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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6 / 간쑤성이 준 마지막 선물(长城第一墩, 嘉峪关)여행/2017 중국 甘肅 2017. 7. 1. 00:50
장성 제1돈에는 절벽 밑을 깎아 지하 전시실을 만들어 놨는데, 그 끝에는 밑이 투명한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보는 경치가 제법 괜찮다
베이다 강(北大河)
이 물줄기는 뤄허(弱河)라는 간쑤성(내몽골 일부 포함)의 큰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뤄허라는 강은 '내륙유역'이라고 해서 바다가 아닌 분지의 호수에서 끝을 맞이하는 이 지역의 젖줄이다
대충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장성 제1돈에 가겠냐고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이미 예정됐던 오후 4시를 약간 넘긴 시각이었다. 7시 10분 란저우행 급행열차를 타려면 적어도 6시에는 쟈위관 남역에 도착해야 한다는 게 내 계획이었다. 과연 두 시간 내에 만리장성 제1돈을 다 둘러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서, 짧은 중국어지만 아저씨한테 그게 가능하냐는 의미에서 “커이?(可以?)”하고 계속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되돌아오기는 하는데, 이게 돈을 더 벌려는 생각에서 일단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두 시간 안에 만리장성 제1墩을 볼 수만 있다면 무조건 가고 싶었다.
지하전시실을 빠져 나와서 산책로를 걷기 시작해야 만리장성의 흔적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제1돈
이 성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곳을 들렀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장성의 잔해
5초 정도 고민했을까, 가겠다고 짧게 “워취(我去)”하고 말했다. 이 얼마나 짧은 중국어인가=_=;;; 그런데 기사 아저씨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기어를 넣었다. 그런데 차가 움직인지 채 2분이나 흘렀을까,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 후두둑 떨어지더니,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소나기가 엄청 쏟아졌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나는 이 소나기를 실크로드가 내게 선사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가 내릴 때는 과연 장성 제1돈을 볼 수 있을지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내 비가 걷히고 설산이 짠-하고 드러났기 때문이다.
장성 제1돈을 지나 협곡으로 향하는 중
여하간 견고하고 웅장한 만리장성은 없고 이 일대의 경치가 볼 만하다
아마도 숙영지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보이는데 관리가 잘 되지는 않는 듯했다
장성 제1돈은 말 그대로 만리장성의 첫번째 참호를 이루는 주둔지를 의미한다. 요컨대 만리장성의 끝 오브 끝인 셈이다. 여기에 이르려면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꽤 들어가야 한다. 제1돈은 이미 무너져 흘러내릴 대로 흘러내려서 사실상 바위와 다름 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곳의 볼거리는 가파른 협곡과 협곡을 뱀처럼 꾸불거리며 흘러내려가는 황톳빛 강물이다. 마침 좀전에 소나기가 내린 터라 그 연약하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절벽 끝에 뚫린 세 개의 각진 구멍이 앞서 들렀던 전망대다
무너져 내린 다르촉
재료 하나는 끝내주게 튼튼해 보이는데 어째 다리 자체는 좀 허술해 보여서 불안했던..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허술하게 놓여 있었는데, 이 다리 위에 오르면 협곡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무와 철로 땜질한 다리였는데, 견고하기는 했지만 밴쿠버에서 서스펜션 브릿지를 건널 때보다 무서웠다. 관성 때와 마찬가지로 공원이 넓었던지라, 예정된 시각(5시 30분)을 꽤 넘긴 뒤에야 다시 택시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리 위 풍경이 이렇다
물소리가 협곡에 메아리쳐서 시원시원하다
건조한 풍경만 보다 물을 만나니까 기분까지 상쾌하다
택시기사는 6시보다 이른 시각에 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쟈위관이라는 도시의 규모에는 걸맞지 않게, 으리으리한 기차역이었다. 고속철도가 정차하는 역인 만큼 최신시설이었다. 문제는 현금이 거의 동났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살 때 물어보니 이 역사에는 ATM기가 없단다. 더군다나 역내에 들어가니 식당이라고는 딱 한 군데밖에 없다.
협곡 맞은 편에서 바라본 장성 제1돈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내리던 비가 그치고 어느새 하늘이 쨍긋 웃기 시작했다
도로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도로 이곳저곳이 완전 물바다가 됐다
파란 설산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휴대폰으로는 잘 담기지 않아 아쉽다
대신 마음으로 설산을 담아 갔다
중국에 오기 전 일부러 유니온 페이 카드를 만들었는데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유니온 페이가 내장되어 있어도 해외카드는 결제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카드를 냈는데 계속 결제 실패가 떴다. 절망스러웠다ㅠㅠㅠ 현금은 없고 배는 고프고.. 식당에는 와 있는데 말이다. (변변치 않은 메뉴를 몇 십 위안씩 받는 것도 야속했다)
쟈위관 남역
길을 물으면 열에 열 중국사람들 친절히 알려준다
둔황에 있는 동안 H가 말하기로 간쑤성 사람들이 유달리 유하다고 말한 것 보면 동부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좀 거칠긴 한가보다
어쨌든 미국이 중국을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라고 매도한 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지는 않을 거다
여하간 간쑤성 사람들은 괜찮았다
결국 나는 묘안 아닌 묘안을 떠올렸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한국돈 3만원을 갖고 왔는데, 이 중 만 원을 들여 결제를 시도해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밥과 커피를 다해 65위안(식사 치고는 매우 비싼 금액이다)이었는데 환율로 환산했을 때 얼추 만 원(60위안)에 해당했기 때문에 혹시 한국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지 물었다. 오늘 한끼도 못 먹었다고 동정에 호소하며... 한창 자기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밥과 커피가 뚝딱 나왔다. 허겁지겁 먹고 나니 기운이 솟아났다. 이내 마음 편히 란저우로 움직일 수 있었다.
승강장 모습
열차 좋다(굳굳)
(워낙 짧은 일정이어서 고속철도밖에 이용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깨알 같은 장예 단샤 광고..
참고로 장예 단샤(张掖丹霞)라는 건 치차이 단샤(七彩丹霞)와 빙거우 단샤(冰沟丹霞)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나는 일정상 빙거우 단샤―치차이 단샤보다 장예에서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들르지 못했지만,
빙거우 단샤를 들른 H 말에 따르면, 치차이 단샤만큼은 아니어도 꽤 볼 만하다고 한다
실제로 장예 시 차원에서도 치차이 단샤 못지 않게 빙거우 단샤 홍보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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