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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의 일기: 학교 안 사계절Vᵉ arrondissement de Paris/Mars 2022. 3. 31. 17:35
# 오늘은 보기 드물게 파리에 눈이 내렸다. 눈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 반신반의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봄외투도 못 입겠다 싶을 만큼 온화한 날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마다 새 순이 올라오고 꽃이 만개한 학교에 눈이 내리니 이보다 아이러니한 풍경도 없다. 오전까지 빗줄기였던 게 오후에 흰 뭉치로 바뀌어 있었을 땐 우박인가 하고 생각했다. 학교 지붕에 새하얗게 쌓이는 무언가를 보고 오늘 눈 예보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하루 종일 날씨도 무척 변덕스러웠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다 오후가 되면서 맑게 개었는데, 그러더니 곧장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HB가 오후 프랑스어 수업에서 브르타뉴의 날씨를 묘사하며 알려준 표현대로 "하루에도 맑은 날씨가 여러 번 찾아온다(il fait beau plusieurs fois par jour)". 밤이 되니 날은 갰지만 마치 겨울을 앞둔 늦가을 날씨처럼 무척 쌀쌀하다.
# 문화인류업 수업을 중간에 두고 들은 두 개의 프랑스어 수업은 내용이 알찼다. 특히 저녁 수업이 그랬다. 본래 HB에 의해 지도되는 수업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예고에 없던 세미나 같은 것으로 시작되었다. 복도에서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교실에 입장시킨 다음, 각 그룹에 “가장 유명한 작가를 두 명 적으라”고 한 다음 무기명으로 설문용지를 거두어 간다. 학교 행사인지 세미나인지, 그것도 아니면 실험인지 시험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로서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 과정을 진행한 두 명의 학생—HB의 제자로 보인다—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행사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가장 유명한 작가를 두 명 적으라”는 질문양식이 각각의 세 그룹마다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1. 가장 유명한 작가 두 명(deux auteur)을 적으시오. [genré]
2. 가장 유명한 작가 두 명(deux écrivains ou écrivaines)을 적으시오. [inclusif]
3. 가장 유명한 작가 두 명(deux personne dans leur écrit)을 적으시오. [épicène]
구문(syntaxe)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서 질문의 내용은 동일해도 답변 내용에 차이가 생긴다. 단연 두 번째 문항에서 여성 작가의 이름이 가장 높은 비율로 등장한다. 이는 어휘에 성(性)을 부여하는 많은 유럽 언어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실험 성격의 이번 세션은 상당히 흥미롭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는 지나치게 인문학적 내용이기도 했다. 차별이라는 주제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본 일은 없었거니와 그러한 인문학적 상상력도 부족하다. 프랑스어처럼 성수(性數) 일치를 시키는 이탈리아나 독일의 학생들은 자국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의견을 공유해주는데 전혀 새로운 차원의 배움이었다.
그런가 하면 ‘Bonjour à toutes et à tous’ 같은 구문은 아시아의 여러 언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다. 두 번째 그룹에서 여성 작가를 적어낸 비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질문의 문형에 따라서 질문을 접하는 응답자의 사고의 흐름도 달라진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하나의 성(性)을 지니는 '작가(autour)', '제판사(graveur)' 같은 어휘에 여성형(autrice, graveuse)을 쓰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뒤따르는 문제는 표현의 '경제성'인데, ‘Bonjour à toutes et à tous’처럼 양성(兩性)을 문장 안에서 동등하게 처리하려면 불가피하게 더 많은 소리를 활용해야 한다. 특히 텍스트 생산자에게 구문의 경제성은 문제가 된다.
# 프랑스에서는 공식석상에서 말하는 방법을 철저히 훈련시킨다. 사람들 앞에 서서 종이를 보고 읽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기본이고, 말할 때의 억양, 적절한 어휘와 구문을 하나하나에 피드백을 준다. 심지어는 성량까지 체크한다. 세션이 끝나고 다시 수업에 참여한 HB는 한 학생이 'du coup'라는 표현을 쓰자, 'du coup'를 대체하는 다른 적절한 표현을 탐색하고자 의견을 술술술술 쏟아낸다. 'du coup'라는 말이 불과 2~3년 사이에 빠르 속도로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je pense donc je suis(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je pense du coup je suis'가 될 순 없는 법이라며.
