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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의 일기: 보르도로부터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4. 23:13
# 오늘도 오전에는 어제 갔었던 Coffee and Book에서 공부를 했다. (여행을 와서 공부를 한다는 게 내가 봐도 내가 봐도 이상하기는 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한 번 보르도 중심가로 나가 Mollat라는 서점에 들렀다. 가벼운 책 몇 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을 찾았는데, 막상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몰라 계속 고르기만 하다가 서점을 나왔다. 처음에는 프랑스문학을, 다음으로 정신분석학, 철학 순으로 프랑스가 잘하는 분야들을 위주로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점은 경제경영 분야에 비해 사회학이나 문화인류학 분야의 서적에 좀 더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Mollat에서 별 소득없이 나온 다음 곧장 숙소에서 짐을 아예 싸들고 나왔다. 파리에 돌아가면 L이 알려준 생제르망의 지베흐 조제프(Gibert Joseph)를 찾아볼 생각이다.
# 생 엉드헤 성당과 가까운 조이으 생 콜롱브 카페(Café Joyeux Sainte Colombe)는 평점이 매우 높은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어제 왔을 때는 아주 잠깐 머무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이 카페는 지적장애가 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책 읽기에 좋은 카페라서 오늘 다시 찾았는데,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스태프로 일하고, 손님과 대면하는 모든 업무는 장애가 있는 청년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어떤 주문 건에 대해서는 종을 울리는 등 독특한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 금요일 파리행 열차는 이미 매진된 차량이 많았고, 비싸지 않은 티켓을 피해서 예매하다 보니 꽤 늦은 시간대의 열차를 예매하게 되었다. 보르도에서 시간이 비게 되면서 중심가에서 미처 놓친 관광지들을 둘러보았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도 영향을 미친 보르도 대극장, 켈로 문(Porte Cailhou), 피에흐 다리(Pont de Pierre), 부르고뉴 문(Porte de Bourgogne), 생 미셸 성당(Basilique Saint Michel) 등 서로 근거리에있는 명소들을 차례차례 지났다.
프랑스 어딜 가도 성당이 너무 많아서 갑자기 궁금증이 들어 프랑스에서 가장 높이가 높은 성당을 찾아보니, 보르도의 생 미셸 성당은 네 번째에 위치한다. 어쩐지 보르도 어딜 가도 눈에 띄어서 높이가 어마어마한 것같기는 했는데, 그보다 앞에 성당이 세 개나 더 있다는 게 더 놀랍다. 알비에서 봤던 대성당(Cathédral Sainte Cécile)도 가까이서 볼 땐 무척 높아보였건만, 프랑스 안에서 공동 37위에 랭크되어 있고 몽생미셸의 대수도원보다도 높이가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보르도의 생 미셸 성당보다 높이가 높은 성당 중에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Cathédral de Notre-dame Strasbourg)을 가보았는데, 프랑스 안에는 실로 성당이 많다. 다만 보르도 성당의 내부를 찾는 관광객은 생각보다 적어서 오늘 들른 생 미셸 성당도 내부를 구경하는 데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왕조 600년을 거치고도 우리나라 산자락에는 여전히 많은 사찰이 있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오래된 종교건축물이 많다. 사찰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에 교회는 일단 압도되는 느낌부터 받게 된다. 물론 사찰이든 교회든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탱화(幀畵)나 성화(聖畵)가 많아 부담스럽기는 똑같고 너무 많은 기호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그럼에도 법당 내부가 주는 온화한 고요함과 교회 내부가 주는 차가운 정적은 어딘가 느낌이 달라도 달라서 이게 단순히 건물에 들어간 자재—나무와 돌—의 차이인지 건물양식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 프랑스는 한국보다 훨씬 세계화가 되어 있지만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을 마주할 때가 많다. 아예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도 근래에 알려진 한류나 드라마, 케이팝과 관련된 것들뿐으로, 소르본 대학 앞 서점에 하이쿠(俳句)가 번역되어 깔끔한 소책자로 판매되고 보급되는 일본 문화와는 저변이 다르구나, 하고 어쩌다 느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이전까지는 중국인들이 파리의 명품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중국에 대한 인식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아주 드물게 한글이라는 독특한 알파벳 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한국문화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역시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때문에 중국인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 대도시에서는 보통 나를 보고 중국인이냐고 묻고, 일본인 배낭여행객이 찾는 소도시에 가면 나를 보고 일본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랑스에 있어서도 그렇고 이 나라 저 나라 여행을 다니다보면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을 제외하면 대체로 좋은 편이라 느낀다. 중국의 소분홍(小粉紅) 세대에 해당하는 젊은 중국인을 만나도 양국 젊은이들은 분쟁에 대해 늘 그런 식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기도 한다. 오히려 드물게 젊은 중국인들 중에는 한국의 ‘투표권’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문화혁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여하간 중국인들도 특히 동부의 도시 지역으로 올 수록 한국 문화에 관해서 만큼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여하간 많은 아시아인들은 나를 보면 한국인인 것을 알고, 직원이라면 가게를 나설 때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오늘 저녁에 들렀던 베트남 가게의 사장님도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한국이 60년대 월남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점, 요 근래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과 맞물려 갈등 상황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 대한 이들의 긍정적 인식이 의아하게도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은 어디까지나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머물러 있을 뿐,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라는 경계에 이르는 순간부터는 한국을 생소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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