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 있는 영화 두 편일상/film 2019. 6. 21. 23:19
학생 때처럼 편한 시간에 영화를 보러가지는 못하지만, 관심이 가는 영화제에는 혼자서라도 발걸음을 한다. 그렇게 들른 곳이 아랍 영화제. 아랍 영화제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매년 빠짐없이 영화제에 간 것 같다. 이번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하고 아랍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그림자가 사라진 날>이다.
영화는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내전상황에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시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폭압 아래,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도시의 이 구역 저 구역을 가리가리 쪼개어 관할하고 다마스쿠스 근교. 사람들은 바로 옆 구역을 가기 위해서도 검문을 거쳐야 하는가 하면,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심검문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진다. 한국전쟁 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군과 북한군이 마을을 번갈아서 지나갈 때마다 마을이 초토화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로지 아사드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 다마스쿠스만이 평화로울 뿐이다.
가혹한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하나둘 그림자를 잃어간다. 아사드의 폭정에 항거하는 사람들, 희생되는 사람들, 감내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그림자를 잃는다. 말 그대로 그림자를 잃는다.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올리브 나무 숲을 헤매는 남자는 이내 자신의 그림자를 잃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에게 따듯한 스프를 데워주고 싶었던 사나의 등 뒤로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문밖으로는 사나의 뒤를 쫓는 군인들이 간박하게 계단을 오른다. 과연 사나의 그림자는 어떻게 될까?
한동안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다가 다시 영화관에 발을 들인 게 이 영화 때문이다. 황금종려상 후보작품들이 모두 쟁쟁한 가운데 <기생충>이 수상을 했다고 하니 과연 쾌거이기도 하지만,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만큼 잘 충족시킨 영화가 아닌가라는 쓴소리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겸비한 작품이면서 수상을 한 데에 높은 의의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상업적인 영화, 대중적인 영화, 예술적인 영화를 구분 짓는 건 아직도 쉽지가 않고, 어떤 때는 굳이 구분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대규모의 배급망과 유통망을 확보한 영화들은 상업적이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봉준호 감독은 여러 방식을 통해 상업적인 영화를 제작해 왔다. 스크린 독점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이 아마 <괴물> 개봉 때였고,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적으로 배급된 <옥자>가 그러한 케이스다. 어쨌든 이 영화만 놓고 보자면 나는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에 드는데, 그 중에서도 아들 기우가 번개모임으로 잔디 정원에 모인 부자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쿨할 수 있을까 하고 과외학생에게 말하던 장면에 공감했던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는 박소담의 연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자막번역이다.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대사를 번역해야 하는데, 이 번역을 맡았던 달시 파켓이 어느 방송에 나온 것을 보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가장 번역이 어려웠던 단어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단연 짜파구리였다고;; ‘반지하’도 어찌저찌 해서 납득할 만큼 번역하겠는데, 짜파구리는 도대체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고 한다. 결론은 서양인들에게 그나마 알려진 아시아 면요리인 라멘(Ramen)과 우동(Udon)을 합쳐 램동(Ramdon) 같은 방식으로 번역을 했다고. 몇몇 주인공들이 영어를 섞어 쓰기도 하고,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코드가 굉장히 많아서 도대체 심사위원들의 공감대를 어떻게 이끌어냈을까 궁금했는데, 그러한 비화가 있었다고 하니.. 한강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맡았던 데버러 스미스의 경우도 그렇고 번역의 세계도 알고 보면 재미있다. 오랜만의 영화 포스팅은 이만 悤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렌치 코미디 한 편 (0) 2019.07.20 L'amour, la peur, superficiel (0) 2019.07.09 누구나 아는 비밀 (0) 2019.05.14 멋지고 한심한 사람들의 해피엔드 (0) 2019.05.03 이 못난 쏨뱅이일지라도 (0)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