이런 학습 때문일까, 오늘 세션을 진행한 두 학생의 진행을 보면 능숙하다 해야 할지 정제되어 있다고 해야할지, 미국의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의의 연설을 볼 때는 느끼기 어려운 프랑스인 특유의 다듬어진 우쭐댐(?), 나긋나긋하게 주장을 이끌어나가는 화법 같은 게 느껴진다. 단순한 분방함이나 쾌활함과는 다른 이들만의 리듬이 있다. 특히 말을 할 때 영미권 사람들에 비해 호흡을 충분히 두는 편이고, 호흡의 완급을 세심하게 고른다는 인상을 받는다.
# 내가 공부하고 있는 곳은 규모가 크지 않은데, 눈대중으로 볼 때 대충 50~70명 범위의 동아시아 학생이 있지 않나 싶다. 일부 정규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지만, 다수는 나처럼 교환학생을 와 있거나 다른 형태의 학사 교류를 하는 경우일 것이다. (전체 학생수는 2천 명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정규학생을 기준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장 큰 소집단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학생 그룹이라는 게 알고 보면 중국인 집단이다. 내가 어림잡은 50~70명의 학생 중 대만인 1명, 한국인 1명, 일본인 1명을 빼면 모두 중국인이라 할 만큼 중국세가 절대적으로 강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절대적인 수적 열위로 인해 치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중국인이 이렇게 많은데, 많은 유럽인들이 ‘동아시아=중국’이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다.
그럼에도 많은 유럽인들은 동아시아에 대해 매우 피상적이고 안이한 수준의 지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더 놀라운 부분이다. 고등교육 기관이라는 이곳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학이나 국제관계를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프랑스의 다른 기관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기초학문을 강조하는 이곳에서는 동아시아(특히 중국)에 관한 현지 학생들의 인식에 다소 현실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반대로 이곳에 있는 중국인 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일대일로를 통해 유럽에 중국 헤게모니를 뻗어나가고 있다든가, 양안문제는 국제질서와 무관하게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든가 하는 지극히 실리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발언도 들리곤 하다보니, 여전히 낡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향유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은 어딜 가도 보기가 어려운데, 서구인들이 동아시아 문화를 연상할 때 일본 문화가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그 나름대로 희한스럽다. 이미 19세기부터 여러 유럽 화가들에게 일본문화가 폭넓게 수용된 이후, 이곳에서 일본문화의 저변은 퍽 넓은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인은 정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체감하기로 한국인보다도 더 안 보인다—대부분 서점에서 망가 코너를 따로 두고 있고, 오페라 구역이나 모네 지구에 일식 레스토랑이 즐비한 걸 보면, 많은 일본인들이 닌자(忍者)가 되어 파리의 어딘가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건가 싶다. 최근 유럽에서 한국 문화가 트렌드를 타고 있는 건 맞지만 (근래에 누군가 한국의 스트릿푸드가 핫하다며 '호떡(Hotteok)'에 관해 물어본다..), 그럼에도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서 있는 위치가 매우 협소하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 최근 라탕 지구의 영화관을 이곳저곳 다니고 있는데, 그 동안 라탕 지구에 지내면서 도대체 뭐하며 살았나 싶을 정도로 좋은 영화관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단 소르본 대학 바로 앞인 셩폴리옹 가(R Chmapollion)에는 르 셩포(Le Champo), 흐플레 메디시스(Reflet Médicis),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Filmothèque du quartier latin)이 건물 하나 간격을 두고 연달아 주르륵 들어서 있다. 흐플레 메디시스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상영시간표를 보면 세 곳 모두 보고 싶은 상영작으로 가득하다. 각 영화관이 상영 프로그램을 짜는 방향이 모두 달라서, 동시간대에 전혀 다른 장르, 전혀 다른 감독의 작품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오늘 간 에콜 시네마 클럽(École Cinema Club)도 앞선 세 영화관과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상영 프로그램을 두고 있었다. 이들 영화관들의 공통점은 UCG, mk2, Gaumont 등 멀티플렉스와 달리, 20세기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찾기 어려운 시간이 지난 명작들을 한 번씩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한편 시네마 뒤 팡테옹은 1907년에 세워진 영화관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아쉬울 것 없는 영화 관련 서점을 갖추고 있다. 매력적인 영화관이 황당할 정도로 많아서 파리에서 다른 여가를 가질 것도 없이 영화관에 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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