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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생각보다 괜찮은 콤비였어일상/film 2018. 12. 28. 23:44
<그린북/드라마/피터 패럴리/토니 립(비고 모텐슨),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130>
비고 모텐슨의 연기가 이렇게 통쾌한 적이 있었던가. 원래도 거침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의 마초적인 개성이 단연 눈에 띈다. 흑인 음악가의 수행비서를 맡은 이탈리아계 백인이라는 재미있는 설정―실제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을 통해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까지도 미국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이 '그린북'이라 함은 당시 흑인들을 위한 여행지침서로 여행지에서 흑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 흑인이 드나들 수 있는 식당을 정리해 놓은 초록색 표지의 책이다. 차라리 팸플릿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이 단촐한 여행책자를 들고 두 주인공은 미국 동남부의 순회 공연을 떠나는데, 남쪽으로 향하면 향할 수록 흑인 음악가 돈 셜리는 평생에 시달려 왔던 정체성의 혼란을 다시 마주한다. 지식인이라는 까닭으로 흑인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의 주류사회로 진입할 수 없는 셜리가 있을 곳은 어디인 것일까. 자신을 규정짓기 위해 '다름'이라는 것 없이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상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시점으로부터 반 세기가 지났어도 각종 차별은 여전히 그대로이거나 더욱 심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명절을 보내는 토니 립의 가족이 돈 셜리를 환대하는 장면에서 우리 사회에는 마음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로맨스/소피 브룩스/다이애나(조쉬아 마멧), 벤(메튜 쉐어)/90>
로맨스 영화는 좀 오랜만인 것 같다. 구 남친이 세들어 사는 아파트에 주인공이 세들어 살게 된다는 다소 작위적인 컨셉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진솔한 연기가 충분히 울림을 주었던 영화였다. 전반적인 평점은 좋은 편이 아니고 왜 그런지도 대충 알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 얘기 같기도 해서 고민하면서 영화를 봤다. 점점 나이를 먹다보면 설렘이라는 느낌도 줄고 놀라움도 줄어들고 기대마저도 줄어드는 법인데, 왜 무던한 감정만큼 일은 순탄히 흘러가지 않는 것일까. 다이애나는 벤이 이사간 집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감정을 고백하지만 그녀의 용기는 진솔하지만 이기적이다. 여자와 남자의 감정선은 참 다른가보다. 괜히 싱숭생숭하다.
그런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
Tu poses pas trop de questions. C'est la vie qui te ré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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