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No More Hiroshima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9. 21:21
아직도 2011년 3월 11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TV 화면에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강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으로 바라본 기억이 있다.
동일본 대지진(東日本大震災)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의 재앙은 정부 차원에서 손쓸 수 없는 수준의 자연재앙이었고, 실제로 모든 후속조치는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걸 언론―그마저 비공식적인 자료들이 완전 공개된 것은 아니겠지만―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세슘이니 피폭이니 하는 것들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생각했다.
더 이상 일본은 갈 수 없겠구나 하고.
2박 3일 도쿄를 둘러봤던 기억도, 9일간 간사이 지방에서 친구와 함께 남겼던 추억들도 일순간 너무나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졌다.
2015년이 되어 벨라루스 출신 저널리스트가 저술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었다.
책은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사고 은폐에 급급했던 소련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처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비극은,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정부임에도 피폭을 견뎌가며 체르노빌 원전을 콘크리트로 덮은 것은 구 소련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체르노빌이 지금은 상품화되어 하나의 투어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것이 망각의 동물인가보다.
꼭 사반세기가 지나 일본에서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사고 이후의 미흡한 대처마저 똑같다.
사고의 규모는 더 어마어마하지만, 오히려 대응은 더 허술한지도 모르겠다.
연수기간 중 짧은 휴일을 이용해 히로시마를 다녀온 것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이전부터 츄고쿠(中国) 지방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영 꺼림칙한 기분 때문에 선뜻 일본을 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출발 전날에서야 비행티켓을 구매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숙소조차 정할 시간이 없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만 챙겨간다는 생각으로 단출하게 가방을 쌌다.
규슈와 간사이 지방 사이에 낀 이 지역은 이름부터 특이하다.
역사적으로 규슈와 간사이 지방을 잇는 중간지역으로서 성장했기 때문에 츄고쿠(中国)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츄고쿠(中国)라 함은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한다.
역사상 중국의 조공(朝貢) 시스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일본의 지리적 이점 때문일까.
내게 츄고쿠는 이색적이고 독특한 지역으로 비춰졌다.
츄고쿠 지방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에는 이와쿠니와 히로시마의 한정된 지역밖에 들르지 못했다.
후쿠시마의 상흔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일본에서,
원폭실험의 최초 실험무대가 되었던 히로시마는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생생히 증언하는 또 다른 상처였다.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둘러보며 당시의 참상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평화공원의 위령비에는 한글로 된 문구도 있는데, 당시에 강제징용 중 피폭당한 조선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슬픈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무기의 이름은 인간의 순수함을 연상시키는 '리틀 보이'다.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물리학 연구는 비참한 대량살상을 초래했다.
No More Hiroshima.
히로시마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문구다.
그렇지만 제2의 체르노빌이 되풀이된 것처럼, 인류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 누구도 호언장담할 수 없다.
히로시마 시내 곳곳―대로나 공원 등등―에는 심지어 '평화(平和)’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그러나 '평화'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볼 때마다, 공허한 울림을 느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평화'가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햇빛이 유달리 강했던 여름날,
햇빛을 한껏 머금은 히로시마의 건물들이 그저 밝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여행 > 2017 일본 히로시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1 / 산 위 작은 성(이와쿠니성(岩国城), 이와쿠니(岩国)) (0) 2017.08.13 DAY 1 / 사무라이를 싣는 다리(킨타이교(錦帯橋), 이와쿠니(岩国)) (0) 2017.08.09 대화(對話) 3 : 인생(人生) (0) 2017.07.23 대화(對話) 2 : 후쿠시마(福島)와 다케시마(竹島) (0) 2017.07.21 대화(對話) 1 : 역사(歷史) (0) 201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