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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의 일기: 수업 없는 화요일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15. 18:27
# 화요일 아침 수업이 이번 주는 한 주 휴강한다. 고로 오늘은 수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저번에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오르세 미술관을 다녀올까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은 가지 않았다. 내게 화요일은 일주일이라는 7일간의 리듬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날이다. 수업이 꽉 가득찬 월요일의 다음날이자, 조금 결이 다른 게임이론과 문화인류학 수업이 이루어지는 수-목요일, 그리고 프랑스어 수업이 차지하고 있는 목-금요일로 넘어가기에 앞서 조금이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여전히 화요일에 노동경제학 수업은 있지만 오전에 수업을 듣고 나면 오후는 자유시간이다. 어쨌거나 그나마 있던 화요일 수업이 학사일정상 휴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팀 과제를 준비하고 논문을 읽으며 오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게 시간을 쓰다보니 오늘 수업이 휴강되길 다행이다 싶다. 목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효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분량은 그런 대로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 늦은 오후에는 팀 과제를 위해 팀원이 온라인에 모였다. 사실 이 모임을 조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소통에서도 회신이 빠른 편이 아니다. 구성원이 다섯이라면 그 중 셋은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점수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과제임에도 느긋한 건지 무심한 건지 별로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나도 이들처럼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 프랑스에 와서 생긴 사소한 선입견이 있다. 정작 프랑스와 관련된 것은 아닌데, 프랑스의 이웃나라이자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가본 적조차 없는 이탈리아에 관한 선입견이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에는 많은 이탈리아 학생들이 있다. 유럽은 에라스무스라는 국가간 학점제도가 워낙 잘 마련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국제교류가 활발한 편이고 비(非)프랑스 인을 찾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프랑스에 수학하러 온 이탈리아 학생들이 유독 많은 걸 보면 이탈리아 학생들 사이에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보통 영국에서 온 학생들은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은 반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온 학생들은 전공이 매우 다양하고 수적으로는 이탈리아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탈리아 학생들은 종종 프랑스가 자신들이 원래 살던 곳인 것처럼, 또는 이곳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비(非)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인보다 더 많은 공간에서 본인들의 말로 본인들끼리 여념(餘念) 없이 이야기하는 식이다. 무리를 짓는 건 중국인이나 영국인이나 어느나라든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원래 이탈리아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이탈리아 사람들의 행동을 더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편견을 깰 계기(?)가 필요하다..
# 팀 과제를 마친 뒤에는 한인 식료품점을 찾아 루브르-오페라 지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한인 식료품점을 몇 군데 다녀봤지만 오페라 지역에 있는 마트가 가격도 가장 합리적이고 물건도 많다. 라탕지구에서 출발한 다음 잠시 샤틀레를 경유해 평소 염두에 두고 있던 물건을 몇 가지—양말 등—를 샀다. 샤틀레 포럼에는 모든 종류의 상점이 다 있고 비교적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샤틀레까지 나올 일만 있다면야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사기에 좋다.
오페라까지 나오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가급적 한꺼번에 장을 봐두는 게 좋겠다 생각했지만, 막상 그리 많이 사지는 못했다. 백팩에 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장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오늘 장바구니 가격의 3할 이상은 조리가 다 된 수제 등갈비를 사는 데 든 것 같다.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센 강변을 따라 달리다가 무프타흐 시장 방면으로 방향을 틀어 기숙사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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