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3 / 천안문에서 외조(外朝)까지여행/2018 중국 北京 2018. 5. 29. 00:23
태화전(太和殿)
이튿날, 다시 한 번 자금성 입성 도전!!'a'
숙소를 나서며
왕푸징 일대 #1
왕푸징 일대 #2
왕푸징 일대 #3
베이징에 볼 것은 참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금성도 들어가보지 않고서 베이징을 다녀왔다고 할 수는 없었다...ㅠ 입장이 사전예약제로 바뀐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게 내심 안타까웠지만 별 수 없는 노릇. 전날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서 입장권 두 매를 예약하고, 표를 수령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대비해 스탭에게 물어볼 수 있는 중국어 질문까지 직원에게 받아두었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건 직원이 표 두 장을 예매하기 위해 간단한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알리페이로 결제하기까지 채 1분이 안 걸렸다는 점이다. 정말 예매를 하긴 한 건가 싶을 만큼 간단한 절차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하간 다음날 다시 자금성으로 아침 일찍부터 향했는데, 중간에 일이 있어 둥단(东单)역에서 하차했다. 이후로는 왕푸징이 멀지 않아서 그냥 왕푸징 역으로 향했고, 왕푸징 이후에 천안문동역과 천안문서역에서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그 길로 쭈욱 천안문까지 걸어갔다. 자금성(고궁박물원)은 개관시간이 오전 8시 30분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었지만, 천안문동역 즈음부터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중국은 사람이 넘치는 나라다'~'
천안문
천안문 통과
천안문에서 내려다본 천안문 광장 #1
천안문에서 내려다본 천안문 광장 #2
일찌감치 만리장성에 갈 계획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천천히 천안문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천안문에 들어오기 전 검문을 마쳤는데, 천안문에 오르기 위해서는 검문 따로 소지품 보관 따로―심지어 입장료와 소지품 보관비는 따로 수령;;―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천안문은 규모가 딱 외관으로 보이는 정도의 크기인데, 자금성에 입장하기 전에 유일하게 천안문광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천안문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정면으로는 모주석기념관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는 인민대회당이, 그리고 왼편으로는 중국국가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오성홍기 이외에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한 건축양식이, 뉴스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평양시내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공산국가 느낌이 물씬 났다. 살풍경하면서도 국가의 권위를 한껏 강조하는 규모였다.
천안문에서 바라본 자금성 #1
천안문에서 바라본 자금성 #2
오문(午門) 통과
다음으로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으로 향했다. 스탭에게 따로 물어볼 것도 없이 예매 영수증을 보여주니 매표소 대기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자금성(紫禁城)을 오기 전부터 고궁박물원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헷갈리고 어색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궁궐인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이라 말하는 게 뭔가 문화재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궁(故宮)'이라는 표현은 중국에서 황실이 사라진 이후 중화권에서 꽤 보편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대만역시 수도 타이베이에 고궁박물관을 갖고 있다. (타이베이를 여행할 당시 들르지는 않았지만, 국공내전 이후 국민당이 본토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타이베이를 여행할 때 고궁박물관을 가보지 않았으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이곳 자금성(고궁박물원)의 스케일은 대단하다. 당장 오문만 해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인도/이슬람 지역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중세기 유물을 특별전시해 놓은 것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이 퇴장하는 신무문(神武門)에서는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희화문(熙和門)
오문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1
오문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2
오문에서 내려다본 자금성 #3
3대전(3大殿 :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으로 이루어진 외조(外朝) 또는 전조(前朝)―궁궐의 의식과 의례가 이루어지던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문(午門)을 거쳐야 한다. 이 '오문(午門)'이라는 표현이 마치 천하의 나침반을 의미하는 것 같아 이름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오문에 나 있는 다섯 개의 통로 가운데 중앙의 통로는 황제만 이용할 수 있다는 관례가 지금도 적용되어서 관광객들은 나머지 문으로 자금성에 입장할 수 있다.
오문을 지나면 금수교(金水橋)와 태화문이 나타나는데, 일부 보강공사 중이라 이름만큼 화려한 풍경은 아니었다. 이름이 마음에 드는 오문을 올라보지 않을 수 없어서 오문에 올라 다시 한 번 경치를 감상했다. 박물관은 아무래도 아버지에겐 큰 흥밋거리는 아닐 것 같아 그냥 지나가려는데, 아버지가 성큼 오문의 전시실에 발을 들이셨다. 뭐..영문으로 설명이 다시 풀이되어 있기는 해도 간체자로 된 텍스트가 너무 복잡해 보이기 때문에 설명은 무시하고 유물들만 봤는데, 요즘사람들이 옛날물건을 다시 재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유럽의 유물들도 대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도지역과 이슬람지역의 단도(短刀)가 눈에 띄었다. 반면 아버지는 유리공예에 관심을 보이셨다. 지금도 보석이나 장신구는 값나가는 물건들이지만, 산업혁명 이전에 만들어지던 만큼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데,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물건을 만들었나 싶다.
오문에서 내려다본 천안문 방면 #1 : 단문(端門)
오문에서 내려다본 천안문 방면 #2 : 단문(端門)과 인민대회당
오문에서 바라본 왕푸징 방면 : 신축 중인 Z15 타워가 보인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은 성벽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벽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다. 성벽을 에워싼 해자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성벽도 철옹성이다. 중국 동부가 최근에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스카이라인이 제법 화려했다. 그나저나 자금성 내에서도 어딜 가나 쉽게 눈에 띄는 Z15 타워는 높이가 너무 높아서 최상층부에서 국가의 핵심활동이 이뤄지는 천안문 일대가 조망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얼마전에 본 것 같다'-'
오문에서 내려오는 길 #1
오문에서 내려오는 길 #2 : 태화문(太和門)
희화문(熙和門)과 마주보고 자리잡은 협화문(协和門)
우리는 오문을 나서 드디어 외조로 향했다. 사실 협화문 뒤에 있는 문화전(文华殿)을 먼저 둘러보고 외조에 입장할 생각이었는데, 이곳도 보수공사가 한창인지라 입장 자체가 불가해서 곧장 외조의 입구, 태화문으로 향했다.
