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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3 / 장밋빛 없는 장미공원(Rosengarten)여행/2019 스위스 종단여행 2019. 10. 2. 00:12
점심을 먹은 장소는 베른 대성당과 인접한 지역이었는데, 우리는 미처 성당 안으로 들어가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곧장 대로변의 아케이드로 나왔다. 이렇게 아케이드가 아레강을 만날 때까지 끊기지 않고 쭈욱 이어져 있다보니, 건물의 하단부가 상당히 육중한 느낌이 있고 그만큼 시내의 풍경도 무게감이 있다. 나는 그런 풍경이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니 베른에 대한 인상이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아마 여기에는 우중충한 날씨와 그린델발트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문구점(Papeterie)과 기념품샵, 초콜릿 가게를 드나들며 아케이드를 구경하는 사이 아레 강 자락에 도착했다. 베른의 구시가지는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아레 강에 의해 완벽하게 에워싸여 있다. 구시가지에는 자연이 빚어낸 지형에 꼭 들어맞게끔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줄지어 들어서 있다. 강변 저지대에도 빼곡히 건물이 들어서 있었는데 다홍색 지붕들이 빗물을 머금어 홍시처럼 검붉은 색을 띠었다.
아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곧장 곰공원이 나타난다. 곰공원이 나타나기 직전까지도 시내의 골목이 구시가지 곳곳으로 얼기설기 뻗어있다보니, 이런 곳에 곰이 지낼 공간이 있을까 싶은데 실로 급작스럽게 원형으로 된 공원이 나타난다. 베른의 상징이기도 한 곰은 지명과 시내의 조각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곰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불쌍하다!!ㅠㅠ는 것이다. 방사형으로 지반을 깊이 파놓은 공간에 곰 서너 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관광객의 간식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재롱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까지고 어리광을 부릴 것 같은 곰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길을 건너 장미공원으로 향했다.
장미공원은 오전에 가라고들 한다. 공원에서 베른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방향이 서쪽을 향하다보니 오전에 햇살이 고루 든 베른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이렇게 와서야 햇빛이 역광이든 어떻든 문제될 것도 없었다;; 공원이 구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10여분여를 공들여 올라간 공원은 인적도 없거니와 휑한 느낌마저 든다. 꿉꿉함이 감도는 널따란 공원에는 이슬에 젖은 장미들이 어지러이 피어 있었고, 한켠의 실내 레스토랑에서는 현지인들이 최대한 격식을 갖춰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이러한 날씨에 위화감마저 들었다.
올라왔던 언덕길을 다시 내려간 뒤, 아레 강변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정류소에서 버스를 탔다. 만원 버스는 시계탑에서 한 차례, 곰광장 앞에서 한 차례 많은 사람들을 쏟아냈고, 이윽고 목적지인 베른역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열차는 대략 30분에 한 대 꼴로 다녔는데, 나와 동생이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시간을 두고 다음 열차를 타기로 했다. 그게 화근이 되어 30분 뒤에 베른역에 정차하는 열차의 플랫폼 위치를 미처 업데이트 하지 못한 우리는, 인터라켄과 정반대 방면인 바젤행 열차에 올라타고도 잘못 탄 줄도 몰랐다.
원래 툰(Thun) 역에 정차해야 할 시간이 되어도 열차가 열심히 달리길래 이상하다 싶어 차량 문간 옆 전광판을 보니 아차 싶었다. "바젤행" 동생과 눈이 마주쳤는데 동생도 열차를 잘못 탔다는 사실을 막 깨달은 듯했다. 베른에서 바젤로 향하는 열차는 중간에 올텐(Olten) 역에서 한 번만 정차하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상당히 길었다. 결국 예정에도 없던 올텐 역에서 내릴 수밖에..
다시 반대 방향(인터라켄 방면)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더니 잔돈이 없어서 우왕좌왕했다. 실내에 대기할 수 있는 길다란 간이 부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일본인 꼬마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연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관광지가 아닌 이곳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저 동양인들은 이곳 주민들이기라도 한 걸까.
비가 와서 돌아오는 길을 서둘렀던 것이 무색할 만큼, 6시가 좀 안되어서야 그린델발트 역에 떨어졌다. 문제는 숙소가 위치한 보르트(Bort)까지 가기 위해서는 6시에 종료하는 마지막 곤돌라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6시 이전에 도착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피르스트 정상에서 그린델발트로 내려가는 곤돌라 막차는 6시 30분에 있기 때문에, 대략 7시까지는 곤돌라가 가동된다. 만에 하나의 기대를 품고서,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매표소 직원에게 곤돌라에 탈 수 있을지 물어보니 퉁명스럽게 늦었다고 대답하곤 들여보내 주었다. 하마터면 보르트까지 택시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자칫 택시비로 5~7만 원을 지출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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