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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避暑)여행/2017 초여름 영월 2017. 7. 24. 00:50
고씨동굴로 이어지는 다리
다음날 일정은 고씨 동굴이었다. 전날 청령포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친 뒤, 나와 아버지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메기 매운탕과 냉면에 소주를 마셨다. 딱 성수기를 눈앞에 둔 비수기인지라 열려 있는 식당도 몇 안 되었고, 그나마도 손님은 우리 뿐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곳곳에 종교적인 문구가 걸려 있는 식당이었는데, 아주머니는 최대한 성심껏 우리를 대해 주셨다. 식사를 해결한 뒤에는 인근 펜션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하룻밤을 묵었다. 창문 너머 바베큐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오른편으로 바라본 영월 풍경
이건 왼편
전날 냉면을 맛있게 먹었던 지라, 같은 가게에서 또 냉면을 아침으로 먹었다'a'.. 여전히 맛있었음. 오늘 오전 일정으로 아버지와 내가 가려는 곳은, 임지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하던 고씨 일가가 숨어들어 '고씨 동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영월의 어느 석회 동굴이었다. 이전에도 단양에서 동굴 구경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월의 동굴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먼저 안전모를 쓴 후 동굴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시원했다.
동굴 안에서 본 지하수가 엄청 맑다
개방된 공간보다 개방되지 않은 공간이 훨씬 넓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이내 시간이 흐를 수록 시원하다기보다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겉옷을 여벌로 챙겨왔어야 했나 싶었을 정도로. 어둠 속에서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두리번거리며 찾다보면 동굴 아래를 졸졸 흐르는 개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동굴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투명한 생물체는 없나 샅샅이 쳐다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동굴을 돌아나와 거의 탐방로가 끝날 때 즈음 푸드덕대는 박쥐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을 뿐-_-)
왜란 당시 고씨 일가가 피난처로 쓰던 움푹한 공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데, 바로 강을 옆에 끼고 있는 산기슭에서 (게다가 경황도 없었을 텐데) 이런 동굴을 찾아냈다는 것도 신기하고, 의병활동을 주도하는 고씨 일가를 소탕하겠다고 이곳 동굴까지 찾아들어온 왜군들도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사람이 봐도 접근이 쉽지 않아보이는 곳인데, 600년 전 사람들은 지형지물을 읽어내는 눈썰미가 대단했던 것 같다.
너무 어두워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데는 무리가 있고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다녔는데, 다시 봐도 잘 나온 사진은 몇 없다
저기 중간이 끊긴 다리가 오작교다
고씨 동굴을 빠져나오니 냉탕에서 갑자기 온탕으로 넘어온 느낌이었다~_~ 다시 푹푹 찌는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입구와 다리 사이에 그늘진 휴게공간 정도의 온도가 딱 좋았다. 잠시 휴게공간에 머물렀다가 건너온 다리를 다시 되돌아가니 동굴박물관이 보였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박물관도 쭈욱 들러보려고 했는데, 고씨 동굴과는 별도로 입장료를 받았다. 굳이 3,000원을 더 내고 싶지는 않아서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은 허무했지만, 이것이 짧은 영월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물론 김삿갓 계곡이나 어라연처럼 들르지 않은 지역이 남아 있었지만, 이 둘 모두 정선 방면의 동강 근처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서강 일대에서 짧게 이동을 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리 편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영월 구경은 이쯤에서 만족하고, 우리는 아쉬움 없이 집으로 향했다. 햇빛이 발산하는 열기가 급속히 올라가는, 정오로부터 꽤 한참 남은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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