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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다시 한 번 실크로드를 기약하며여행/2017 중국 甘肅 2017. 7. 2. 00:02
STORY 1. JOB
란저우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최종면접까지 마친 기업으로부터 합격 연락을 받았다.
공항에서의 앞선 절차가 예상보다 지연된 탓에 탑승까지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합격연락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취업결과를 전달할 시간 정도는 있었다.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간쑤성으로 넘어간 뒤에도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입사준비를 염두에 두면서도 간쑤성 구경에 빠져 있었다.
합격결과를 받아들고도 무덤덤했던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입사하게 될 기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상대 역시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아닌 둔황에서 만난 H였다.
사막에서 밤에 야영을 하는 동안 H에게 입사결과에 대한 얘기와 내 생각을 처음으로 말했다.
나는 이번 상반기 취업을 준비하면서 오로지 인사직무에 초점을 맞추었다.
상반기 채용의 경우 대개는 인사직무를 따로 뽑지 않는 기업이 다수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다른 직무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인사직무를 가장 희망했었다.
그런데 내가 몸담을 조직에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관리하고 올바른 조직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너무 막연하기만 하고, 또 경쟁적이고 문서업무 중심의 우리 기업문화에서 인사직무가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 막상 걱정이 앞섰다.
더 정확하게는 회의적인 생각이 앞섰다.
H가 내게 한 말은 내가 한번 바꿔보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사는 동안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이라,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H가 말했다.
내가 바란 건 현실적인 대화였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덕담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짧은 한 마디가 큰 응원이 된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초심을 유지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는 것처럼, 따듯한 말 한 마디에 얻은 고마움 또한 언젠가는 흐릿한 기억으로 변질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H가 내게 건넨 우호적인 말들은 꼭 마음에 새기고 싶다.
STORY 2. CHINA
사실 중국은 평소 전혀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이란이었다.
그렇지만 교통편도 너무 불편하고 이란 출입국 기록이 남음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 것 같았다.
이란과 적대관계에 있는 서방국가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여하간 6월에 취업결과 발표만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다, 도저히 허송세월하는 시간이 아까워 뒤늦게 여행을 계획했다.
J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말했더니 대뜸 중국을 강력추천했다.
중국 그리고 일본은 나한테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는 나라라고 했더니, 가보지도 않고서 그런 말을 하냐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렇지만 속으로 중국에 대한 편견은 완고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생각을 바꾼 것이 J가 보여준 사진이었다.
본인이 나중에 여행할 계획인 곳이라며 보여준 곳이 치차이 단샤였다.
중국에 이런 곳이 있나 하면서 집에서 좀 더 자세히 찾아보았고, 간쑤성이라면 가볼만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간쑤성이랑 겹치지는 않지만 윈난성의 차마고도나 중국에서 파키스탄 국경으로 넘어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간쑤성은 느낌이 꼭 들어맞았다.
그리고 J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시인했다.
겪어보지도 않고서 중국이 같은 문화권이라 딱히 새로울 게 없다든가, 아니면 중국인들은 다 별로라든가 하는 생각들은 근거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편협한 사고가 얼마나 금방 밑바닥을 드러내는지 다시금 깨달은 경험이었다.
STORY 3. ROAD MAP
문명(文明), 화해(和谐), 자유(自由), 평등(平等).
간쑤성 어딜 가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표어들이다.
한편 실크로드 일대는 동부보다 비교적 뒤늦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어디를 가도 공사판인데, 땅도 많은 나라가 굳이 저런 고층빌딩을 올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러울 만큼, 칙칙한 철근콘크리트 골조가 무서운 기세로 올라가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다 자금 조달에 실패했는지, 흉물스럽게 방치된 공사장들도 적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부동산 거품이 대단하겠다는 생각, 또한 빈부 양극화도 심각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국의 거침없는 경제성장률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국정부 또한 사회의 내부 안정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을 계도하기 위한 온갖 문구들이 빨간 글씨로 여기저기 써 있다.
이 거대한 나라의 성장을 이끌고 분배를 조정하는 것이 참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중국정부가 말하는 문명, 화해, 자유, 평등이란 게 무엇일지 문득 궁금했다.
STORY 4. SILK ROAD
한편 여러 부족이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조화롭게 삶을 살아가는 간쑤성의 풍경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소수민족의 자치구에 오성홍기를 거리 이곳저곳 걸어놓은 걸 보면 한족 중심의 정책이 역력해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 무슬림, 한족이 어울려 살아가던 샤허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정말 아쉬웠던 것이 실크로드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시안(西安)과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시안을 들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여행에 다음 기회라는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간쑤성에 선택과 집중을 했지만, 실크로드에서 미처 둘러보지 못한 다른 지역들을 언젠가 또 들르고 싶다.
또 다른 실크로드 여행을 기약하며 이번 간쑤성 여행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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