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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산(Le otto montagne)일상/film 2023. 10. 25. 08:56
무언가에 꽂히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상, 미루고 미루던 영화 을 마침내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요 몇 주간 잔잔한 영화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느끼던 차였다. 잔잔한 영화라고 하면 어쩐지 프랑스 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건 일종의 선입견일 텐데, 언제부터인가 미국 영화는 상업성 짙은 영화이고 미국 이외 지역의 영화는 재미는 덜해도 의미를 곱씹어볼 만한 영화라는 편견을 갖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영화 중에 잔잔한 영화가 없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그밖의 나라, 특히 라틴계 유럽 국가들의 영화들의 연출이 더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는 건 결국 개인의 취향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이탈리아 영화의 제목이 , 그러니까 제목만으로 어쩐지 구미를 당겼던 이름이다. 이름이 암시하는 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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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冒瀆)일상/book 2023. 10. 23. 09:02
예전에 간쑤성 일대를 여행하면서 눈에 담았던 풍경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 박완서의 글은 언제 읽어도 좋고, 아낌없이 담긴 티베트의 풍경사진은 활자를 읽는 것만큼이나 공들여 한 페이지를 묵시하게 만든다. 이 책은 원래부터 읽어두려고 일찍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인데, 최근 S 누나의 추천을 받아 마침내 결제를 했다. S 누나가 읽고 싶으면 빌려줄 테니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늘 그렇듯 내 책 한 권을 소장하는 게 더 좋다. 노령으로 티베트에 여행을 가 고산증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태로 여행기를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데, 그 글이 따뜻하고 다감해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독(冒瀆)'은 그 사전적 의미가 '말이나 행동으로 더럽혀 욕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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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나를.. (As if, I have missed myself)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3. 10. 22. 22:31
10월 중순 가을밤의 혜화동은 퍽 추워서 겨울의 문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 옆 빨간 벽돌로 된 아르코 극장은 언제 봐도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해질녁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이제 유백색 가로등 불빛을 받아 생기 없는 암록색을 띠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간이 가판대 앞에 앉아 연극 티켓을 파는 사람이 부루퉁한 얼굴로 관객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접어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혜화동(惠化洞)이라는 한자가 검은색 양각으로 새겨진 한 가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쉼없이 충돌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와 그림작품도 그렇지만 가끔은 클래식한 걸 즐기다가도 아예 아방가르드한 것에 관심이 간다. 흔히들 고전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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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전선(戰線)주제 있는 글/<Portada> 2023. 10. 20. 13:29
Guerre Israël-Hamas : la bataille diplomatique entre les Etats-Unis et les pays arabes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아랍국가간의 외교 전쟁 L’engagement pro-israélien à sens unique des Etats-Unis suscite l’incompréhension dans les capitales arabes.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지가 아랍 주요국들의 몰이해를 부추기고 있다. unique (qui est un seul, n'est pas accompagné par d'autres du même genre.) Par Hélène Sallon(Beyrouth, correspondante), Piotr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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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 흐린주제 없는 글/印 2023. 10. 14. 08:08
최근 K의 추천으로 라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는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이 20분 남짓이어서 심심풀이로 하나씩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내가 요새 주말에 짧은 일정으로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다고 말하자, K가 비슷한 내용을 그린 드라마가 있으니 한번 보라고 권해준 것이었다. 의 소재는 '딱 하루만 여행 다녀오기'인데, 국내를 가더라도 가급적 1박을 하는 내 여행보다도 더 짧은 일정이다. 경주로 출발하던 날도 그랬는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기 싫던 날 (그렇다고 집에 콕 박혀 있기도 싫던 날) 이르지도 않은 오전 시간에 간단히 짐꾸러미를 챙기면서 아직까지 경주에서 1박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본 가 떠오르면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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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Ensemble)일상/music 2023. 10. 10. 00:08
Qu’est-ce que ça veut dire d’être ensemble Si on n’est pas ensemble? Est-ce que ça suffit de rassembler nos souvenirs ? Qu’est-ce que ça veut dire d’être ensemble Si on n’est pas ensemble? Est-ce que ça suffit de s’attendre? Je voudrais partir maintenant Te retrouver Tu me manques tellement Aliocha Schne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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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II일상/book 2023. 10. 9. 11:51
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는 다큐멘터리를 접하기 전부터 서점 매대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된 책이었지만, 제목이 지닌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읽기가 꺼려졌다. 내가 아는 그 파칭코라면 과연 그걸 소재로 어떻게 장편 소설을 풀어나가겠느냐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너무 피상적인 나머지, 소설의 전개를 그려볼 상상력이 빈곤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 카리스마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저런 작가의 글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것만 다섯 세대가 등장하기 때문에 조각 같은 에피소드가 방대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파친코나 재일 교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