참고로 자금성을 둘러볼 때는 좌우(左右)의 구분이 헷갈릴 수 있다. 관광객들이 자금성을 둘러보는 방향은 정해져 있다. 세부적인 동선이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입장을 할 때에는 반드시 오문(午門)으로, 퇴장을 할 때에는 신무문(神武門)으로 해야 한다. 즉 자금성의 남측에서 출발해서 북측으로 올라가면서 관람하는 동선이다. 그런데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하는 게,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는 왼쪽인데 건물명칭에는 오른 우(右)가 붙어 있다는 것*-*
추측컨대, 그리고 아마 맞겠지만 이건 황제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특히 황제가 통치할 때나 의식을 거행할 때는 남측을 바라보고 진행한다. 북측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관람객과 달리 남측을 바라보며 궁중 대소사를 행하는 황제 입장에서는 지도상 서쪽이 오른편이고 동쪽이 왼편이 되는 셈이다. 이상 아버지의 해석이었는데 그렇구나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좀 헷갈리긴 하더라.
태화전에 들어가기 전 태화문(太和門)
좀전까지 경치를 조망했던 오문(午門)과 금수교
체인각(体仁阁)
마주보고 서편에 자리잡은 홍의각(弘义阁)
여기도 건물명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많이 쓰기는 쓰는데, 한자의 본고장답게(?) 좀 더 날것(?)의 느낌이 났다. 우리나라는 뭔가 한 번 정제하거나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서 한자를 사용한 느낌이랄까.
자금성(紫禁城). 황제의 허락없이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던 이곳. 15세기 명(明) 영락제에 의해 축조되기 시작한 이 거대한 성은 중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담고 있다. 17세기 만주족에 의해 청(淸)이 들어서면서 한족이 자신들의 안방은 오랑캐들에게 내어준 것도 하나의 굴절점이었지만, 본격적인 수난의 시대는 아무래도 서세동점이 본격화된 19세기 이후일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에서의 패배, 청일전쟁에서의 패배가 황제가 거처하는 공간으로서 자금성의 상징성을 크게 훼손했다. 대내적으로도 순탄치 않았다. 의화단 사건―베이징의정서로 귀결되면서 중국의 식민지화를 가속화시킨 사건―뿐만 아니라 국공내전,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국내상황에서 자금성의 지위와 가치는 여러 세력에게 쟁탈의 대상이 되었다.
태화전(太和殿)
태화전 현판
중우문(中右門) : 보통 관람객들의 동선에서 '왼쪽'에 보이는 건물들이 궁궐의 '오른쪽'에 해당한다
태화전 누각
여하간 태화문을 넘어서니 마침내 태화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색 지붕이 엄청 큰데, 지붕의 황금색은 화려하기보다는 차분해서 괜히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100여년 전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저 거대한 건물 안에서 의지할 데 없이 홀연히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인파에 휩쓸려서 일단 내 주변상황에 정신을 쏟아야만 했다;; 태화전 내부도 까치발을 들고서 간신히 들여다보았다. 사실..뭐가 보이긴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q' 사람은 너무 많은데, 일단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으면 요지부동.. 중국사람들 개개로 보면 괜찮은 사람도 있는데, 중국사람'들' 정말 힘들다... 아무튼 스케일에 압도당한 것만큼은 기억이 분명한지라, 목조건물이라기엔 건물도 너무 크고 기둥도 굉장히 높아서 이게 목조건물이 정말 맞나 싶어서 아버지랑 기둥을 여러번 쓰다듬었던 기억이..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
보화전 일대 #1
보화전 일대 #2
중화전(中和殿)
다시 생각해도 건물명을 참 잘지었다. 사실 숙소직원이 자금성 안에서 대충 어느 동선으로 다녀야 하는지 지도도 주었지만, 건물명이며 건물의 의미며 잘 모르고 자금성만큼은 꼭 가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간 상태였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아버지랑 읽히는 한자를 읽으며 자금성, 그 중에서도 외조부터 시작해서 이동하는데, 맨 처음에 나온 건물이 태화전(太和殿), 그 다음으로 나온 건물이 중화전(中和殿)이면 그 다음 건물은 이름이 뭘지 궁금해졌다.
소화전(小和殿)이면 좀 실망스러운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타난 보화전(保和殿). 이로써 외조(外朝)의 3개 전(殿)은 '조화(調和)'라는 이상세계를 완결시켰다. 태화전에서 물꼬를 튼 화(和)의 흐름은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보화전에 이르러 머무른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그렇기는 해도 의미가 멋있지 않는가. 외조는 이 정도로 둘러보고 다음 코스인 후궁(后宮)으로 향했다.
보화전 일대 #3
보화전 일대 #4 : 이제 건청궁(乾淸宮)으로~
'여행 > 2018 중국 北京'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3 / 베이징 동부(金台夕照, Jīntáixīzhào) (0) 2018.07.23 DAY 3 / 육궁(六宮) (0) 2018.06.03 DAY 2 / 카오야(烤鸭)와 맥주(啤酒) (0) 2018.05.23 DAY 2 / 스차하이(什刹海, Shíchàhǎi) (0) 2018.05.22 DAY 2 /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 Tiān'ānmén Guǎngchǎng) (0) 2018.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