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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수선(修繕)해 드립니다일상/film 2020. 6. 28. 00:11
기억이 더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리뷰를 남겨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맨 처음 떠올랐던 것은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 사람들은 시간(le temps)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단지 과거-현재-미래를 이동한다는 의미를 떠나 시간의 흐름을 재해석하는 데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다―두 영화의 공통점 모두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점들을 엮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두 영화가 차이나는 지점 또한 바로 그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나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실제로 불연속적인 시간의 변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반면, <카페 벨에포크>는 아주 철저하게 현재에 천착하고 있다. <카페 벨에포크>에 그려지는 빅토르의 화양연화(花樣年華; la belle époque)는 어디까지나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된 가상의 과거는 차라리 <트루먼 쇼>에 가까운 것이다.
이 영화를 본지 꽤 되었는데 차일피일 리뷰를 미뤘던 건, 영화의 러닝타임 한 4분의 1 정도는 가수면 상태로 관람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야근이 없던 날 모처럼 영화관에 가서 프랑스 영화를 보는데, 눈치없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여하간 감독 니콜라 베도스(Nicholas Bedos)는 <러브 인 비즈니스 클래스>라는 영화를 통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감독활동까지 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한편 벨에포크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빅토르는 나와 닮은 면이 참 많다고 느꼈는데, 특히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모습이 그랬다. 아내 마리안느는 신문물을 척척 사용하는 커리어우먼으로, 옛것을 고집하는 빅토르를 답답한 낙오자로 여긴다. 나와 빅토르 간에 큰 공통분모를 발견하면서도 아내 마리안느의 불만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남자, 아니 도무지 읽으려 들지 않는 남자,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을 살아가는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근사하게 조작된 과거 안에서 빅토르는 위안을 얻지만 결국 스스로 답을 구해야만 한다. 과거의 늪에 깊이 발을 담근 그를 성가시게 여기기 시작한 앙투안 일당이 급기야 현재를 조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카페 벨에포크>라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벨에포크'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벨에포크'라는 것은 과거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으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벨에포크'는 인간 존재가 직접 개척해 나가는 것이며, 완료된 행위와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그 시간의 의미와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오버랩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덧. 관람중에 가수면 상태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마음에 드는 대사들을 또렷이 기억하는데, 영화의 대사와 각본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특히 프랑스어로 된 대사를 구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검색되지 않아서 나중에 영화를 렌트해서라도 대사를 더 찾아보고 싶다.
«J’ai l’impression de vieillir plus vite quand je m’endors à côté de toi »
"당신 옆에서 잠들다 보면 더 빨리 늙는 거 같단 말이야"
« On réussit quelques brouillons mais on rate sa vraie vie »
"우리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짜 삶은 놓치는 거야"
“그날 그 카페에서 만난 사람을 제가 아주 좋아했었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 진 모르지만, 끝까지 사는 거예요”
“이제 막 알았는데 이미 당신이 그리워요”
“간직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다시 쓸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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