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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對話) 1 : 역사(歷史)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1. 01:14
"'아소(阿蘇)'의 '아', '쓰나미(津波)'의 '쓰'..."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8시를 조금 넘긴 늦은 저녁이었다.
"일본사람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야. 이런 정신력으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구. 뭘하든 젊은 일본사람들은 반드시 지고 말 게 분명해. 안그래 M군?"
S상의 기습적인 질문에 놀란듯, 잠시 M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뭇머뭇 마지못해 대답한 M군은 이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요코하마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이후 유명 맥주업체에 입사하여 영업사원으로 일한지는 2년차라고 했다. 25세에 벌써 2년차의 경력이라니, 뭔가 뒤쳐진 기분이었다.
"문학부라 쓰고, 천재라 읽는다!"
이어지는 S상의 농담. S상은 껄껄 웃고 M군은 머쓱해하는데, 농담이라기엔 재미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S상과 M군은 맥주를 납품받는 식당주인과 맥주 영업관리 사원으로 친구가 된 사이었다. 편한 사이라고는 해도 S상이 M군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았으니, S상이 M군의 멘토 같은 느낌이었다. S상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여하간 일본사람들은 평화주의자니까 절대 걱정 말아요. 일본사람들은 전쟁을 할 생각도 없고, 전쟁이 난다 한들 기본적으로 이길 수가 없어."
장어덮밥에 생맥주를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이런 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대여섯 개 자리가 전부인 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에는, S상과 M군 단둘 뿐이었는데 낌새로 보아 한창 둘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중인 것 같았다. 하루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이 든든해질 만한 메뉴를 주문한 상태였다. 그런데 서글서글한 S상이 이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뜬금없이 꺼낸 이야기가 문제의 '평화주의자론'이었다.
"일본은 여전히 경제력도 대단하고, 군대는 없어도 자위대가 강력하잖아요?"
주문한 식사가 나온 뒤에도 한동안 전쟁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가니, 도대체 S상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웠다. 일부러 자위대 이야기로 운을 띄워 보았다.
"자위대는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야. 아무리 무기가 좋고 이지스함이 들어온다 한들 이기느냐 마느냐는 결국 정신력의 문제지."
"그래도 이번에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개정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국가정상화를 위해 헌법을 개정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아무도 없어요.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전방 기지가 되어주기 위해 헌법을 고치겠다는 거지. 우리는 미국의 정책에 좌지우지 될 뿐이고, 어리석은 총리는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야. M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S상 본인만의 생각이 아님을 내게 확인시켜주겠다는 듯, 언제부터인가 S상은 말끝마다 M군에게 동의를 구했다. M군은 말수가 많지 않아서―며칠전 여자친구에게 차였다고도 했다―M군의 자세한 의견을 들을 수 없었지만, S상이 질문해 올 때마다 '그렇죠', '맞아요'라든가 하는 식의 대답을 덧붙였다. 생맥주 한 잔을 끝낼 즈음, S상이 맥주 한 잔을 서비스로 더 내어왔다. 한국인과 국제교류를 하게 돼서 정말 기쁘다며.
"나는 우리나라도 징병제를 했으면 좋겠소. 우리 젊은이들은 평화주의자라 사람들이 패기도 없고 근성도 없거든. 적어도 전쟁에 대비해 훈련을 하다보면 '생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몸으로 터득할 수 있다고. 어떻게 생각해 M군?"
다시 평화주의자 이야기. 말을 얼버무리는 M군에게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했다. 정말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나약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M군은 망설임없이 인정한다. 자꾸 궁지에 몰리는 것 같아 M군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건만, M군은 변명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M군이 S상의 평화주의자론을 귀찮은 잔소리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M군은 자리를 뜨지는 않았고, S상이 주도하는 대화를 묵묵히 들으며 술을 마셨다.
"K상,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게 뭔지 알아요?"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사무라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을 죽이는 무사를 생각하는데, 사무라이가 왜 사람을 죽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할복까지 했다고 생각하오? 바로 지키기(守る) 위해서요. 모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을을 지키고자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었소. 그리고 가족과 마을을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을 배를 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사무라이라오."
