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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對話) 3 : 인생(人生)여행/2017 일본 히로시마 2017. 7. 23. 22:23
"M군, 10년 뒤 꿈이 뭐야?"
"지금 일하는 회사의 해외지사에서 새 판로를 뚫고 싶어."
국제개발협력을 공부하려고 아프리카의 케냐와 탄자니아를 다녀온 적도 있다는 걸 보면, M군은 국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S상은 과장된 말투로 M군에게 진심이냐고 놀렸지만, 나는 M군의 말이 방금 지어낸 빈말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사실 무엇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일본의 경우 인구감소로 최근 취업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의 경우 취업시장이 일본보다 훨씬 안 좋거든요.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반년간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지만 왜 열심히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주변에 먼저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야근에 시달리고 전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거든요. 그래도 어릴 때는 진로를 고민할 때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결국 다 자기만족을 위해 뭔가 열심히 했던 게 어닌가 싶어요."
"K상,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자기만족이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든 말야. 자기만족이어도 좋아."
생각보다 간결한 대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면 답―심지어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일 수 있는데도―을 구하려고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쏟아온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S상이 말을 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사람(ひと), 물건(もの), 돈(かね). K상 내가 말하는 세 가지가 뭔지는 이해하지?"
내가 세 가지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확인한 뒤, S상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물건(もの)이라는 건 집이나 자동차처럼 물질적으로 소유하는 걸 말하는 거라오. 모든 사람들은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매기지. 누군가는 물건을, 누군가는 돈을 일순위로 둔다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 물건, 돈 순으로 우선 순위를 매기겠어. 49살을 살고 보니 만사에서 사람이 가장 먼저 오고 돈이 가장 나중에 오더라 이거야."
S상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식당에서 초면인 사람과 삶의 방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그저 놀라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S상에 대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정신적인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사무라이 정신에 대해 말할 때부터, S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K상, 내 말 명심해요, 꼭.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돼. K상, 곧 현업에 배치된다고 했는데, 분명 멋진 사람도 있고 형편없는 사람도 있을 거요. 하지만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웃는 얼굴로 먼저 다가가는 거야. 매사에 하나라도 더 신경을 기울이는 거요. 그렇게 최소한 3년은 일해야 돼. 3년이야. 사람에게 베푼 건 어떤 형식으로든 되돌아오게 되어 있소. 3년만 견뎌내면 반드시 인정받을 거야."
사실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조금만 더 참으라는 말이었다. 확인되지도 않은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 의심이 많은 나로서는 좀처럼 견디기 힘든 삶의 방식이자 가치관이었다. 그렇지만 과감한 성격은 못 되는지라, 더 정확히는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로워 하면서도 그러한 삶의 틀에 나를 꾸역꾸역 끼워맞춰 왔던 것이다. 그런데 결론은 좀 더 견디며 지켜보라는 것일지언정, S상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S상이 내게 진심을 다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人を大事にすること)이다. 이전에는 해본 적 없는 생각인데, S상의 말에 공명(共鳴)하는 바가 컸다.
어느덧 식당에는 나와 S상만 남았다. 화요일 밤도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M군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렇지 않아도 생맥주 세 잔에다―M군은 내가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아마도 술을 더 먹은 상태였을 수도 있다―사케까지 마시고 있었으니, M군은 점점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뻐끔뻐끔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가 싶더니 얼마 안 있어 사라진 것이다. 식당에 도착한 이후 단 한 번도 시각을 확인하지 않은 나는, 얼마나 늦은 시각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S상은 줄곧 여기 히로시마에 사셨어요?"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지만, 도쿄에도 있었고,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에도 있어 봤지."
"도쿄요?"
"도쿄로 가출했었거든. 가출이 뭔지 알지? 간사이 지방은 요리를 배우려고 머물렀었고."
S상의 아버지는 히로시마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요리사로, S상은 그런 아버지의 가업을 이었다고 했다. 지금의 가게도 아버지 덕에 큰 부담없이 물려 받았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집을 떠날 만큼의 사연이 있었던 건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S상, 늦은 시각에 자꾸 질문 드려서 죄송한데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S상은 마음이 괴로웠던 적이 있나요? 저는 그런 적이 있어요. 제 20대는 자격지심으로 가득 찼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며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게 사람의 본성인 걸까요, 어떤 원인을 제 안에서 찾아야 하는 순간에도 그러한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해왔던 것 같아요. 그게 저를 괴롭게 했어요. 30대를 눈앞에 두니 이제는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 당시의 제가 어디에서 잘못되었던 건지 잘 모르겠으니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K상, 어쩔 수 없는 것(どうしようもないこと)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둬요. 말을 해서, 티를 내서, 억울함을 호소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해. 내가 얘기를 나눠본 바 K상은 지금만으로 충분히 훌륭하다구.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하는 말이 주변 사람들을 항상 소중이 여기라는 거야. 가족, 친구, 선배 모두. 그게 행복이야."
침묵을 지키며 생각을 정리했다.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니 보다는, S상의 말을 곰곰히 곱씹어 볼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이기도 했지만, 나처럼 나이의 십의 자리 숫자가 곧 바뀌는 어떤 아저씨의 지혜로운 한 마디 말이었다. 나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뒤늦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할 생각에 미쳤다. 12시 30분.
"아저씨, 시간이 늦어서 아무래도 가봐야겠어요. 오늘 정말 감사해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K상, 3년 뒤에 다시 우리 가게 찾아와. 그 때는 아내와 아이들도 데리고 와."
"그 때까지 확실히 계시는 거죠?"
"있고 말고!"
약속한 대로 장어덮밥 한 그릇에 생맥주 한 잔 분의 가격만 지불하고 가게를 나섰다. S상은 가게 문간까지 배웅을 나와주었다.
3년 뒤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S상과 M군과의 대화가 메아리가 되어 한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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