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3 / 병마용갱(兵馬俑坑), 불멸(不滅)과 허영(虛榮) 사이에서여행/2019 중국 西安 2019. 5. 19. 00:01
이날은 숙소가 시안역에서 가깝다는 점이 장점으로 크게 작용한 날이다. 숙소를 나선지 채 5분이 안 되어 시안역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버스 정류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시황릉 방면을 오가는 버스가 수시로 오간다고 하더니 과연 버스 정류장 초입에 우리가 찾던 306번 버스가 이미 대기중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타니 곧바로 출발한다;;(이렇게 시간손실을 최소화할 때 기분 매우 좋음*ㅡ*, 그러고선 딴 데서 까먹지만..) 정류소를 빠져나온 버스는 역에 면한 시안성벽을 북으로 나온 뒤 서쪽으로 순환로를 탄다. 이후 북으로 방향을 튼 버스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 유유히 국도에 진입했다.
병마용은 언젠가 한 번 꼭!!! 한 번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첫째,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이 자신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군졸을 세웠다는 스토리가 얼마나 멋진가(!!) 둘째, 간쑤성 여행을 하면서 실크로드의 기점이라고 할 시안을 들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었다. 10일이라는 일정 안에서 다녀오려다보니 간쑤성밖에 들르지 못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안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는 없었으니.. 그 정점에는 병마용이 있었다. 그랬던 유적지를 이렇게 오게 되다니 감개무량(感慨無量)할 따름이었다:^D
아버지와 나는 가장 먼저 박물관을 들렀다. 박물관에는 보존상태가 훌륭한 테라코타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릴 적 봤던 <뮬란> 속 병사들이 당장이라도 창(槍)을 들고 적을 목을 겨눌 것 같다. 어느 농민이 우물을 파다 땅에 걸린 진흙조각을 발견한 것이 병마용갱이었다는 에피소드는, 어느 인부가 공사하던 중 발견한 벽돌이 알고보니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비화(秘話)만큼이나 극적이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변화라는 것이 정말 작은 우연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트로이전쟁이 치정(癡情)에서 벌어진 것처럼.
테라코타들은 대체로 실제 인간의 크기보다 약간 크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과연 듣던 대로 테라코타 하나하나의 자세가 다르고 표정이 달라서 각자 개성이 살아있다. 그중 압권은 말이 마차를 끌고 있는 테라코타인데 그 위용만큼이나 이 사진을 찍으려는 중국인으로 발 디딜 틈이 아예 없다. 어찌보면 중국인들의 이런 극성스러움이 있기에 이와 같은 유적이 지금까지 살아남았겠지만, 최소한의 질서가 요구되는 현대사회와 융화되지 않는 중국인들의 성미는 그럼에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하간 지금이야 이 많은 테라코타들을 하나의 레저상품처럼 둘러보고 있는 입장이지만, 마치 고고학자가 되어—마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올리버처럼—2천 여년 전 투박한 옷차림의 옛사람들이 온갖 수고를 들여가며 통통한 말의 아랫배를 빚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진시황릉을 구성하는 일부가 병마용갱이고 이 갱도는 다시 세 군데로 압축된다. 물론 발굴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여행은 따로 여행책자를 사지 않고 순전히 인터넷에 올라온 국문/영문 정보들을 최대한 활용했는데, 2번 → 3번 → 1번 갱도 순으로 병마용을 관람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적절하다. 3번 갱도는 규모가 가장 작기는 하지만, 2번 갱도에 의외로 테라코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테라코타들을 밀도 있게 병마용갱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갱도는 1번 갱도에 비할 바는 아니다. 1번 갱도는 규모부터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테라코타도 무척 많다. 다만 발굴중이다보니 무심하게 테라코타를 비닐로 둘둘 감아놓은 모습도 보이는데, 유네스코 관광지가 정돈이 안 됐다는 느낌보다는 이렇게라도 잘 발굴을 해서 고대사에 대해 좀 더 의미있는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라코타에는 사실 채색이 되어 있다. 다만 발굴 과정에서 안료가 공기에 노출되고 산화됨에 따라 색깔이 사라졌다고 한다. 진시황릉에 거대한 수은강이 흘렀다는 기록은, 수은의 위험성을 몰랐던 옛사람들이 안료의 산화를 막기 위해 대량으로 수은을 사용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병마용갱을 둘러보는 일은 막상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1호갱만 한 바퀴 반을 돌았다;;—진시황릉이라는 곳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병마용갱 뿐만 아니라 좀 더 자세한 것들—가령 인근의 다른 유적지들—이 관광객들에게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오로지 살아 있는 권능을 추앙하기 위해 이토록 거대한 토목공사—단지 예술사업이었다고 하기에는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되었을 이 작업—가 이뤄졌다는 것은 '현재'의 나 같은 사람은 참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미술작품이 가치 있다는 이유로 몇 천 억에 거래가 되기도 하고, 유명 도시에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는 세상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진시황릉처럼 단지 누군가를 위해 거대한 시간과 비용이 희생된다는 것이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아마도 통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멸과 허영 사이, 그 얇은 틈새에서 나는 병마용갱과 짧지만 강렬한 조우(遭遇)를 통해 가벼운 설렘 같은 것을 느꼈다.
'여행 > 2019 중국 西安'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3 / 종루(鐘樓)와 회족거리(回民街), 중심(中心) 같은 변방(邊方)에 서서 (0) 2019.06.01 DAY 3 / 화청지(华清宫), 당대(唐代)와 근대(近代)의 스토리가 혼재된 공간 (0) 2019.05.30 DAY 2 / 화산(华山; Huà Shān), 내려가는 길도 두들겨보며 (0) 2019.05.11 DAY 2 / 화산(华山; Huà Shān), 오악(五岳) 중 제일 높은 것은 화산이라 (0) 2019.05.06 DAY 1/ 대안탑(大雁塔; Dàyàn tǎ), 삼장법사의 숨결이 깃든 곳 (0) 2019.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