어느새 서비스로 세 번째 생맥주 잔이 나왔다.
"나는 가끔 취미로 수렵을 한다오. 살생을 하면서 살고 죽는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오.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살생할 수 있는지, 또는 죽음에 맞설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오. 하지만 모자람 없이 살아온 젊은 일본인들에게 그런 사무라이 정신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지. 일본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너무 안이해(甘い). 나 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사무라이 정신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가끔 M군을 붙잡고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오. 한국인 친구, 당신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겠소?”
살벌한 질문을 너무 진지하게 물어서 잠시 당황했지만,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 아니나며 아무래도 무리라고 대답했다. S상은 같은 질문을 M군에게도 했는데, M군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죽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게 바로 너와 K상의 차이야. 정말 죽을 (또는 죽일) 각오가 선 사람은 자네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지 않아. 무리라고 대답한 한국인 친구야말로 그런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지."
S상이 왜 처음부터 유독 평화주의자니 징병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S상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요즘 세상에 전쟁을 원하는 일본인은 없다오. 2차 세계대전에서 몇몇 어리석은 군인 때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잘못 이용됐거든. 시간이 나거든 꼭 에타지마(江田島)에 있는 해군학교에 가봤으면 좋겠어. 진주만에 동원된 카미카제(神風) 알죠? 옛 해군기지에 카미카제에 동원된 소년병들이 남긴 유서들이 거기에 전시돼 있다오. 모두 도쿄대나 와세다대를 나온 인재들이었지. 그저 나라의 부름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버렸지만, 제국을 위해 죽는다는 생각으로 끌려간 소년병은 없었다오. 자신이 징집되어야 가족이 무사하기 때문에 전쟁에 나선 거지. 한국에 돌아가거든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K상이 잘 전달해줬으면 좋겠어. M군도 같은 생각이지?"
낯선 장소 낯선 상황에서 계속되는 진지한 이야기. 나도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해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내용을 곰곰히 따져보았다. 원자폭탄 실험의 직격탄을 맞은 이곳 히로시마(広島). 그래서 '평화'라는 키워드가 사람들의 뇌리에 유달리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한국인인 나의 입장에서 항상 느끼는 아이러니는 결국 한 가지다. 우리의 입장―사람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에서 20세기 전반의 일본은 끔찍한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소년병으로 징집된 건 비단 일본의 대학생 뿐만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본인들이 입은 상처에 대해 그토록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면, 과연 일본에 의해 주변국이 겪은 상처에 대해서는 그만큼 잘 알고 있을까? 그러는 사이 S상이 이번에는 주섬주섬 사케를 꺼내왔다. 이번에는 서비스로 사케란다. 이쯤되니 몸둘 바를 몰랐다. 한국어로 '건배'를 알려주니, 두 사람 모두 곧바로 '건배'라는 말을 외웠고, 우리 세 사람은 '건배!'와 함께 사케를 마시기 시작했다.
"독일의 사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독일 총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주변국에 방문할 때에도 전쟁에 대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왜 일본은 그렇지 않은 거죠? 아무리 일본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한다고 한들, 자국에서는 해마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데, 한국인으로서 그런 일본의 제스쳐가 진정성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여론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죄를 해달라는 것보다, 적어도 역사 문제에 대해 자극적인 언행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조금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는데, 예상외로 매우 단도직입적인 대답이 되돌아와서 놀랐다.
"그건 나도 전적으로 공감하오. 문제는 일본은 천황이 사는 나라라는 거요. 하고 많은 신사 가운데, 하필 전범(戰犯)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에 정치인들이 참배하러 가는 건 천황을 위해 죽은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기 때문이라오. 사실 전범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영령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는 내가 봐도 어려울 것 같아. 반면 독일은 그런 문제에서는 자유로웠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를 지낸 도조 히데키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인 동시에, 전후에는 천황에 대해 사무라이로서 임하고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라오. 우리에게는 천황과 신도(神道)라는 문화가 있는데, 간단치 않은 문제지..."
