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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일상/film 2017. 6. 4. 17:42
<냇물과 들판, 사랑스런 얼굴들(الماء والخضرة والوجه الحسن) / 드라마 / 유스리 나스랄라 /
샤디아(라일라 엘위), 라파트(바셈 삼라), 카리마(멘나 샬라비), 갈랄(아흐메드 다우드) / 125>
올해에도 아랍영화제를 다녀왔다. 현장발권의 경우 무료라서 유럽단편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돈들이지 않고 영화를 봤다. 대신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해서―더 일찍 오면 바로 표를 받을 수 있다―입장시각이 약간 늦어지기는 했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으로 만족했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늘어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아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지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아랍영화제라는 귀중한 기회를 통해 그 동안 이라크의 영화, 튀지니의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이집트 영화는 올해가 처음이다. 유스리 나스랄라는 현재 이집트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처음 귀에 접한 감독이었다. 하긴 아랍권 전체를 통틀어도 내가 알만한 감독은 없기는 하지만.
'샤디아(左)'에게 서투르게 마음을 표현하는 '라파트(右)'
이 영화는 '로칸다 식당'이라는 지역의 명물을 운영하는 일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은 비록 옛 명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행사 등에 외식업체로 출장나가면서 형제들이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런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은 '파티르'라는 지역의 유지. 그는 끊임없이 재개발을 들먹이며, '로칸다'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이 지역을 매입하려고 끊임없이 회유한다.
'갈랄(左)'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카리마(右)'
흔히 아랍 여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간의 관계가 꽤 복잡하다. 특히 애정관계가 복잡한데, 통념과 달리 여성이 적극적이고 과감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오히려 애정관계에서 여성이 주도적인 위치에 서 있는데, 감독과의 대화시간에서 감독이 밝히기를, 실제 사회상과는 차이가 있는 부분으로 감독 자신이 쾌락(Pleasure)에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이런 캐릭터들과 장면들을 연출했다고 한다. (특히 여전히 검열과 감시가 심한 이집트 사회에서 감독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형제지간인 '兄라파트(右)'와 '弟갈랄(左)'
음식에 고수를 넣을지 허브를 넣을지를 두고 내기를 걸기도 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이 정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독재통치 하 본인의 대학시절, 아랍의 봄 이후의 이집트, 중산층의 붕괴 등등... 오늘날 극단주의 이슬람무장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특권층이 중산층을 완전히 소거해버리면서 불만을 품은 일부 사람들이 극단주의 사상에 물든 결과라고 했다.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의 (수많은) 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 표현으로 풀어 말하자면) "반드시 '전체'를 '개인'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가령 이런 문제가 그렇다. '팔레스타인 독립'이라는 큰 화두 앞에서, 팔레스타인인 '개개인'이 갖고 있는 여러 이슈들은 묻히게 된다.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이루고 나면, 여타 문제는 뒤이어 해결될 것이라는 접근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의 의견이다. 복지 문제, 여성의 인권 문제, 난민 문제처럼 복잡한 사회 현안이 '독립 달성'만으로 해결될까?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이 실패한 것도 같은 이유다. 다들 무바라크만 끌어내리면 상황은 종료될 거라 말했다. 그렇지만 아랍의 봄이 종료되고 이집트에는 오히려 더 억압적인 군부정권이 들어섰다. 이해집단 사이에 이익 분배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맞이한 아랍의 봄은, 또 다른 겨울의 전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체'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차원에서 '개인'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할 말이 많은 감독 옆에서 바쁘게 통역을 하던 통역가분..
이 영화의 결국 "무분별한 개발 속에서 사라져가는 옛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성 인권에 다룬 「세헤라자데, 내게 말해줘」, 아랍의 봄에 대해 다룬 「혁명 이후」도 보고 싶은데, 보러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간 톡톡 튀는 캐릭터들과, 흥이 넘치는 스토리 덕분에 재미있게 영화를 봤다. 마지막의 코믹한 장면도 통쾌했다.
사람 살 곳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아랍세계에 대해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면, 유스리 나스랄라 외에도 다양한 감독, 다양한 국적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니 한 번쯤 관람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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