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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對話) 2 : 후쿠시마(福島)와 다케시마(竹島)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1. 03:06
#후쿠시마(福島)
"K상 그거 아나? 어느 월드컵에서였던가, 한국인들이 플래카드에 '쓰나미 축하합니다(津波おめでとう)’라 쓴 거. 일본사람들 그 때 상처받았어."
나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지나가는 뉴스로 잠깐 본 기억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앞서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비중있는 뉴스가 아니어서 사실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당황해서 중언부언했던 것 같다.
"그게 미디어의 문제야. 한국에서는 당연히 큰 뉴스가 아니었겠지. 그렇지만 (우리에 대한 악감정이) 이 정도인 건가 하고 생각했어. 미디어로 치자면 여기 언론에서도 아베 스캔들이 터지든 어떻든 미디어에서는 지지율이 높다고 보도하거든. 하지만 다들 일이 잘못 흘러 가고 있다는 걸 알아. 그렇지 M군?"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M군. 다행히도 그밖에 월드컵에서 발생한 해당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이 얘기하지 않았다. 더 추궁했다면 변명조의 얘기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겸사겸사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물었다.
"히로시마에 오기 전 일본에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도쿄, 다른 한 번은 간사이 지방으로 해서...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 이후로는 일본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되었어요. 일본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망설이고 망설이다 이번에 이렇게 어렵사리 히로시마에 왔습니다. 궁금한 게 일본 현지인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S상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반반! 후쿠시마 재해에 대해 가엾다(可愛がる)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이미 글렀다(もう駄目だ)고 생각하는 사람 반반... 하지만 알다시피 20년이 걸려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인데, 아무도 후쿠시마에서 온 것을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오. 일본에 유통되는 수산물만 해도 한국에서 온 것이 70% 가량이니까."
아까부터 M군을 앞에 두고 젊은 세대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나, 일본의 현황에 대해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나, 전반적으로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 일본에 관해 좀 더 전향적(前向き)인 기대는 없냐고 물었다.
"그나마 기대하는 건 다른 나라는 해보지 못한 세슘 오염 방지 기술을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점 정도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고 보니 일본 정부가 지하수 냉각기술을 개발해서 후쿠시마 지역에 세슘 오염을 줄이려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다 미디어에서 만드는 이야기지...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우. 조그만 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터져버렸으니.."
의도와 달리 다시 이야기가 침울해졌다. 사실 비전문가가 봐도 후쿠시마 복원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거라는 건 자명하다. 나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동안 현지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가장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시종일관 책임을 회피하는 도쿄전력 수뇌부의 후안무치한 태도였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뜬 모양이었다. 일본정부에서 후쿠시마에서 난 농산물의 세슘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이용하라고 한다지만, 이를 위해 사전에 기존의 세슘 한도 기준치를 아예 높여버렸다고 한다.
S상은 이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에 여행온 동안 절대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가지 말라고 했다. 참고로 본인이 운영하는 이곳은 후쿠시마산(産)과는 전혀 무관함을 덧붙이며.
#독도(獨島)
내가 S상과 M군에게 대표적인 히로시마 사투리를 하나 알려달라고 하면서, 히로시마가 자리잡은 쥬고쿠(中国) 지역의 특색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S상이 '동해'라는 표현을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쥬고쿠 지역의 자랑거리를 알려달라고 하니, 생선이 싱싱하다―도쿄에서 파는 생선은 생선이 아니라고까지 했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는데, 내가 쥬고쿠에 면하고 있는 두 바다, 즉 세토내해(瀬戸内海)와 동해에 관해 보다 자세히 물으니 반응이 미묘했다. S상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동해(東海)'라는 표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끊긴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나는, '일본해(日本海)'라고 바꿔 말했다. 그제서야 내가 기대하던 반응을 보였다. 이때는 그냥 속으로 생각만 하고 넘어갔지만, 나중에 독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내가 아는 선배가 시코쿠(四国)에서 식당을 아주 크게 운영하고 있다오. 몇몇 한국인 견습생도 있고... 그런데 다케시마 얘기만 나오면 한국 견습생들이 독도가 맞다고 한다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그 선배가 한일간 영토문제에 대해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를 식당 정원―식당이 많이 크다고 했다―에서 열었다오. 단지 네 거다 내 거다 식이 아니라 심도 있게 서로의 관점을 좁히자는 의미에서."
내가 봤을 때, 에둘러 말하기는 해도 S상은 다케시마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무주지 점유'는 전형적인 일본 정부의 논리(이자 교육방침)인데, 딱 무주지 점유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독도는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신라가 정벌한 섬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20세기에 독도를 무주지로 간주하고 무력으로 점유한 것과, 이미 6세기에 그 땅을 정벌한 것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쯤 되니, S상도 한일간 영토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화제를 전환했다. (서로 왜 이토록 많은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의 가장 우선 순위는 러시아와 북방열도 문제이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센카쿠 열도 문제라오. 센카쿠 열도의 경우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는 있지만 중국이 계속 노리고 있으니까. 센카쿠를 잃으면 정말 일본은 이도저도 아닌 거야. M군 내 말이 맞지?"
다시 눈이 휘둥그레진 M군. 그래도 동의할 때만큼은 목소리를 높인다.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영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모양이었다.
"오키나와만 해도 1970년대에 들어서야 미국한테 반환받았는데, 센카쿠를 잃는 건 정말이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오키나와가 반환된 정확한 연도에 대해 M군과 S상간에 대화가 오갔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들 나름의 피해의식이 전해졌다. 더불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묻어났다. 일본이나 한국은 적어도 상생에 대해 고민하는 집단이라면, 미국이나 중국은 가차없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나라라는 식이었다.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와 이 대화에서 얻은 소소한 소득이라면 히로시마 사투리를 하나 배웠다는 점이다. 여기 히로시마에서는 ’정말/매우/엄청(とても)’이라는 의미에서 '부치(ぶち)'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S상이 들어준 예시는 「ぶちたいぎ」였는데, 표준 말로는 '엄청 피곤해(とても疲れた)’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히로시마 사투리에 정통할리 없는 요코하마 출신의 M군이 '귀찮다(面倒くさい)'는 의미도 내포하지 않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둘이 한동안 옥신각신하다 결론은 '엄청 피곤해'라는 기본의미를 갖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와중에도 계속 사케를 마시고 있었으니, S상이 술병을 들고 올 때까지만 해도 반 병 넘게 남아 있던 사케가, 어느새 4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 기본메뉴로 장어덮밥에 생맥주 한 잔만 달랑 주문하고 이렇게까지 서비스를 받아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 즈음, S상이 내가 지불해야 할 금액을 다시 종이에 적어주며 안심하고 즐기다 가라고 했다. 사케 잔이 하나둘 늘어갈 수록 M군은 점점 고꾸라져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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