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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환자와의 대화일상/book 2018. 6. 9. 00:47
<라캉, 환자와의 대화 : 오이디푸스를 넘어서/고바야시 요시키/에디투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에서도, 인간 주체가 이른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거울단계를 거치고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타자의 상을 자아로서 받아들여 타자의 신체상에 기초하여 자신의 신체상을 만들어내고, 동일시된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아심리학 및 발달심리학과 라캉주의 정신분석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가 자기 자신과 자아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에 반해, 후자는 그것들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실천에서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진다.
자아심리학과 인지행동요법에서는 환자의 약한 자아를 강화하고 이상 증상과 인격을 교정하여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수준, 말하자면 보통의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에 라캉주의 정신분석 실천은 환자의 자아가 거꾸로 필요 이상으로 강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개입해간다. 구체적으로, 이는 자신과 자아의 분리작업을 철저히 행하고, 분석 주체(환자)가 모든 자기애적 환상을 뚫고 나가서 현실감각을 되찾으며, 사회적 명성, 평판, 가정 내에서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인간 고유의 존재의 기점이 드러날 때까지, 즉 진정한 개성화가 실현될 때까지 계속하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작업이다.
―p.121~122
1970년대에 들어가면서부터 제라르의 사례를 시작으로 하여 사회의 대중화를 반영하는 정신증상의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즉, 망상과 환각이라는 고전적인 파라노이아와 조현병 증상이 현저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신체감각의 결여, 새롭게 언어를 만드는 행위를 시발점으로 하는 특이한 언어 사용, 집단으로부터의 고립, 기묘한 언동, 이성관계의 결여, 독특한 집중감 결여, 사회와 법에 대한 일탈행위라는 특징으로부터, 신경증이 아니라 정신병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환자와 만나게 된다. 사회의 대중화(대문자 타자의 부재화)가 진척됨과 동시에 정신병 또한 대중화되어 온 듯했다. ‥이는, 신경증과 정신병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과 동시에 망상의 정의 자체가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으며, 종래의 아버지의 이름과 거세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주의적 해석만으로는 이에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한 바탕에서 라캉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처럼 안티 오이디푸스를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오이디푸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신병 이론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향했다. 그 무대가 되었던 것이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생톰(sinthome)'을 주제로 진행한 세미나였다.
―p.145~146
보통정신병을 특징짓는 것은 삶의 실감과 현실감, 신체감각의 상실이다. 이들 증상에 반영되는 주체 구성상의 부조화와 보르메우스 매듭의 풀림은 각자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말하자면 자기애적인 생톰에 의해 보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체감각의 결여에 대해 타투를 하거나 피어싱을 함으로써 본인 나름대로 신체감각을 되찾고 있는 케이스가 많이 보이는데, 이 경우는 타투와 피어싱이 생톰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p.209
한 번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모델로 해서 영화 리뷰를 하기도 했지만―<두 개의 욕망>―라캉의 철학은 여전히 어색하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활발히 논의된 것도 벌써 반 세기가 되어가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8년도에도 몇몇 사람들은 프랑스 현대철학에 심취해 있었고, 지금까지도 영화 평론이나 문화 평론에서 라캉의 담론은 꽤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막상 현학적인 글들을 읽다보면 호기심이 들다가도 글읽기를 포기하는 나를 발견.. 마침 라캉의 정신분석을 주제로 하는 신간이 나왔길래 즉시 온라인으로 주문해버렸다'~'막상 읽어보면 라캉의 철학은 명료하다. 나 자신을 사회에 끼워맞추는 기존 방식과 달리, '나'와 '자아'를 철저히 해체하고 스스로 발견하라는 것, 그래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라는 것이 라캉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거울단계-오이디푸스 단계-거세-팔루스의 발현이라는 도식적인 단계 자체를 떠나, 내게 실재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방어선으로서 '생톰'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 과정은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아를 해체하는 방식은 무한하되 자아의 바닥 끝까지 철저하게 파헤쳐야 하는 고단한 작업인 것이다.환자가 스스로 재기하는 과정에서 생톰을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발화(發話)'다. 휘발성이 강하고 쉽게 변화하는 '발화'에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천착(穿鑿)해 있기에, 또한 그러한 발화를 밑거름으로 건강한 자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라캉이 진행했던 상담방식과 논의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 것도 당연하고 이러한 틀을 활용해 시와 예술을 해석하는 평론이 다양한 것 역시 당연하다.정신분석학의 장을 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접하기도 전에 라캉부터 읽어도 됐던 건가 하는 물음표를 떠올리며, 또 다른 정신분석학 서적을 독서하길 기약해본다*-*'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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