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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 화청지(华清宫), 당대(唐代)와 근대(近代)의 스토리가 혼재된 공간여행/2019 중국 西安 2019. 5. 30. 00:31
화청지 초입 한들한들 봄바람 리듬에 올라탄 버드나뭇잎 봄풍경 병마용갱을 빠져나오는 길은 약간 용두사미와 같아서 아쉬움을 남겼다. 병마용갱의 출구는 엄청난 상점가였는데, 버거킹에서부터 KFC, 맥도날드에 이르는 패스트푸드점은 물론이고 아이스 커피 때문에 찾고 있던 스타벅스까지 있었다. 이런 위화감을 뭐라해야 할지. 자본주의의 침투가 남긴 일상적 풍경이라는 상투적 표현으로는 좀 부족한 것 같고, 어쩐지 병마용갱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의미에 생채기가 난 것 같은 씁쓸함이 느껴졌다. 글로벌 기업의 선전을 힐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조화스러움에 대한 반응을 뭐라 해야 할지...게다가 관광지 특유의 천편일률적인 상품들—비앙비앙면과 병마용갱의 시그니처라 할 만한 작은 조각들—까지 어수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스타벅스를 들르는 것은 생략하고—상점가가 꽤 길어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도 한참을 걸어지나온 상태였다—점심은 KFC로 낙점! 비앙비앙면이니 양고기 요리니 중국요리를 건너 뛰고 싶었던 우리 부자 일행은 평소에 먹지도 않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매출이 높은 KFC 지점에 비유해도 좋을 만큼 이곳 매장도 사람으로 붐볐다. 하나의 만국공통어가 되어버린 패스트푸드점의 메뉴판과 사람들의 식사하는 풍경. 간단히 점심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화청지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노모전(老母殿)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공간이 나온다 화청지 뒷산에서 찍은 도시의 모습 화청지까지는 아직 시안 시내와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시안의 풍경은 아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강채촌(姜寨村) 이날의 미션은 병마용갱을 다 둘러본 것으로 이미 완수된 셈이었고, 화청지는 가도 그만 가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여행중 구글링을 통해 습득한 새로운 정보는 장한가라는 현대식 오페라를 볼 만하다는 것 정도였다. 대안탑~화산~병마용갱으로 이어지는 이전의 일정들이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화청지의 경우 너무 큰 의의는 두지 않고 들르기로 했다. 대체로 시안에서 (아주 약간) 더 멀리 떨어진 병마용갱을 먼저 들른 후, 시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청지를 경유할 것을 추천하는 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양귀비와 당현종의 유희를 즐겼다는 이곳 화청지는 지금은 사실상 대부분의 건축물이 새로 지어져서 오늘날에는 테마파크의 느낌이 강하다. 낮에도 관광객이 많기는 하지만 장한가를 관람할 겸 저녁에 방문하는 행락객들도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잠시 고민했지만 장한가가 상연(上演)되는 저녁 8시까지는 6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굳이 화청지에 죽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각설하고 입구에서 안내도를 보았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뒤 하산하는 루트가 추천코스로 소개되어 있어서 그 길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시안사변이 이뤄진 곳으로 알려진 장소 오페라가 상연되는 구룡호(九龍湖)에는 중앙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하산하는 길 일본에서 보던 코이(こい)와는 다른 느낌의 금붕어(?)들 화산(華山)에서 새로운 차원의 케이블카를 체험하신 뒤, 케이블카에 적잖이 기대를 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완만한 산의 경사와 잿빛 도시 풍경에 큰 감흥을 못 느끼시는 듯 했다. 산의 중턱에서 하차한 뒤 갈 지자로 내려오는 길도 딱히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꼭대기에는 노모전(老母殿)이라고 해서 유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강한 곳이었다.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간간이 정자(亭子)가 있는 평범한 계단길이었다. 우리나라라면 어지간해서 흙으로 된 오솔길을 터 놓았을 것 같은데, 여기는 모든 길을 깔끔하게 벽돌로 포장했다. 어쩐지 산책하는 느낌이 들지 않고 정서에도 맞지 않았다. (화산에 갔을 때도 거의 흙길을 못 걸어본 것 같다=_=)
내려오는 길에 한 가지 사람들이 몰려드는 지점이 있었는데, 바로 시안 사변이 일어난 곳이었다. 역사책에서 만주사변은 들어봤어도 시안사변은 처음 들었는데, 국공내전 중 국민당 총통이던 장제스가 공산당에 의해 납치된 사건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에 따른 협상의 결과,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마련되어 대일항쟁의 모멘텀이 마련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공산당군과 국민당군의 군복을 테마로 한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기느라 인산인해였다. 이때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에게 재평가되고, 다른 한편으로 바다 건너 대만에서는 국부로 추앙하던 쑨원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오히려 중국 본토에서 쑨원을 추대하고 있으니... 하나의 '상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13억 인구가 부화뇌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찔할 뿐이다.
나무가 인상적이었던 작은 공간 나무 찰칵! 뭔가 했더니 장한가 리허설 중 사람들이 많은 곳을 빠져나왔다. 대충 맨 처음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는가보다 싶을 즈음, 어디서 음향 마이크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가까이서 보니 장한가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무대 주위에는 온갖 현대적인 무대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무대가 상하로 움직이는가 하면, 수면 아래의 무대가 떠오르기도 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장한가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시간 사이에 장한가를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리고 물론 봤다면 좋았겠지만, 정해진 일정 안에 이날 저녁 회족 거리를 방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화청지에 와서 양귀비와 당현종에 관해 무엇을 둘러봤는지 잘 모르겠다. 욕조 같은 게 남아 있기는 했지만(;;) 설명을 충분히 읽어보지 않았고, 그보다도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시간상 가까운 중국 근대사와 관련된 기록이나 장소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양귀비나 당현종에 얽힌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장한가를 관람하는 것이 제일 나았을 것이다.
다시 출발지점으로 부용호(芙蓉湖) 매화.....맞나?! 화청지에는 봄기운에 만연했다. 서울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매화에 자꾸 눈길이 갔다. 벚꽃이 가야금 같은 느낌이라면 매화는 거문고 같은 느낌이 나는 꽃이다. 생김새는 벚꽃보다 투박하지만 오히려 고상한. 우리 부자 일행은 햇빛이 가장 뜨거워질 시간대인 3시쯤 버스를 타고 시안성벽내로 되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 종루(鐘樓) 일대였다.
나들이 나온 부부와 부용호 봄기운 가득했던 화청지를 뒤로 하며 '여행 > 2019 중국 西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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