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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의 일기: 좌안에서 우안으로Vᵉ arrondissement de Paris/Février 2022. 2. 16. 19:46
# 아침에 늦잠을 자고 오전에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오후에 있을 발표 스크립트를 짰다. 점심에는 식당에서 다시 Z와 마주쳤다. 밥을 먹으면서 프랑스어로 얘기를 했다. 중국에서 불문학으로 석사까지 하고 온 Z에 비해 내 프랑스어 실력은 형편없지만, Z는 그런 대로 재밌다는 듯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Z는 오늘 수업은 없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러 윔 가에 와 있다고 했는데, 나는 오후 수업을 위해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섰다.
6구에서 열리는 오늘 오후 수업은 보통 센 강까지 나가는 27번 버스를 타고 간다. 하지만 오늘따라 버스 배차가 늦어지는 것 같아, 다른 노선을 이용해 소르본 대학으로 나간 다음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오데옹 역이 나타나는 지점에서부터는 생제르맹 거리를 따라 쭉 걸었다. 눈에 익은 생제르맹 데프레 성당(Église de Saint Germain des Prés)과 카페 레 되 마고(Café les deux Magots)가 나타난다. 수업에 들어가기 20~30분 전 알렉상드르와 수업 발표를 조율하기로 했는데, 1시 40분쯤이 되어서 파리 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과제는 과연 어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교수가 설명하는 문제풀이와 거의 완벽하게 같은 방식으로 푼 것이다. 루체의 선택 원칙(Luce’s Choice Axiom), 무작위 효용극대화 이론(Random Utility Maximization Theory)은 알렉상드르와 내가 검토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했다. 하지만 수업이 중반부로 들어갈 수록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다룬다. 이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도 그렇다. 또한 교수들은 수업 중 왜(Why)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게 맞든 틀리든 교수에게 의견을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나 또한 오늘 ‘왜’(Why)라는 질문에 의견을 말하다가, 교수가 다시 ‘그래서 왜(Why)’라는 질문을 했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다.
# 수업이 끝난 뒤에는 한가한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잠시나마 센 강 우안으로 건너가 보았다. 파리 대학에서 강 건너 가장 가까운 곳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지난 번에는 튈르리 공원을 걸었지만 오늘은 팔레 후아얄을 가보기로 했다. 팔레 후아얄 정원은 코메디 프랑세즈 옆 출입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해가 저물기 전 팔레 후아얄 정원은 각자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다.
정원을 나와 생토노레 가로 접어든 다음 후아얄르 가가 교차할 때까지 걸었다. 오른편으로는 벙돔 광장(Place Vendôme)이, 왼편으로는 성모승천 성당(Église Notre-Dame-de-l’Assomption)이 나타났다.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들을 도대체 언제 다 지어올렸을까 싶다. 생토노레 가를 따라서는 세련된 의류와 가방, 향수 가게들이 쉴 새 없이 늘어서 있다. 생토노레 가뿐만 아니라 샹젤리제 거리, 오스만 가, 생제르망 가, 헝뷔토 가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의 상점들이 가득하다.
후아얄르 가가 나타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들렌 사원(L’église de la Madelaine)으로 향했다. 사원(L’église)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옮겨 놓은 듯한 형상이다. 좀 전까지 시간의 얼룩이 켜켜이 쌓인 성모승천 성당의 동그란 청회색 돔을 보고 왔던 지라, 고대 그리스 건축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물을 보고 있으니 거리의 풍경이 크게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이후 꺄푸신느 거리(Bd des Capucines)을 따라 오페라 갸르니에까지 걸어왔다. 짧은 간격을 두고 오페라부터는 2구가 아닌 9구에 속한다.
이후에는 더 걸어가고 싶은 길을 찾지 못하고 메트로로 들어갔다. 분홍색 7호선을 타고 몽주 광장역에서 하차한 다음, 바게트와 와인을 사들고 기숙사에 돌아왔다. 오늘 알렉상드르와 나눈 개인적인 이야기가 생각난다. 알렉상드르는 석사를 마치고 나면 미국이나 영국에서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학은 아무래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만 해도 파리에서 먼 나라가 아닐 텐데, 가족이나 친구, 여자친구가 걸린다고 말한다. 어린 친구지만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다고 느끼면서도, 이렇게 다른 풍경 안에 살아가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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