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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의 일기: 봄 오는 소리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11. 21:29
# 파리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우산이 필요할 정도로 비가 내린다. 오늘 아침 L은 우산을 들고 학교 입구에 나타났다. 좀 아까까지 흐린 날씨였는데 마침내 비가 오는 모양이다. 비가 내리니 에흐네스 정원에 가지는 못하고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나나 L이나 바캉스로 인해 2주간은 파리를 떠나 있었으므로 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꽤 오랜만이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어제 그녀가 알려준 지베흐 조제프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야기가 다시 프랑스 입시 이야기로 빠졌다.
지필고사를 6일에 걸쳐 6과목 본다는 이야기나, 이후에 선발된 인원들을 대상으로 면접이 따로 진행된다는 점이나 학업량이 엄청날 것 같은데 무언가를 물어보면 그런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해맑게 말한다. 문학 분야에서는 지필고사로 2천 명이 선발되고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선발되는 인원이 60명이라니 적은 인원이다.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해 프레파(입시반)는 크게 공학, 인문학, 경제학으로 나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라야 프레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대학도 아니고 대학원은 더더욱 아니지만 고등학교 과정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프랑스의 독특한 교육제도다.
# 저번에 제출한 프랑스어 작문과제의 첨삭본을 받았다. 수정된 영역은 빨간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페이지 한 면 통째가 빨갛다. 사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어를 연습하기 위해 몇몇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에 학점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지는 않다. 그래도 막상 빨강으로 가득한 글을 받아들고 보니 조금 놀랐다. 백(百)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십진법을 좋아하는 프랑스에서는 20점을 만점으로 매기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20점 만점에 13점을 받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 생각한다.
수업에서는 이번 작문과제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발견되는 오류들을 MD가 한 번 쭉 정리해주었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우리말도 그렇지만 같은 대상을 지칭하더라도 반복되는 표현은 피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aussi=également, plus de=davantage de, pouvoir=être à même de처럼 의미는 같지만 다양한 동의 표현들을 수십 가지고 알려주었다.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면 들을 수록 느끼는 거지만 쉼표의 사용법에서부터 영어와 프랑스어는 너무나도 다르다. 세 시간씩 진행되는 전공수업과 달리 프랑스어 수업들은 일괄적으로 두 시간 진행되는데, 두 시간 수업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 늦은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논문을 읽다가 도서관이 문을 닫기 전에 미리 나와 몽주 약국으로 갔다. 몽주 약국은 아마 코로나 이전까지 한국인들이 많이 찾던 곳이었는지 한국인 직원들이 있다. 저번에 인사를 나눴던 계산대의 아주머니와 인사하고 필요한 물건을 말씀드렸더니 바쁜 와중에 친절히 알려주신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었으므로 계산을 마치고 곧장 캬흐디날 르무안으로 이동해 팟타이를 하나 사들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콩트흐스캬흐프 광장을 지났는데 카페나 펍, 브라세리를 찾은 학생들로 득시글하다. 젊은 사람들의 열기가 비내리는 눅눅한 날씨를 관통하고 무프타흐 시장까지 채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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