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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드라마/봉준호/루시, 낸시(틸다 스윈튼), 제이(폴 다노), 미자(안서현)/120>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봤다. 영화도 영화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 Pork
영화는 육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다. 오늘날의 인류는 기본적인 수준의 단백질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축을 기르는 것을 넘어, 대량으로 가축을 기르고 GMO도 서슴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영화의 도입영상에 소개되는 것처럼 전세계 70억 명의 인구 중 8억 가까운 인구는 식량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손쉽게 수많은 고기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말이다. 식량 과잉의 이 시대에 (게다가 비만이 문제되는 시대에) 누군가는 여전히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것이다.
때문에 루시가 슈퍼돼지에 대해 말할 때, 슈퍼돼지가 인류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발명품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장식으로 축산을 해도 근본적으로 식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2. Animal Rights
나는 개인적으로 '동물권' 자체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봤는데, 친구는 '동물권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봤다고 했다. ALF(동물해방전선)은 슈퍼돼지 옥자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미자를 이용한다. 또 옥자가 도살장에 갇혔을 때 발생할 여러 종류의 문제를 예상하면서도 작전을 감행한다.
'신념'은 ALF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신념을 저버린 구성원에서는 폭행이 가해지는가 하면, '실버'라는 멤버는 ALF의 신념을 지키고자 인위적으로 재배된 채소조차 거부한다. (그러다 탈진상태에 이르는 장면도 나온다.)
동물을 위해 투쟁에 나섰다고 하지만, 이들(ALF)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때로 자기만족을 위해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3. Generation Gap
오히려 가장 전통적 의미―먹을 만큼 채소와 동물을 기르는 것―에서 동물을 가장 사심없이(?) 대하는 것은 (비록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미자의 할아버지다. 미자의 할아버지는 먹거리로 쓰기 위해, 또는 생계에 최소한의 보탬이 될 만큼 가축을 기르는 것에 만족한다.
한편 미자는 오늘날의 비교적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 같다. 미자에게 옥자라는 존재는 '반려동물'이다. 물론 예전에도 집집마다 강아지를 기르기는 했지만, '친구'처럼 동물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ALF든 할아버지든 미자든 동물에 대해 '가치'를 두지만,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하는 문제에서는 차이가 있고, 과연 동물이라면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갸웃하게 만든다. 과연 동물이 동물다울 수 있게 하기 위해 인간이 개입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4. Etc.
영상이 참 아름답고, 디테일(한국사람들만 하는 행동을 틸다스윈튼이 여러 차례 묘사한다든가 조용한 지하철 역에서 '카톡'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나..)이 살아 있는 영화였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이전에 <괴물>과 <설국열차>를 본 게 전부지만, 소재나 주제가 늘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공통된 점은 늘 열린 결말을 남겨둔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상영관은 많지도 않은데, 뜬금없이 <옥자>를 봐야겠다는 친구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a-;;) 서래마을에 있다가 충무로까지 가서 본 영화다. 그래도 영화가 끝난 뒤에는 냉면에 수육을 시켜놓고 한 영화에 대해 곰곰히 되짚으며 신나게 떠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습한 여름밤을 시원하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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