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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양조위(梁朝偉)일상/film 2021. 9. 16. 20:02
마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보려고 생각했던 영화는 아니었다. B의 강력한 비추가 아니었다면 그냥 보지 않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말라는 건 어쩐지 더 해보고 싶은 법. 보지 말라는 영화라고 하니 더 보고 싶어졌다. 실제로 여러 평점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샹치>의 평점은 다른 마블 영화들보다는 낮은 편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낮은 기대치를 안고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샹치 텐 링즈의 전설>은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샹치>는 아시안이 주인공 히어로로 등장하는 첫 마블 영화인데, 미국인들이 아시안에 대해 갖는 스테레오타입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양문화를 충실히 표현하려는 노력도 엿보이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직까지 중국 본토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의외다. 만다린(양조위)의 원형인 ‘푸 만추’가 동양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집약해 놓은 인물이기 때문에 공산당의 검열에 걸렸다는 추측이 있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홍콩이나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중국 정부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들에게 엄청난 금액의 징벌적 세금을 물리거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광고에 나오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표방하는 ‘소강(小康)사회’—모두가 다 잘 살게 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그런데 주인공 샹치는 미국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무엇보다도 홍콩의 우산혁명을 지지했던 양조위를 포함해 홍콩 출신 배우들이 비중 있는 역할로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홍콩시민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써는 반체제 인사와도 같은 배우들이 폼나게 나오는 영화를 자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을 것 같다(는 개인적 추측이다).
여하간 영화는 재미있다. 특히 용(龍; dragon)은 동양에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묘사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되는데, 영화에는 두 종류의 용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반지의 제왕>에서 스마우그 같은 용도 나오는 반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의 분신으로 나오는 종류의 용도 나온다. 물과 불의 사용은, 음과 양이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서로 용해되어 들어가는 태극 문양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또 그러한 컨셉이나 장면의 사용이 작위적이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샹치>를 보면서도 양조위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는데, 최근 인터넷을 보면 양조위의 매력이 재발견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흐름을 타고 <화양연화>를 찾아 보았다. 영화를 보면 젊은 시절의 양조위가 정말 멋있게 나오는데, 사실 더 매력적이었던 건 영화에 쓰이는 광둥어(!!;;)다. <샹치>에 빈번하게 나오는 보통어 대사를 들을 때는 그냥 중국어인가보다, 하고 들었는데, 광둥어는 뭐라 묘사해야 할까 통통 튀면서도 동글동글,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장만옥의 대사가 그렇다. 심지어 어떤 광동어 단어들은 보통어보다 한국어와 더 비슷하기도 하다. 몇몇 단어가 한국어처럼 들려서 광동어 사전을 찾아보니, 한국어로 ‘시간’은 광동어로도 ‘시간’이다. (보통어로는 ‘싀지엔’이 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 굉장히 단순하다. 옆집에 사는 세입자끼리 서로 이성적인 호감을 갖게 된다는 스토리다.(=_=) 엄청 극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찾아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감각적인 묘사’ 때문인 듯하다. 슬로우모션으로 왕조위와 장만옥이 빗길을 걷는 모습을 비추는 장면, 단정하게 차려입은 장만옥의 알록달록한 치파오, 인테리어나 조명에 적극 활용되는 도발적인 빨강 톤.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표현을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뱉는 것이 아님에도, 양조위와 장만옥이 예민하게 교감하는 장면들이 아주 마음에 든다…*-*
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동일 장면을 조금씩 바꿔 두 번씩 삽입하는 기법을 쓰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왜 같은 장면이 반복되나 하고 보다가, 장면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애절함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 양조위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찍은 장면이다. 세월로 인해 홈이 깊게 파인 어느 기둥 앞에서 차오(양조위)는 서성인다. 이윽고 메마른 풀포기를 아무 의미도 없는 홈 안에 욱여 넣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자신이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려는 것 같다. 아니,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었다는 기록을 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남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앙코르와트를 내리쬐는 석양은 서서히 저물어 간다. 차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팔을 웅크린채 고개를 파묻은 뒷모습만 보이는데도 왜 그리 마음이 움직였나 모르겠다.
영화의 거의 끝 부분에 가서는 시점이 확확 이동하는데, 1966년 홍콩에 발생했던 어떤 사회적 사건이 잠시 암시된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66년도는 영국령 홍콩을 다스리던 영국 정부가 홍콩과 구룡반도를 연결하는 페리선의 요금을 인상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수면 아래에 있던 홍콩의 사회적 문제와 영국정부에 대한 불만이 분출되었던 시점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약 반 세기도 안 되어 친중국 정부가 강제한 범죄인 송환법,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역사란 반복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 전에 홍콩을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간 <화양연화>라는 제목만 처음 들었을 때는,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의미로 마음 저미는 영화였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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