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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6 / 신뢰 문제(It's about trust problem, not money)여행/2017 북인도 2017. 3. 7. 00:17
마지막으로 릭샤에 올라타면서 남긴 카주라호의 풍경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카주라호의 동부와 남부사원군을 둘러보던 중 릭샤 운전수와 언쟁이 있었다. 사전에 오토릭샤를 탈 때 200루피로 협상했었다. 그런데 11곳의 크고 작은 사원을 순회하던 중, 운전수가 250루피를 달라고 돌변하는 것이었다. 한국돈으로 치자면 한 1000원쯤 될까. 얼마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J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중재할 틈도 없이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분명 열한 군데를 돌아보는 조건으로 200루피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는데, 왜 이제와서 말을 바꾸냐는 것이었다.
둘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J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인도사람이 고성을 지르는 것도 처음 봤다. 나는 여기서도 둘의 다툼에 끼어들지 못했는데, 영어 문제 뿐만 아니라 쪽수에서 이미 우리가 넷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분명 운전수가 200루피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사전에 영수증을 달랄 수도 없고..)
어쨌든 언쟁이 가라앉기는커녕 둘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둘을 진정시켰다. J는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신용을 가볍게 여기는 이곳사람들의 태도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에도 과하다 싶을 만큼 릭샤 운전수에게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가격을 관철시켰는데, 나 같으면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말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신용이든 뭐든 안전이 먼저였다. 그러니까, 신용까지 따질 만큼 언어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급급했다. 쉽게 말해 몇 푼 더 주더라도, 대개는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몇몇 뉴스로 회자되는 것만큼 인도가 위험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어찌 됐든 카오스 같은 곳인 것만큼은 분명했으므로...;; 반면에 J는 여행객 신분임에도 상대에게 안전 인상의 것(신뢰)을 바란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원칙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신용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J는 이런 부분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그라에서 네덜란드 여성의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눴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인도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 비지니스 마인드가 완전히 없는 이 사람들이 싫다며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행한지 만 이틀도 안 되었지만 J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말싸움이 끝나고 나머지 일행은 구경을 떠난 뒤, 나는 운전수와 단둘이 릭샤에 남아 잠시 얘기를 나눴다. J와 운전수 모두 흥분한 상태였지만, J는 그렇다 쳐도 운전수를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며, 너무나도 많은 릭샤 운전수들이 거짓말을 한다. 나는 분명 당신이 200루피로 합의한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나는 둘이 다툴 때 J의 편을 들지도 않았고, 당신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신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바란다" 능숙한 영어랄 수 없었지만, 운전수도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운전수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화가 가시지 않는 얼굴, 내 말에 잠잠해지는 얼굴, 고난에 찌들어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서글픈 얼굴이 뒤섞여 있었다. 보는 내가 착잡했다.
결국 출발지점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는 릭샤의 앞좌석에 내가 탑승했다. (그 이전까지는 J가 보조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명함에 새겨진 주소를 보여주며 호텔로 곧장 가달라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말싸움 뒤 릭샤에는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릭샤 운전수는 중간에 내리라며 우리를 끝까지 바래다 주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말 이 릭샤운전수와는 바이바이다. 거짓말을 두 번이나 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내가 주소를 정확히 일러줬고 20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아왔다고 소개했던 그 자신이 호텔의 주소를 모를리 없거늘,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호텔까지 다른 릭샤로 갈아타는 수밖에 없었다. 카주라호에 들어오기 전 굳이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식사하러 한 번 들러달라고 소개했던 호텔이었다. 호텔은 최근에 지어진듯 매우 깔끔했고, 정원도 잘 가꿔져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그 호텔 내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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