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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폴 토마스 앤더슨일상/film 2021. 3. 1. 01:08
Free to go where you please.
Then go.
Go to that landless latitude, and good luck.
For if you figure a way to live without serving a master... any master...
then let the rest us know, will you?
For you’d be the first person in the history of the world.
In my dream, you said you’d... you figured out where we met.
I went back and I found it.
I recalled you and I working together... in Paris.
We were members of the Pigeon Post.
During a four and a half month siege of the city by Prussian forces.
We worked and rigged balloons... that delivered mail and secret messages... across the communication blockade.
<마티아스와 맥심>에 관한 어느 후속 인터뷰에서 자비에 돌란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을 감명깊게 보았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막상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죄다 낯선 작품들 뿐이다. 오히려 그가 감독이 아닌 단역으로 출연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가장 눈에 띌 정도다. 그렇게 해서 <마스터>는 그가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본 작품이다. 영화의 소재가 독특한데 ‘코즈(The Codes)’라고 하는 가상의 신앙공동체를 다루고 있다. 이 공동체는 신앙으로 결속된 모임이지만, 그들의 믿음을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볼수록 바로 그 믿음에 매달린 등장인물들의 비뚤어진 심리가 가면을 벗고 하나둘 민낯을 드러낸다.
나이가 들면서 <마스터>나 <매그놀리아> 같은 영화가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가는 사람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의지하는 사람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삶삶삶. 일개 선원으로서 방랑자처럼 살던 프레디 퀠(호아킨 피닉스)은 전쟁 이후 ‘코즈’를 이끌던 랭커스터 도드(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라는 인물과 조우한다. 랭커스터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프레디 퀠은 격정적으로 쏟아낸다. 첫사랑, 일탈, 범죄, 악행, 아픔, 향수. 두 눈을 똑바로 부릅뜬 프레디 퀠은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려 하지만, 그가 쌓아온 과거의 행적은 현재의 그 자신을 무겁게 짓누른다.전지전능한 우리들의 마스터 랭커스터 도드라는 인물은 어떠한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피난처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움막이 되어주었던 랭커스터 도드. 신을 자처했던 그 역시도 욕망 앞에 흔들리고 고민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프레디 퀠과 랭커스터 도드가 다져나가는 비정상적인 우정 속에서는, 마스터에 의해 구원으로 나아가는 과정보다 나약한 인간이 저마다 거울이 되어 서로를 비추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프레디 퀠은 마침내 자신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지만 그에게 남다른 용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그가 그 시점에 유일하게 내릴 수 있는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생각만큼 인간은 의지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고 순간순간 뜻하지 않게 이뤄지는 선택에 자비로울 뿐이다.
호아킨 피닉스는 언제 봐도 멋진 배우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역시 너무나 멋진 배우다. 호아킨 피닉스의 작품이야 이미 여러 편을 봤지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이처럼 가까이서 본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는 그 자신이 개인사적으로도 기구한 사연이 많아서인지 눈동자에 끝모를 인생의 어둠이 떠오르는 것 같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표독스럽고 카리스마 가득한 인상을 갖고 있지만, 문득문득 드러나는 아이 같은 눈빛이 매력적인 배우다. 더 풋풋한 그의 연기는 <매그놀리아>에서 재발견된다.
교수와의 짧은 면담이 끝나고 시간이 붕 떠버린 하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작품을 더 찾아볼까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을 더 찾아볼까 생각하다가 <매그놀리아>를 보았다. 세 시간 가량의 짧지 않은 영화인데,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감독한 영화이면서 젊은 시절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등장하니 일거양득이었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은 영화인데 이 배우들의 대열에는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와 줄리앤 무어가 합류한다.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는 다시 봐도 미남은 미남이고, 줄리앤 무어 역시 영화가 나온 99년에는 꼬집어 말하기 어려움 젊음이 있어서 무상하기까지 하다.
하나의 매듭으로 이어지는 여러 독립된 갈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많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던 이야기 전개방식이다. 이 영화가 포문을 열 때 이야기하듯 ‘필연적 사건’이 아닌 ‘가능성’으로 가득한 이 세계는 모든 존재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으로 엮여 있다. 그 ‘가능성’은 자기자신을 부정할 가능성도 자기자신을 긍정할 가능성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관계로 다가설 가능성도 관계를 걷어낼 가능성까지도 포함한다.
영화에는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자신의 위선을 자책하는 사람(린다), 자신의 기만에 관용을 바라는 사람(지미 게터),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도니), 자신의 부정한 과거를 이해받고 싶은 사람(클라우디아), 자신의 증오심을 뉘우치는 사람(프랭크 맥케이). 영화에는 용서를 구하기에는 때늦은 인물도 있는 반면,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 있는 인물도 있고, 용서를 구할 만한 사건을 앞둔 사람들도 있다. 이차럼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유년과 청년, 노년이 겹겹이 교차한다. 퀴즈쇼에 출연한 스탠리라는 꼬마는 도니의 과거 모습인 동시에, 아직까지는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기대하는 고집스런 소년으로 그려진다. 한편 필(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인사가 다뤄지지 않는 인물로 상흔으로 가득한 관계들을 잇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삶삶삶. 그리고 결코 완결되지 않을 삶삶삶. 어떤 인간의 삶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답지 않은 채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고, 오염된 삶을 지울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가기도 한다. <매그놀리아>에 나오는 인물들의 아픔과 슬픔은 희극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려지기에 더욱 현실에 가까워진다. 비현실적인 장면이 마지막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두꺼비가 나오는 영화의 후반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눈물에 젖은 클라우디아가 짓는 짧은 미소, 그 얕은 입꼬리에 담긴 삶의 무게. 숭고함, 목련(magnolia)의 꽃말. [fin]'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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