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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유럽의 反세계화 움직임주제 있는 글/<Portada> 2016. 12. 13. 01:27
<국민투표 이후 사임의사를 밝히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최근 이탈리아 정치가 시끄럽다.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결과 찬성 40%, 반대 60%로 나타나면서 개헌 논의를 이끌었던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그의 뒤를 이을 신임총리로는 젠틸로니 외무장관이 지명된 상태다. 그러나 마테오 렌치의 최측근(젠틸로니)이 내각의 수장을 맡는 것이 민의(民意)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이처럼 마테오 렌치가 야심차게 추진한 개헌논의가 좌초되면서, "브렉시트"에 이은 "이탈렉시트(Italexit)"가 가시화되고 종국에는 유럽연합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시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개헌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 그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그와는 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단적으로 이탈리아는 지난 68년의 헌정사에서 총 63번 내각이 수립되었다. 그만큼 정치가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완전 양원제를 택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상원과 하원이 내각불신임권, 입법거부권을 비롯한 권한을 완전히 동등하게 갖고 있다. 때문에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 빈번하게 교착상태가 발생하는 탓에, 정책의 신속하고 일관된 추진이 어려웠다.
<인상이 부드러운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
비효율적인 정치시스템을 바꾸고자 마테오 렌치는 마침내 직접 메스를 들이대기로 결심한다. 상원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축소/개편함으로써 사실상 단원제에 가까운 의회구조를 만들어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정치시스템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골자였다. 의도는 좋았지만,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가 사실상 현 내각에 대한 심판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사전 여론조사에서 예측된 대로 반대의 싱거운 승리로 끝이 났다. 만성적이 실업률에 시민들은 가득 뿔이 나 있었고, EU라는 틀 안에서 이탈리아의 경제를 회생시켜보겠다는 마테오 렌치의 비전에 더 이상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테오 렌치 내각을 몰아내는 데 주도적인 두 야당이 하나는 극우성향, 다른 하나는 극좌성향을 띤다는 점이다. (참고로 마테오 렌치 내각은 중도적 좌파 성향이다) 전자는 북부 이탈리아(롬바르디 지역)를 기반으로 하는 북부동맹이고, 후자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오성운동이다. 일찍이 산업화에 성공한 북부 이탈리아는 남부 이탈리아에 비해 소득수준도 높고, 연방주의 더 나아가 분리주의 운동이 강한 곳이다. (스페인에 비유하자면 잘 사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과 같은 곳이다) 북부동맹은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정당으로, 이민자의 유입에 반대하고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다. 북부동맹과 오성운동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비록 이념적 근거는 다르지만 똑같이 현 EU 체제에 반대하며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톡톡 튀는 패션으로 이목을 끄는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
그렇지만 이보다 일찍 EU 시스템의 근간을 크게 한 번 뒤흔든 국가가 있었으니, 영국을 빼놓을 수 없다. EU 탈퇴의 여론몰이에 앞장 섰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얼마 전에 한 발언은 브렉시트에 관한 논란을 재점화했다. "우리는 EU라는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We have our EU cake and eat it too.)" 표현이 비유적인데,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EU의 현 이민정책은 따르지 않으면서도) EU라는 단일시장 접근을 유지하여 우리의 이익을 취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악동 같은 외모에 영국의 도널드 트럼프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의 발언은 브렉시트에 관한 추후협상에 관하여 EU와의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낸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 브렉시트와 관련하여 EU를 대표하여 협상을 이끌어갈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케이크는 직접 사다 먹어라"라고 되받아쳤다. 회원국이 아니면서 EU라는 단일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꿈은 언감생심 꾸지도 말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보리스 존슨(前 런던시장, 現 외무부 장관(2016.7~))>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브렉시트를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가에 관하여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뉘었다. 첫째, 소프트 브렉시트, 둘째, 하드 브렉시트다. 아무래도 가장 강경한 입장인 하드 브렉시트가 보다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간단히 말해 하드 브렉시트는 EU로부터 완전한 탈퇴를 의미한다.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과 결별하여, 자율적으로 이민을 통제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방향에 따르면, 영국은 독립된 회원국 자격으로 WTO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단일된 EU시장 안에서 일원적으로 관리되던 무역시스템을 영국정부가 하나하나 세세히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가 예상된다. 세계 5대 기축통화 가운데 하나인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 소프트 브렉시트는 보다 유화적인 정책이다. 브렉시트를 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인 만큼 EU의 회원국 지위를 청산하고, 유럽의회에서 행사하던 일체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물러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EU라는 단일시장으로의 접근성만큼은 최대한 확보하여 예상되는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소프트 브렉시트의 입장이다. EU 잔류를 지지했던 노동당과 보수당의 여러 의원들이 지지하는 방안이다.
