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서울의 서쪽에서 올려다본 북한산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화강암이 우둘투둘하게 헐벗은 응봉 능선 자락으로 이른바 기자촌으로 알려졌던 곳에 한옥마을이 들어섰다. 지명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이 일대는 60년대에 언론인들의 집단거주를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서울 서북부를 회차지점으로 둔 버스노선에서 ‘기자촌’이라는 이름을 접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 들어 주민들의 수가 줄어들고 대대적으로 뉴타운이 조성되면서 이전처럼 언론인들과 문인들이 머물던 공간으로서의 색채는 희미해졌지만, 한옥마을 곳곳에는 동네의 오랜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이나 문학관이 이 자리에 함께 했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 한옥마을: 안동의 하회마을, 전주의 한옥마을, 서울의 북촌과 익선동. 여러 한옥마을 가운데 은평 한옥마을은 단연 가장 ‘새’ 느낌이 드는 곳이다. 지붕 위의 먹빛 기왓장은 푸르청청하고 나무기둥은 따스한 숨결을 품고 있는 듯하다. 눈에 띄는 점들도 있다. 땅값이 땅값이다보니 2층집이 대부분인데, 복층을 올리기 위해 개량된 건축방식을 적극적으로 쓴 것 같다. 윗층을 연결하는 부위에 박공을 과감히 끊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전통을 잇고 있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전통과 거리를 두기도 한다.
# 아우라: 모든 동네에는 나름대로의 아우라가 있다. 낡은 듯하지만 젊은 감각이 곳곳에 베어 있는 곳, 빈틈없이 정갈하게 구획된 곳, 형형색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가는 곳, 물과 바람이 편안하게 머물렀다 가는 곳, 허름한 가옥들이 즐비하지만 각자의 움직임들이 솟아났다 꺼지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곳. 그런 면에서 은평 한옥마을은 아직 아우라가 부족한데, 조성된 지 갓 5년밖에 되지 않다보니 켜켜이 시간이 쌓여야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테마의 크고 작은 박물관과 문학관이 있지만, 먹을거리와 마실거리, 즐길거리가 부족하다는 점은 지금까지 발걸음을 했던 다른 한옥마을과 비교할 때 잠시 들르는 방문객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겨울: 나무의 맨살과 메마른 땅바닥이 드러나는 풍경 때문에 겨울을 좋아한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폐에 퍼지는 것을 느낄 때에는 잠시 마음의 외로움이 얼어붙는 것 같다. 외로움은 얼어붙은 채 다른 감정들로부터 떨어져나와 조금씩 부피를 더해간다. 성에처럼 뿌옇게 낀 모든 상념들은 저멀리 바라다보이는 잔가지들의 동심원 안에서 정처없이 퍼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