'관점의 차이라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S상은 잔이 비면 계속 사케를 채워줬다. 손님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대해줬다. 사케병이 다 빌 때까지 이야기하며 마시자고 했다. 그리고서는 다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의 정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때에는 말수가 적던 M군도 함께 설명을 거들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어에 대해서는 영어로 부연설명―M군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제개발협력(ODA)을 공부하기 위해 해외 체류경험이 있다고 소개했었다―을 해주었다.
"일본에는 와비사비(侘び寂び)라는 정서가 있다오. 히로시마 공원에는 가봤나? 거기에 비석이 하나 있어. '편안히 잠드소서.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安らかに眠って下さい、過ちは繰返しませぬから)'라고. 그런데 가만 보면 주어(主語)가 없어. 여지를 남겨두는 거지. 원폭 투하든 2차 세계대전이든 모두 일본이 빌미를 제공한 잘못은 있되, 이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을 인류 모두에게 말하는 거야. 일본인들의 표현방식이 이렇다오."
말하는 중간에도 몇 번씩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한국사람들에게 잘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의 전체적인 뉘앙스에 대해 부연하자면, 젊은 M군 뿐만 아니라 S상 역시 심리의 근저에는 어떤 열패감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는 죄책감, 패전 이후 자주적인 국가 운영이 불가능해졌다는 좌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외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얽히고 설켜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종종 일본의 정책 다수가 미국에 휘둘리고 있다는 언급을 할 때마다, 모든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일본인 모두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라고 할 때, 특히 그런 인상을 받았다.
뒤이어 또 다른 민감한 문제가 나왔다.
"K상,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망설일 것도 없었지만, 대화의 상대방이 일본인이다보니 막상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위안부를 비롯해 난징 대학살처럼 비인도적인 행위가 행해졌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태도가 성의없다는 점을 언급했다. 긴 답변을 이어가기도 전에 이미 S상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내게는 이날의 대화에서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 대목이었다.
"전쟁에서 승자는 예외없이 전리품을 약탈하고 여성을 착취하지 않습니까?"
말문이 막혔다. 첫째, 대꾸야 얼마든 할 수 있었지만 어느 선이 적정한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둘째, S상의 말을 문장 그대로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대륙(아메리카)의 역사가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잘잘못'과는 별개로 '잘못에 대한 대응방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S상이 말을 이었다.
"결국 와비사비의 문제라오. 수년전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지시한 미군 기장이 히로시마를 방문해서 당시 피폭자들을 면담했어. 하지만 그는 끝끝내 피폭자에게 사죄(詫び)하지 않았지. 그렇지만 우리라고 사죄를 구하지는 않았다오.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와) 동일하게 볼 수 없는 문제지 않나요? 제3자인 한국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이 먼저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기 때문에 미국이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공격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의견의 요지는 우리는 까닭없이 침략을 당했다―일본에서는 이를 '진출'이라고 표현하겠지만―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은 엘리트들의 잘못된 결정이었든 무엇이었든 간에 까닭이 있었기에 공격을 당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폭 사용이 합리화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째 조금은 이야기가 도돌이표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 역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S상이 최대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S상은 이야기 중간에 전후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도 없었을 거라고도 말했다.)
결국 사람이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S상의 방점은 '일본이 입힌 상처'보다는 '일본이 입은 상처'에 더 놓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점의 차이만 재확인한 무의미한 소득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S상에게도 말했지만, 일본인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建前)과 실제로 머릿속에 품은 생각(本音)을 헤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S상의 가감없는 이야기는 그동안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지니고 있던 궁금증을 상당부분 해소해주었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일본인도 드물거니와, 정치나 역사에 대해 자기 인식을 세워놓은 사람은 더 드문 법이다. S상은 S상 나름대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거론할 때, 정곡을 찔렸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할 말이 많아 보였고 실제로 말도 많았다.
한편 S상이 한국 젊은이는 일본의 젊은이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추켜세우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야말로 우리의 근대사에 대해 얕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와중에 M군은 시종일관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이다. 자기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넋놓고 있는 얼굴이었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M군이 못마땅한 듯, S상이 '어이!'하며 M군의 주의를 끌었다.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 한 명 찾아오지 않는 이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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