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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9 / 텔아비브(Tel Aviv) : 바우하우스 탐방(Bauhaus Tour)여행/2018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018. 12. 12. 20:40
전날의 소란스러움이 온데간데 없이 평온한 로스차일드 대로
테라스에서 마주친 중창단
로스차일드가를 따라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
특색있는 벤치
텔아비브는 거대한 휴양도시이기 때문에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대한 도시에서 관광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에게 텔아비브는 단지 화려한 도시일 뿐 무엇을 들여다봐야할지 가늠하기 힘든 도시였다. 실제로 이미 텔아비브를 들른 적 있는 J나 티베리아스에서 만난 P도 뻔한 도시라고 했었고. 그래도 내가 텔아비브에서 꼭 수행해보고자 했던 미션(?)은 바우하우스를 탐방하는 것이었다.
텔아비브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구현한 3천 여개의 건축물들이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도시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봄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도시에 크고 작은 흰 건축물들, 특히 바우하우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의 일로, 도시의 마스터플랜이 구상되던 1930년대 독일의 바우하우스 스쿨에서 수학(修學)중이던 유대인들이 텔아비브로 넘어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최소한의 선을 강조하며 기능성과 경제성을 강조하는 바우하우스 이념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양식이 결합하면서 자체적인 활로를 모색하였고 이른바 하얀 도시(White City)라는 별칭까지 얻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뭐가 유적으로 등재된 건물인지 모른 채 돌아다녔다
아침의 텔아비브는 대단히 평화로웠다
어제 이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했던 것 같은데 이런 풍경이었구나..
아침이 되면서 시각적으로 무채색에서 유채색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청각적으로 소음에서 정적의 세계로 넘어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침해가 밝았는데 도시는 이렇게 조용하구나. 물론 토요일 아침, 게다가 샤밧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로스차일드 대로를 잠시 남서쪽 방면으로 걸어내려오다 북쪽으로 꺾이는 알렌비 대로―1911년 터키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에 개선(凱旋)한 영국군 장군 에드먼드 알렌비를 말한다―를 따라 쭉 걸었다. 이날 맨 처음 들르려는 곳은 바우하우스 센터라고 하는 안내센터였다. 텔아비브에서의 일정은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기 때문에 바우하우스 센터에 가서 지도라도 얻어올 생각이었다.
바우하우스 #1
바우하우스 #2
바이트 하이르(Beit Ha'ir)
한창 춤연습 중인 어린 학생들
센터를 들르기도 전부터 바우하우스 양식을 고스란히 구현한 건물들이 보였다. 안내센터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도보여행자를 위한 지도가 다 떨어졌단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으니 텔아비브의 시그니처(?)라 할 만한 몇몇 건축물을 추천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워낙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등재된 건물들이 많다보니 거리를 지나가는 족족 발견하게 될 거란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안내하는 사람이 성의없이 답변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센터 안에 마침 텔아비브의 바우하우스에 관한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물을 충실하게 담아낸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었는데 사진 아래에는 건축물의 이름과 주소까지 적혀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몇몇 건물들의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텔아비브의 이 지역 저 지역에 다 흩어져 있어서 도보여행으로 커버할 수 있는 동선이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바우하우스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도보투어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따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 텔아비브에 더 오래 머물렀더라도 투어를 신청했을 것 같진 않지만..) 결국 내가 목적지로 삼은 건축물은 기껏해야 두어곳으로 압축되었다.
안내 센터 내부
공복만큼 견디기 힘든 카페인 부족;;
카페 내부
저녁에는 바로 이용되는 곳인데 이름이 하도 독특해서 밤에도 와보고 싶었던..
잠시 휴식으로 충전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귀여운 멍멍이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계획이 뚜렷하지 않으니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찜해 놓은 몇몇 장소들을 제외하고 순간적으로 구상한 건 어제 미처 끝내지 못한 해변 트레킹(?)을 끝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제 거닐었던 해변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구(舊) 야파(Jaffa) 시가지에서 보그라쇼프 해변까지의 루트였다. 텔아비브의 해변을 대략 절반 정도 걸은 셈인데 절반이라고는 해도 해운대만한 백사장을 몇 번은 걸은 거리였다. 여하간 내가 떠올렸던 도보여행은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그러니까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야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구 텔아비브 항에서 보그라쇼프 해변까지 걸어내려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텔아비브의 지중해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길거리 조형물
여기가 인디펜던스 공원에서도 힐튼 호텔 근처
공원의 조각상
공원을 지나는 동안 멧시침(Metsitsim) 해변은 놓치고 힐튼 해변이 바로 나타났다
정박 중인 요트들
안내센터에서 구 텔아비브 항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는데 디젠고프 거리―마이어 디젠고프(Meir Dizengoff)는 지금의 몰도바 지역에서 태어난 정치인로 시오니스트이자 초대 텔아비브 시장을 지냈다―를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루트였다. 일반적으로 텔아비브라고 하면 먹을 거리나 놀 거리를 찾아 로스차일드 대로를 찾는데 나는 오히려 디젠고프 거리의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다. 보다 도시의 흥을 느끼고 싶다면 로스차일드 대로 일대에 가는 것도 좋지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디젠고프 거리도 좋다.
여하간 디젠고프를 따라 북쪽으로 가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늘 그렇듯 내 체력을 과대평가했다. 다리는 아프고 목이 말랐는데, 디젠고프 거리를 벗어나 구 텔아비브 항을 기점으로 야콘 거리로 유턴하니 상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쉬어다 갈 간이지점을 찾지 못한 채 힐튼 호텔까지 허덕이며 걸어왔다. (지중해의 바람을 받으며 백사장을 거닐어보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가까스로 어제의 종착지점이기도 했던 프라이드 센터로..-_-하..
지중해는 지중해구나
어제는 노을녁에 지나왔던 백사장
그래도 반갑기는 반갑구먼..
계획했던 대로 보그라쇼프 해변으로 되돌아왔을 때, 어제 저녁 눈여겨 봐두었던 라 메르(La Mer)라는 식당을 갔다. 커피 슬러시를 한 컵 마시고도 갈증이 가시지 않아서 오렌지 주스까지 시켰다. 이것만 해도 벌써 음식 한 끼 가격 이상이 나왔는데 어찌 됐든 점심을 먹을 시간이기도 했기에 가지 파니니를 시켰다. 그런데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던 남자직원이 갑자기 '안녕하세요'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멍하니 상대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자기가 한국에 산 적이 있단다. 보통 아시아 사람 안에서도 한중일 구분은 못하는 사람도 많던데..하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계속 말을 한다. (이제는 영어로) 자기 아버지가 외교관이셔서 한남동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다고. 너무 덥고 갈증이 나서 경황이 없던 당시에 상대의 인사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정작 흔해서 외우기 쉬웠던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점심은 이곳에서!(La Mer)
Maison Reisfeld(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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