<케이크는 먹으면 장땡~>
그 대표적인 방안이 '패스포팅' 제도의 유지다. '패스포팅'은 금융기관이 EU 회원국 중 어느 한 국가의 설립인가를 받으면 다른 EU 회원국에서 자유로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더불어 기존의 비관세를 유지하는 것도 상품 및 서비스,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확보는 한 수단이다. 유럽에서 EU에 가입하지 않은 몇몇 국가들(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 역시 일부 예산분담 등의 방식으로 EU에 책임을 부담하는 대신 자유로운 경제적 교류의 장은 마련해놓고 있다.
유세기간 동안 강경모드였던 보리스 존슨이 브렉시트의 수준에 대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이번 브렉시트는 EU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제50조가 적용되는 첫 사례다. 참고할 선례도 없기 때문에 브렉시트의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데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나 영국정부는 애당초 EU 탈퇴표가 더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않았고, 탈퇴여론을 주도한 의원들조차 브렉시트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은 정치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테레사 메이 총리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하드 브렉시트라는 노선을 명확히 하고 있다.
<5% 지지율의 올랑드 & 연임을 바라보는 메르켈 曰 "우리..잘 하고 있다고 말해줘요">
그러나 냉혹한 국제정치의 사실을 말하자면, 영국에게는 소프트 또는 하드를 결정할 수 있는 협상력이 없다. 이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패를 쥔 쪽은 당연히 EU다. 협상에서 하나라도 아쉬운 것이 영국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운 소리(소프트 브렉시트)가 나오고 있는 것. 앞서 투스크 상임의장 뿐만 아니라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역시 영국의 소프트 브렉시트론(論)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앞으로 1년 안에 오스트리아 대선, 프랑스 대선, 독일 총선이 연달아 있고, 이러한 정치 이벤트가 여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들의 포문을 연 이탈리아 국민투표는 야당의 승리와 집권총리의 사퇴로 끝났다. EU라는 통합체제에 다시 한 번 심각한 경종(警鐘)이 울린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좌파진영의 사회당의 인기는 날로 시들어가는 반면 극우정당이 기세를 몰고 있다. 독일에서는 메르켈의 연임이 확실시되지만, 그녀를 대적할 만한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일 뿐 그녀가 추진해온 포용적인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은 매우 팽배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브렉시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캐머런 전 총리가 앞서 본 마테오 렌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리스본 조항 제50조 : 탈퇴를 결정하는 회원국은 유럽이사회에 그 의도를 통지한다
연합은 장래 관계를 위한 틀을 고려하고 해당국과 탈퇴에 관한 협정에 대해 교섭하고, 이를 체결한다
제조약은 탈퇴협정 발효일로부터 또는 통지 후 2년째 되는 해부터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영국의 국내정치로 돌아와서, 메이 총리는 내년 3월을 목표로 리스본 조항 제50조의 발동을 추진하고 있다. 리스본 조항 제50조가 발동되는 즉시, 영국-EU간 협상이 시작되며, 2년의 교섭기간이 주어진다. 워낙에 개별적으로 조율해야 할 사안이 많다보니 2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2년이 되면 협상은 자동적으로 중단된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배가 2년 안에 육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쉽게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다시 말해, 어느 범위까지 협상이 될지, 어떤 방향으로 협상이 나아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의회에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의회의 승인 없이 내년 3월한으로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스본 조항 제50조에서는 탈퇴를 결정한 국가의 의회승인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의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영국의회의 입장이다. 이 문제는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일단 고등법원에서는 의회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항고한 상황이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3월 추진을 자신하고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만약 의회승인이 필요하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브렉시트 문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막상 브렉시트라는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주저하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선거결과 지도(파랑 : 잔류 / 노랑 : 탈퇴)>
최근 브렉시트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재실시한 결과,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비슷하게 탈퇴의사가 잔류의사를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렉시트가 확정되었을 때, 여론의 동요가 클 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좋게 말하자면 시민들의 입장은 흔들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여전이 탈퇴의사와 잔류의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잔류의사가 압도적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브렉시트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스코틀랜드에서는 분리독립을 위한 투표를 치렀다가 반대가 앞서는 것으로 결론난 바 있다.
메이 총리가 말하듯, 브렉시트는 국민이 결정한 것인 만큼 결정된 사항을 정부가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브렉시트의 날갯짓이 대기중에 일으킨 나비효과가 미칠 영향력은 비단 영국이라는 테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미노처럼 유럽 각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우려는 이탈리아 국민투표 결과에서 다시 한 번 현실화되었다. EU를 견인하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의 연임이 마지막 보루라고까지 여겨지는 현 EU 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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