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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 시장이 반찬여행/2018 일본 교토 2019. 1. 15. 00:33
이번 여행은 오로지 교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교토와 직결되는 하루카 열차로 환승했다. 여행을 준비한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미리 티켓을 예매해서 보다 경제적으로 교토에 이를 수 있었다. 교토역에 도착한 이후부터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교토 시내 이동수단에 대한 준비를 미처 못한 것. 사실 교토에 오기 전부터 이것저것 알아보기는 했지만 교통패스 체계가 워낙 복잡해서 아예 머리를 비우고 교토에 왔다;; 그리고 안내데스크에 가서 어떤 교통패스가 효율적인지 물어보고 최종적으로 패스를 하나 고르기는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전혀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
교토의 교통수단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 버스, 지하철, JR 또는 지상철, 란덴(노면전차). 마침 내가 들렀던 인포데스크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은 지하철을 안내하는 곳이어서 버스와 지하철로 커버할 수 있는 교통권을 권유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아라시야마도 그렇고 후시미이나리 신사도 그렇고 버스와 지하철만 이용해서 가라면 갈 수 있지만, 굳이 뱅 돌아갈 이유가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패스를 경제적으로 활용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속편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마다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다. 잔돈 세느라 버스를 오랫동안 정차시킨다고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일본은 '빨리빨리'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간 곳은 역시나 저녁식사 장소였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니조성의 동쪽에 위치한 아담한 동네로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이 거처로 삼는 곳은 아니지만―일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기온 일대 또는 히가시야마 일대에 거처를 두기 마련이다―일본 전통가옥에 머무르며 최대한 교토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서 상당히 큰 돈을 지불하고 고른 숙소였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교토의 숙박비는 거품이 너무 끼어 있다고 느낀 게 타카야마의 료칸보다 비용은 2.5배 지불했는데, 서비스는 그 절반도 안 된다. 교토 자체가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은 아니기에―더군다나 숙소로 개조할 만한 옛 가옥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도―빼어난 료칸은 손에 꼽는데 가격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1박에 100만 원 이상 수준)이기도 하다. 요지는 전반적으로 숙박비가 과도하게 상향평준화되어 있는 느낌.
이렇게 여행객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한 곳에 머무르다보면 누리게 되는 특전(?)이 보다 현지인처럼 여행기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저녁에 방문한 '킨킨 사무라이'라는 음식점은 이미 외국인들에게도 꽤 많이 알려진 장소였지만, 현지의 색채가 강한 레스토랑이다. 이 가게가 표방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모든 게 다 기억나진 않지만, 최대한 좋은 국산 재료를 쓰겠다는 것, 뜻(志)이 맞는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겠다는 것 등이 있다. 여하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첫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코스 요리에 사케 도쿠리 하나를 주문했다.
잠시 까먹고 있었던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옛 가옥을 최대한 그대로 남겨두고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떠받치는 나무들도 낡은 느낌이다. 중앙에는 불을 지피기 위한 이로리도 보이고 한켠에는 사무라이 갑옷이, 천장 벽면에는 사무라이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다다미가 깔리 이 공간을 동자승(?) 복장을 한 두 남성이 사뿐사뿐 걸어다니며 서빙을 하고 주문을 받는다. 그 중에 한 명은 매우 애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영어가 매우 유창한 것으로 보아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온 모양이었다. 일본사람이 그렇게 영어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이 친구가 좀 더 움직임이 많았기 때문에 주문을 위해 자주 불렀는데, 그 때마다 영어를 쓰기도 하고 일본어를 쓰기도 했는데 내 느낌 탓이지만 일본인의 얼굴에서 묘하게 묻어나는 빈정거림이 있어서 잠시 언짢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런 언짢음은 처음도 아니다. 도시로 가면 갈수록 인정은 각박해지고 외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보다 거리를 두게 마련인 법.
나는 맛에는 무척 둔감해도 재료에는 꽤 민감한 편인데, 그런 면에서 이곳 음식은 먹을 만 했다. 조미료가 들어가거나 과도하게 착색을 하거나 하지 않은 건강한 맛이었다. 식사 중간에 좀 더 손윗사람으로 보이던 또 다른 직원 한 명이 우리 테이블에 오더니 무릎을 꿇고 말을 꺼낸다. 대개 모든 테이블에서 사케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테이블을 다니며 나긋나긋 안내를 하는 듯 했는데, 무엇인고 하니 '간빠이~!!'의 옛말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야사카(共盛). 함께 융성하자는 의미를 지닌 이 구호를 옛날 사무라이들은 서로 잔을 기울이며 외쳤다고 한다.
샐러드를 내오며 청년은 또한 부언했다. 평균수명이 30~40대에 불과하던 시절, 많은 사무라이들은 절제된 생활을 통해 장수를 누렸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사무라이만의 독특한 식습관이라고 했다. 사무라이들이 즐겨먹었던 세 가지로 미역, 대두, 깨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모든 사무라이가 그랬다기보다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몇몇 사무라이들 중 그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조금 당황했던 것은 내 불찰로 인해 사케 주문에 혼선이 있었다는 점이다. 메뉴에 도쿠리라는 단어가 따로 적혀 있지는 않았고 ml 단위로 용량을 적어놓았는데 소주나 맥주 용량에 익숙해진 나머지 0을 하나씩 더 붙여서 읽은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작은 도쿠리 한 병이 나왔을 때 나나 아버지나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박카*만한 크기의 정말 작은 도쿠리였다. 가격도 저렴하지 않아서 이후로 한 도쿠리를 더 시킨 것을 제외하고 나는 맥주로 갈아탔다'~' 그래도 사케가 맛은 있었어서 사케의 이름을 기억해뒀으니, 이름하여 사카모토 료마! 술이름이 대개 거창한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인이름을 갖다 넣다니...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단풍 컨셉으로 한껏 꾸민 메인디쉬를 먹고, (녹차의 나라답게) 말차 맛이 나는 디저트를 먹음으로써 코스요리는 종료되었다. 우리에게 음식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던 젊은이는 문간까지 나와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설 때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기도 했었다.) 적당한 포만감을 안고 다시 숙소로 복귀, 다음날의 여정을 위해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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