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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의 일기: 문제라면 문제는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5. 20:42
# 어제 보르도에서 넘어오는 파리행 열차에서의 여정은 상상 이상으로 고됐다. 2층짜리 열차는 만원이었고, 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쉬지 않고 가래기침을 했다. 마주 앉은 사람은 잠든 채로 뒤척이는 동안 계속 나를 차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 같았다. 보르도에서 파리까지 오는 길은 2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가는 길은 실로 멀게 느껴졌다. 몽파흐나스 역에 도착하자마자 앞뒤 돌아보지 않고 91번 버스로 부랴부랴 기숙사까지 왔다.
#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엉뚱하게도 소시에테 제네랄에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일주일 안으로 나온다던 은행계좌가 3주째가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어떤 때는 안내 메일을 보내고 어떤 때는 보내지 않고 중구난방이라 뭐가 되고 있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현지 은행계좌가 없으면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메일은 보냈지만, 은행을 처음 방문한지로부터 벌써 두 달이 지난 시점이어서 기대를 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각났을 때 메일을 보내지 않으면 깜박할 것 같아 성실히 연락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곳의 행정은 정말 문제는 문제여서, 파리 생활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반감되는 모든 이유이자 가장 큰 원인이다.
# 그러고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려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점심이 거의 다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승차 정액권을 충전하고 생필품을 사는 일로 점심시간을 보냈다. 수전 손택의 책을 읽고 있는데,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글로 일목요연하게 서술해 놓아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 등잔 밑이 어둡다고 계속 지나다니던 생 미셸 거리에 큰 서점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나다니면서 지베흐 조제프(Gibert Joseph)라는 서점의 상호명을 보기는 보았는데, 그 서점이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베흐 조제프는 다섯 층—프랑스 기준으로는 0~4층—짜리 건물에 들어선 서점으로, 바로 옆 건물에는 음반 등을 취급하는 별도의 매장이 있다. 일요일에는 휴무이기 때문에 승차권도 충전한 겸 버스로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지베흐 조제프를 들렀다.
흥미를 끄는 책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철학 서적이나 정신분석한 서적들에 관심이 갔다. 프랑스가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보니 고대 그리스 철학 서적도 정말 많았고, 이슬람이나 아랍 문명에 관한 서적도 많았다. 생태철학이나 동물권을 다루는 서적에 대한 별도의 코너가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점 규모가 너무 크다보니 다음을 기약하며 3층까지만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 방문을 마쳤다.
독립 출판사에서 나온 아기자기한 책도 취급하던 보르도에서 들렀던 몰라(Mollat)와는 달리, 지베흐 조제프는 일반적인 형태의 대형서점이다. 종종 ‘occasion’이라는 문구가 박힌 중고본도 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중고본을 구입해도 좋을 것 같다. 일단은 두께가 얇고 최대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는데, 그런 책을 구하려면 여러 번 들러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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