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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의 일기: 한파(寒波)Vᵉ arrondissement de Paris/Avril 2022. 4. 1. 17:52
# 오늘은 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원래 오전에 오르세 미술관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전날 새벽 L과 갑작스럽게 오전 약속을 잡게 되었다. 아침에 민음사에서 나온 보들레르의 『악의 꽃(Fleurs du mal)』을 들고 나왔다. 왼쪽 페이지는 프랑스어 원문으로 오른쪽 페이지는 한국어 원문으로 되어 있고, 핑크색 표지가 퍽 감각적인 느낌이 있어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았다. 원래는 책을 완독하고 나서 L에게 줄 생각이었지만, 시(詩)라는 게 음미해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지금까지 적당히 읽은 걸로 만족하고 L에게 줄 겸 챙겨서 나왔다.
# 오후에는 중국인 친구인 Z와 잠시 산책을 하고 (둘 모두 붐비는 시간을 피해 학생식당에 오다보니 거의 매일 마주친다), 오후 프랑스어 수업에 들어갔다. Z는 만나본 중국인 중 독특한 친구다. 자국 체제에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는 동시에 이곳 문화를 빠르게 익히고 프랑스 이외의 문화에 대한 수용력 또한 높은 것 같다. (가령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데 대부분 한류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 전향적인 모습과 과신(過信)을 동시에 바라보면 유쾌함과 불쾌함의 경계에서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도 매우 민감한 편이어서 오늘날 중국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계속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4월이 되면서 날씨가 3월보다 훨씬 추워졌다. 이틀 연달아 눈이 내리더니 다시 겨울 코트를 꺼내들어야 할 판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재정학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잠시 이런저런 내용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니키타와는 잠시 실무경험 기회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S와는 다음 주 약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나면 만날 때는 즐겁기는 하지만, 내 공간으로 돌아오면 진이 빠지는 편이다. 대충 저녁을 해결한 다음에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말 그대로 뻗어버려서 방 안의 불을 끄고 눈 뜬 채로 침대에 서너 시간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 정신이 들었을 때에서야 운동이라도 할 걸 그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날씨가 너무 쌀쌀해져서 난방이 잘 되지 않는 기숙사 안도 너무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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