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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外일상/book 2017. 1. 9. 16:18
<지하로부터의 수기 外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열린책들>
그래, 한번 시험해 보자, 우리에게 예를 들면 더 많은 독립성을 부여하라, 우리들 중 누구라도 손을 풀어 줘 봐라, 우리의 행동 영역을 확장시켜 봐라, 감독을 약하게 해봐라, 그러면 우리는 아마도... 나는 당신에게 확언한다. 우리는 곧 다시 한 번 감독받게 해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나는 아마도 이 말 때문에 당신이 내게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은 내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네 이야기만 해라, 지하에서의 너의 불쌍한 삶을, 그러나 감히 우리 모두라고는 말하지 마라.」 잠깐만, 신사양반, 나는 그 모두라는 표현으로 나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가 관련되어 있는 한, 나는 단지 내 인생에서 당신이 감히 절반도 실행할 엄두도 못 낸 것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의 비겁함을 상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신 자신을 속이면서, 그것에 의해 위안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 비하면, 내가 당신보다 더욱더 <살아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세히 봐라! 결국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이 <살아 있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둬 봐라, 책 없이. 그러면 우리는 곧 혼란에 빠질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합류해야 할지도,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요즘 출판가에 리커버―기존에 출간된 책의 커버와 구성을 새로 디자인해서 재출간하는 것―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아마 출판사에서는 나처럼 이런 마케팅에 쉽게 현혹되는 소비자를 반길 거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의 리커버 광고를 보자마자 거의 기계적으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어도 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합리화하는 수밖에..'―';;; 이번 리커버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외에도 카프카, 헤밍웨이의 단편집도 세트로 나왔는데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 고로..) 그냥... 모조리 구입했다. 책을 구매할 때마다 나는 그저 "내 엥겔지수가 또 내려갔구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 먹기로 했지만..(이러고는 알라딘에 팔 책 없나 찾아볼 예정이다;;)
여튼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총 8개다.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 백야,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약한 마음, 뽈준코프, 정직한 도둑, 크리스마스트리와 결혼식, 꼬마영웅..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이야기는 총 네 편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백야>, <약한 마음>, <꼬마영웅>이 그것이다. <백야>의 경우, 좀 더 살을 붙여서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그처럼 위도가 높은 도시는 정말 일년의 절반 정도는 백야(白夜)겠지? 하고 로맨틱한 풍경을 상상해보면서... 이 네 편 가운데 그래도 딱 한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약한 마음>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약한 마음>이라니 참 단순명료하고 재미 없기까지 한 제목인데, 내용도 정말 '약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본인에게 찾아온 행복에 압도되어 정신을 놓아버리는 청년 바샤와 그의 헌신적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행복에 압도되어 불행에 처하게 된다니, 이게 무슨 자다 말고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게 또 납득이 간다. 때로 본인이 이런 과분한 행운을 누려도 되는지, 이 행복이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질지, 내가 지금 이런 행복을 누려도 괜찮은 건가 하고 불현듯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사실 '덜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복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순간 곧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덜 행복한 것=불행한 것」이라는 공식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결국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고, 행복의 상대성으로 인해 비로소 인간은 현위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바샤처럼 자아가 붕괴되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고마워서, 기뻐서, 행복해서,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질까봐 사람은 괴로워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약한 마음>이다.
그렇다면 '약한 마음'의 대안은 '강직한 마음'일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약(弱)'의 반대를 꼭 '강(强)'으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오히려 '유연(柔軟)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삶이 충만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고쳐나가는 것, 그런 '유연한 마음가짐'이야말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그런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