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8 / 예루살렘(Jerusalem) : 이스라엘 뮤지엄(Israel Museum)여행/2018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018. 10. 31. 00:01
오후에 텔아비브로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짐은 미리 싸두고 예루살렘 거리로'a'
걸어가기에는 약간 먼 거리였는데 P가 걸어서 가보자길래 걸어서 박물관으로 가는 길
걸어가길 잘 했던 것이 샤밧인 금요일에는 개관시각이 오전 10시였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더 미리 도착했으면 개관 전까지 한참 기다릴 뻔했다
공원에서 운동하는 시민들
예루살렘에서 다시 한 번 P와 만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머무르면 머무를 수록, 구경하면 구경할 수록 봐야할 것만 같은 것이 불어나서 원래 2박만 체류하려던 것이 3박으로 늘어났다. (예루살렘에서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원래 네게브 지방으로 좀 더 내려가볼 생각이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이제는 정말 텔아비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 박물관마저 다 둘러보지 못했으니 예루살렘에 미완의 여행을 남겨둔 셈이 되었다.
이미 이스라엘 박물관을 다녀왔던 P는 다시 한 번 나와 박물관에 동행하겠다고 했다. 다녀온 곳을 굳이 다시 갈 필요가 있겠냐고 물었지만, 박물관을 나설 때쯤 왜 P가 다시 오겠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박물관은 반나절을 할애해도 다 둘러보기가 어렵다. 제대로 둘러볼 생각이라면 하루 이상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스라엘 뮤지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성서의 사원(Shrine of hte Book)!!
성서의 사원 내부..
는 이처럼 두루마리에 둘둘 말린 토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저것이 바로 사해에서 발견된 최초의 성서!
성서의 사원을 빠져나오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구시가지를 복원해 놓은 모형이 웅장하게 재현되어 있다
P가 이전에 방문했을 때 보지 못한 전시실을 중점적으로 둘러보는 동안 나는 성서의 사원(Shrine of the Book)이라 불리는 곳과 이스라엘 역사관을 선택적으로 둘러보았다. 성서의 사원에는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발견된 성서의 원본을 전시해 놓고 있다. 기존에 신약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론의 여지가 적었지만 구약성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쿰란 동굴에서 한 베두인족에 의해 이 원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논란이 일소되었다.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는 내게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불경(佛經)처럼 다행히도 오랜세월을 견뎌 살아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유물임에는 분명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신자들과 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들에게는 구약성서의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실체로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 옛날 지금 이스라엘들이 쓰는 것과 똑같은 히브리 글자로 예수의 행적을 남긴 것을 보면 신비롭다. 그토록 핍박받아 자신들의 나라조차 세우지 못했던 유대인들이 히브리 글자를 끄집어 내어 사용한 것도, 어린 학생들에게 고유의 히브리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채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았다.
영욕의 역사를 거친 유대인들의 유물을 바라보며 뒤이어 역사관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떨칠 수 없었던 궁금증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역사관을 둘러보는 동안 하나의 물음표로 점점 선명해졌다. 이들은 출애굽(엑소더스)한 시점부터 자신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고대사를 서술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 보인다.
조금은 난해했던 이스라엘 뮤지엄의 설치미술
이스라엘 뮤지엄은 연방정부 사무소가 인접해 있다
이스라엘 뮤지엄 야외
그러나 가나안에서의 짧은 정착을 제외한다면 바빌론에서 로마, 맘루크,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기원후 2천년간은 줄곧 식민의 역사다. 이걸 식민의 역사라 부르기도 모호한 것이 그 2천 년동안 확고한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유대인은 세계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종교 이외에 유대인이라는 것을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이스라엘 일대는 수없이 많은 제국과 왕국에 점령당하면서 인종적으로도 복잡해졌다. 또한 정주(停住)한 기간만 놓고 보자면 이 땅에 대해 역사적으로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것은 팔레스타인 쪽이다.
우리나라가 청일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19세기 말 무렵까지만 해도 드레퓌스 사건으로 유럽내에서 배척되어 왔던 유대인들이 같은 시기 태동한 시오니즘을 등에 업고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가 충동하는 이 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2천년의 공백을 뚫고 갑자기 이 지역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나라가 세계사에 이스라엘 말고 어느 곳이 있을까.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류의 반성과 전세계에 뿌리내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에 유대교적 에피스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까닭에 정작 유대인들이 야기한 분쟁의 씨앗에 대해서 중동 이외 국가에서는 도외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든든한 우방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 또 다른 보호막이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위장된 평화로 이스라엘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 것이며 얼마나 자긍할 만한 역사를 기록할까.
유대교 예배당을 재현해 놓은 공간
자코메티의 두상들을 떠올렸던 오래된 조각품들
이런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정성스레 붓으로 흙먼지를 털어내는 고고학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이집트 고양이'-'
여기에 올린 사진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이라기보다는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유물들ㅋㅋ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닌~
이런 걸 보면 옛날 사람들의 장인정신이 지금보다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색깔은 고대 그리스 도자기인듯, 그림은 힌두교의 다신(多神)을 표현해 놓은듯
매우 뒤늦게 현대미술 전시실에 들어갔는데,
자코메티의 조소(彫塑)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한 전시실에 있는 걸 보고 숨 넘어가는 줄...^ㅈ^
그러나 박물관이 워낙 넓어서 후반부는 정말 그냥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대충 관람
이런 깊은 상념에 빠진 사이 반나절이 훅 지나가 있었다. 남아 있는 현대미술관이며 고전주의 미술관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마침 샤밧인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박물관이 일찍 문을 닫는 것도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출발을 늦췄다간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넘어가는 교통편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P와 서로 다른 전시실을 둘러보다보니 오랜 대화는 한국에 돌아가 하는 것으로 미룬 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텔아비브로 가기 위해 예루살렘의 종합터미널로 향했다.
감사하게도 P는 트램 정류소까지 바래다주며 버스터미널에 가려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한국에 오거든 연락하자 했었는데 막상 서로 지내는 곳의 거리가 멀어서...
다시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얻은 여행이었다
'여행 > 2018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8 / 텔아비브(Tel Aviv) : 하얀 언덕들(Along the Beach) (0) 2018.12.10 DAY8 / 텔아비브(Tel Aviv) : 올드 야파(Old Jaffa) (0) 2018.11.11 DAY7 / 예루살렘(Jerusalem) : 다윗성과 시온산(David Tower & Zion Mt.) (0) 2018.10.26 DAY7 / 서안지구(West Bank) : 아인게디 보호구역~사해(Ein Gedi Reserve & Dead Sea) (0) 2018.09.27 DAY7 / 네게브(Negev; Southern Israel) : 마사다 국립공원(Masada National Park) (1) 2018.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