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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숨결 따라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18. 00:55
장릉 숲길 #1
장릉 숲길 #2
장릉
장릉(莊陵)은 조선왕조 제6대 왕인 단종의 능이다. 왕릉은 당연히 서울·경기 지역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강원도 영월의 외딴 곳에도 왕릉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역시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유폐되었는데, 유폐된 곳이 바로 영월이다. (겸사겸사 알아보니 북한에도 조선왕릉이 2기가 있다고 한다. 제릉(태조 신의왕후)과 후릉(정종)이 그것인데, 조선팔도로 따지자면 개성 역시 경기도에 속하니 경기 외 지역에 있는 왕릉으로는 결국 장릉이 유일한 셈이다)
다른 왕릉들이 그러하듯 장릉도 꽤나 언덕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장릉 앞에는 무척 오래된 370년 나이를 먹은 느릅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홍살문
제례가 이루어지는 정자각
천천히 왕릉을 둘러본 뒤 아버지와 한참을 느릅나무 밑 벤치에 앉아 쉬었다. 아직 피서철은 아닌지라, 관광객들의 그림자도 별로 보이지 않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정자각을 정면에 두고 한들한들 바람 따라 나부끼는 느릅나무 잎사귀를 넉놓고 바라보았다. 370년. 모진 역사를 견뎌낸 이 나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산책을 마치고 장릉을 빠져나오는 길, 들어오는 길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청사초롱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재실(齋室) 담장 너머로는 가지런히 손질된 향나무가 우아한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색깔의 청사초롱
청령포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한다
그런데 물이 워낙 없다보니 다리를 걷어붙이고 걸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멀리 산골짜기를 뚫고 나타난 철교
서강(西江)
영월 시내에도 단종의 이름을 딴 길이 있을 만큼 영월은 단종의 흔적이 남은 고장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영월 일대를 둘러보는 산책로의 이름도 '단종유배길'이라고 붙여서, 단종이 유폐지에서 느꼈을 비애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열한 살에 왕위에 즉위하여 열여덟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왕. 한국사를 공부할 때도 '태정태세문단세…'하고 줄줄 외우면서 틀에 박힌 공부만 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워낙 왕으로 있던 기간이 짧았으니 업적이랄 것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의 비정함이라는 게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를 게 없구나 하는 무상함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청령포만큼 소나무가 멋드러지게 군락을 이룬 곳은 처음 본 것 같다
장릉에서 느릅나무를 보고 놀랐는데, 600년이 되었다는 이 소나무 앞에서는 그냥 입이 떡 벌어졌다
고개를 들어도 한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단종이 머물던 어소
시계방향으로 청령포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맨 처음 발견한 어소에는 장독대며 다듬이, 인두 같은 살림살이가 재현되어 있었다. 소나무 사이를 얼마나 걸었을까, 둥그런 울타리에 둘러쌓인 거대한 소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600년 된 소나무. 조선왕조도 600년을 못 갔는데, 600년이라니. 유폐된 단종이 이 소나무에 올라앉아 청령포 너머를 구경하곤 했다는 설화까지 있는 걸 보면,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될 만한 대단한 소나무다..~a~
전망대에 올라
오후 햇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서강
어디선가 기차 소리가 들려온다 했더니..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청령포의 소나무숲
청령포의 소나무는 단종의 슬픔이 무색할 만큼 싱그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이런 자연풍경들을 보고 있자면,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아버지와 나는 전망대에 올라 서강을 본 다음, 다시 한 번 거대한 소나무를 둘러본 뒤 늦은 오후가 되어 청령포를 나섰다.
고라니 출현!!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발견한 황새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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