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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대안탑(大雁塔; Dàyàn tǎ), 삼장법사의 숨결이 깃든 곳여행/2019 중국 西安 2019. 4. 14. 00:27
두터운 시안성벽과 인접한 시안 기차역 시안의 봄은 따듯했다. 오전에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한 뒤, 숙소에 짐을 풀고 향한 곳은 대안탑이었다. 우리가 머무른 곳은 시안 기차역 코앞에 자리잡은 호텔로, 이곳을 시안 여행의 거점으로 정한 것은 단지 교통이 사통팔달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안 기차역을 이용할 일은 한 번도 없었거니와, 여행 3일차 병마용갱을 갈 때 역앞 버스정류소를 이용한 게 유용한 정도였다. 4호선이 시안 기차역을 경유하기는 하지만 정차하지는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한 정거장 거리의 오로구(五路口) 역이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시안의 시내라 할 수 있는 종루(鐘樓) 일대에 숙소를 잡는데, 이곳 역시 교통이 좋기는 해도 회족(回族) 거리를 제외하면 다른 여행지와 접근성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이곳 일대가 명동(明洞) 못지 않은 번화가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머물고 싶지 않은 지역이었다.
중국의 색감이 한껏 묻어나는 조형물 야간에는 분수쇼가 열리는 북광장 알록달록 첫 행선지인 대안탑은 4호선이 지나가는 길 위에 있어서 가는 길이 순탄했다. 대안탑은 인도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얻고온 삼장법사의 경전과 불상이 모셔진 곳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유명관광지가 그러하듯 오늘날에는 종교적 의미보다 행락(行樂)의 색채가 짙은 곳이다. 실제로 대안탑 일대를 질서정연하게 메우고 있는 중국식 기와 건물들에는 맥도날드에서부터 스타벅스까지 온갖 프랜차이즈와 음식점이 즐비하고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분수쇼만큼 이곳의 야간 분수쇼도 유명해서 낮보다는 밤에 들를 것을 권하는 글들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북광장에서 대안탑까지 길게 이어진 분수대를 보면 야간 분수쇼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었다.
북광장에서 대안탑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남광장으로 가야 한다 나무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에 담았는데 원했던 색감이 나오지는 않았다 가을하늘을 수놓던 동래읍성의 연보다 한참 높이 날아오르던 연(鳶)들 이때까지도 생각보다 온화한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서 바람막이를 벗었다 입곤 했다. 곳곳에 매화가 만발했고 버드나무가 연록색 잎을 나풀나풀 늘어뜨리고 있었다.
대안탑 입성 대안탑 다르게 바라보기 7세기 처음 축조(築造)되어 무너지고 새워지기를 반복한 이 탑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 또는 수식어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동양의 피사탑'이라는 별칭이다. 대안탑은 서쪽으로 기우뚱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 탑이 정말 기울어져 있는지를 구분하려면 수평을 이루고 있는 주변 건물들과 대조해보면 된다. 아마 학습효과 탓도 있겠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기울어져 있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확실히 기울어진 형태가 보인다.
남(南) 북(北) 서(西) 대안탑은 전망대에 오를 수 있도록 내부를 개방하고 있는데, 탑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한 차례 더 입장료를 내야 했다. (사원에 입장하기 위해서 최초에 한 차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탑 입장 포함 도합 65위안) 층층이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천수각을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계단이 굉장히 가파르고 탑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힘도 들고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자은사(慈恩寺) 내부 흐드러지게 핀 목련 대안탑의 서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소안탑이라 해서 또 다른 승려, 의정(義淨)의 경전이 모셔진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피사의 사탑이라는 대안탑의 수식어에 못지 않게 더욱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15세기 지진으로 갈라진 소안탑이 몇 년 후 지진이 다시 일어난 뒤 다시 원상태로 붙어버린 것. 비록 소안탑까지 들르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장안(長安)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올려다본 대안탑 석양을 받은 데칼코마니 남광장에서 우리나라에 석탑(石塔)이 발달한 것과 달리 전탑(塼塔)이 발달한 중국의 건축물은 동양의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색다른 느낌이 묻어난다. 명대(明代)까지도 개조가 반복되었던 대안탑은 맨 처음 만들어질 당시 심지어 인도식의 스투파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중국이라는 땅이 워낙 넓다보니 내륙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한족(漢族)과는 판이한 정취가 나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자은사 안에서 두 개의 향(香)을 올리고 우리가족의 건강을 빌며 자은사를 빠져나왔다.
재미있는 광경 자은사 터가 넓다보니 남광장에서 북광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재미있는 광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보행로에다 글씨를 쓰고 있길래 저렇게 대놓고 공공기물을 훼손할 수가 있나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맹물을 먹물 삼아 두꺼운 붓으로 글귀를 적고 있었는데 그 글씨가 명필이었다. 멋지게 쓰여진 이 글씨들은 천천히 증발되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땅만 넓은 게 아니라 사람도 많다보니 저런 기인(奇人)이 일개 범인(凡人)처럼 글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인들도 이 사람을 에워싸고 구경하던 걸 보면 이 광경이 나와 아버지만 신기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와 나는 보행로를 따라 규칙적인 간격으로 놓인 동상들을 유심히 구경하기도 하면서 천천히 북광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첫날의 미션(?) 완수!!
아직은 겨울 잔잎사귀가 남아 있는 이른 봄의 시안 '여행 > 2019 중국 西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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