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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로 끝난 협상(協商)여행/2017 늦봄 제천-원주 2017. 6. 3. 02:08
대단할 것 없지만 J의 일을 몇 가지 도와준 적이 있다. J는 우리나라의 158개 지역을 모두 다 둘러본 한국여행 베테랑이다. 한국에서만 여행을 위해 오롯이 1년 넘는 시간을 보냈고, 대부분의 면에서 나보다 한국여행에 대해 훨씬 상세히 안다. (그가 제안하는 국내여행에 별 이견을 달지 않고 같이 다니는 이유다) 문제는 간단한 인사말이나 몇 가지 명사 외에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바라는 것은 조금은 엉뚱하지만 '한국 관광산업에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호주 국적에다 한국관광산업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J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는 태국보다, 한국이 더 관광산업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주변국 중국이나 일본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관광자원이 있는데도, 이 두 나라의 그림자에 가려 충분히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답답함을 호소(?)한다. (꼭 한류드라마나 K팝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반드시 차세대 먹거리로 관광산업을 육성해야한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로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무모한 발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여하간 그가 한국관광공사와 연락을 주고 받고, 일을 타진하는 데 있어서 중간에 간단한 도움들을 줬었다. 좀 귀찮을 뿐 그리 어려운 일들은 아니었다.
J로서는 '한국의 국립공원 정복하기'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치악산 하나만이 남았는데, 마침 한국관광공사의 본사가 원주에 위치해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J가 한국관광공사의 직원과 직접 대면하고 본인이 한국관광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축적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마케팅 측면에서 기여하고 싶은지 꼭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원주에 오게 되었을 때, 무턱대고 한국관광공사를 들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중간에 있는 입장에서 J에게도 여러 차례 설명했는데, J의 설명에는 구상은 충분한데 현실적인 제안방안은 부족했다. 물론 J처럼 한국을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닌 사람은 아마 우리나라사람 중에서도 몇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국관광에 지닌 경험만큼 중요한 것이, 마케팅 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사전 약속을 잡지 않았음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신 관광공사 직원이 지적한 사항도 대체로 그런 부분이었고, 덧붙여 행정력을 동원할 상황도 여건도 아닌 것 같았다.
다짜고짜 와서 (그것도 원주 본사까지 와서) 얼굴 좀 보고 싶다고 했으니, 직원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열정으로 충만해서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보는 J가 딱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분명 본인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를 뚫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후 3~4시쯤 되니 해가 더욱 따가워졌다. 우리는 목덜미에 후끈한 열기를 느끼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원주 중앙시장 방면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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