부재가 비단 소련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대 러시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묘사하기 위해 저자는 '관제(管制)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민주주의' 앞에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된다. 푸틴 정권에 들어서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 법률가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비민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들을 정부의 입맛대로 조종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고질적 비민주성은 시민의식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에도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하간 근대사에서 유럽의 열강으로 군림했던 기억, 미국과 대결구도를 형성했던 소련의 기억으로 인해, 오늘날 러시아 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저자나 푸틴의 말대로, 1000년에 가까운 러시아의 역사로 미루어볼 때, 그나마 오늘날 가장 "정상적"인 시기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이 "비정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2000년대 이후로 푸틴이 장기집권 (잠시 메드메데프 대통령에게 수장의 자리를 넘긴 것을 제외하고)하고 있는 것 역시, 그나마 푸틴이 러시아인들의 "높았던" 콧대를 세워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푸틴은 2000년대에는 과감하게 체첸을 진압하더니, 시민들이 그에 대해 정치적 피로감을 느낄 즈음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강제 통합시키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종종 현대판 차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러시아 사회가 민주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쎄..'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는 '착취'를, '중동사'에서는 '이간질'이라는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다면..'러시아의 역사'에서는 '불확실성'을 키워드로 꼽고 싶다. 러시아는 과거를 읽어도 가늠이 되지 않고 더욱이 미래는 알 수가 없다. BRICs에 포함된 국가로서 높은 잠재경쟁력을 지닌 국가로 평가되고는 있지만, 나는 이것도 그저 유수의 컨설팅업체에서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개발한 무의미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알 수 없는 국가다. 시베리아의 설원에 가려 있고, 유럽대륙의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크렘린에서 자국의 미래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는 일반시민들이 마음속에 어떤 원한을 품고 있는지, 그들이 말하는 "정상 국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오늘날 선진체제를 모방하고자 할 때, 어느 국가도 러시아를 본보기로 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를 쉽게 무시하는 국가는 없다. 문화적으로는 닮고 싶지 않지만, 파워 면에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그게 러시아의 현위치인 것 같다. "러시아"라는 이름에만 익숙했지, 그 나라에 대한 내용은 아는 게 없었는데 이번 독서를 통해 적게나마 지식을 얻어갈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어서 상하권 책을 반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