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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의 일기: 시행착오Vᵉ arrondissement de Paris/Janvier 2022. 1. 14. 00:13
# 어제 오늘은 기숙사를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한 일도 할 일도 없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젯밤에는 미국에 사는 친구와 네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다만 기숙사에서 쓸 인터넷이나 세탁 문제는 미리 확인해두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아침 열 시쯤 기숙사 사무실로 가서 관련되는 것들을 물어보았다. 기숙사 담당자인 부사이드 씨는 매번 직접 나서서 도와주기 때문에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물어보니 직접 인터넷 문제를 담당하는 사무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해당 사무실은 업무시간임에도 열려 있지 않았고, 오후에 다시 한 번 들러 보았지만 역시 열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물어 물어서 코로나로 인해 사무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시국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부사이드 씨는 이어서 나를 세탁실로 안내해 주었다. 세탁실은 지하 2층 체육실 옆에 위치해 있었다. 다른 건 문제될 것이 없는데 기숙사에서 세탁을 하려면 이렇게 멀리까지 와야 한다니 뜨악 했다. 사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동선상 세탁물을 들고 공부하는 공간을 지나야 하는 난감함이 있다. 사실 부사이드 씨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지만, 때로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한번은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물어봤는데 표정이 확 바뀌더니, 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과 관련된 것들을 알려주려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내가 독일에서 온 줄 알았고 한다. 나 역시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내 프랑스어 실력이 영어에 한참 못 미치지만—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일상에서는 가급적 프랑스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프랑스어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학생식당과 관련하여 궁금한 것도 물었는데, 학생식당을 쓰는 것보다도 학생증에 금융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게 확인되었다. 우선은 이름을 걸어놓고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점심에 시도를 해보았는데, 어떤 배식대에서는 일절에 거절 당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타지에서는 무엇보다 먹는 게 중요한 문제인 만큼 답답한 면이 있다. 내일 처음으로 간단한 사전 인터뷰와 소개가 있으니 또 다른 직원에게 상세히 물어봐야 한다. 일단은 스낵류로 점심을 떼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 오전에 닫혀 있던 사무실을 오후에 다시 찾았지만, 어렵사리 코로나로 인해 사무실이 닫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처리하려던 것을 처리하지는 못하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기도 따분해서, 가까운 뤽상부르 공원을 찾았다. 가는 길에 경찰들이 한둘씩 보이더니 점점 그 무리가 커졌는데, 알고 보니 생미셸 거리를 따라서 시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위도 시위지만 테러 위험 때문에 경계가 삼엄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피켓을 읽어보면 여러 가지 내용이 섞여 있기는 한데, 코로나 시국으로 인한 불만 표출이 주된 내용이었다. 거리를 다녀보면 한국사람들과 비교할 때 프랑스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체감하는 불편함의 기준이 크게 다른 모양이다.
시위 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오래 구경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얼마 안 있어 원래 목적지였던 뤽상부르 공원으로 들어갔다. 행진하는 시위대의 악기 소리를 뒤로 하고 이 곳은 아주 평온하다. 오귀스트 콩트 거리 방면에서 뤽상부르 공원에 들어섰는데, 길다란 가로수길을 따라서 어린 꼬마아이들이 열심히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볼이 새빨갛게 상기되도록 서로 재잘재잘거리면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열심히 달린다. 물론 어른들도 많이 뛴다. 평일 대낮에 이런 풍경을 본다니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 뤽상부르 궁전 쪽으로 쭉 걸어가다보니 점퍼에 몸을 파묻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올리브색 철제 의자에 앉아 있다. 아직은 추운 날씨이기 때문에 겨울 일광욕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메디시스 분수를 끝으로 보쥐하흐 거리로 나와서 다시 기숙사로 향했다. 가기 전에 어제 들렀던 리처드 카페에서 휘낭시에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샀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어제보다 정확하게 프랑스어로 주문하니 덤이 딸려 나왔다. 앙금이 들어간 납작하고 길다란 빵조각 하나를 서비스로 넣어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각은 해가 지기까지 두어 시간 남아 있다. 하룻밤을 지내보니 전기장판이라도 사야할지 고민이 된다. 프랑스의 겨울은 한국보다 약간 더 길다. 일교차는 한국보다 작지만 아침저녁으로 0도에 가까운 기온이 계속되고 날씨가 전반적으로 꾸물꾸물하다. 그리고 난방시설은 좋지 않다. 바디워시, 멀티탭 같은 것도 미처 챙겨오지 못해서 franprix에 들러서 구해봐야 한다. 어제 들른 carrefour express와 muji에서는 일단 전기용품은 팔지 않았다. 슈퍼마켓과 비스트로를 제외하고 거리에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은 대개 서점들과 갤러리들이어서 난감한데 점점 익숙해지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 결국은 bricolage를 취급하는 잡화점에서 일단 멀티탭을 구매했다.)
+ 오전에 부사이드 씨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얻은 다음, 또 다른 학교 건물이 위치한 14구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파리가 서울보다 한참 작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거리였다. 파리의 바깥쪽으로 갈수록 오가는 차량도 많아서 이동할 때에 적당한 대중교통수단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Vᵉ arrondissement de Paris > Janvi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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