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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폭포 산책(Promenade along the cascade)여행/2020 장마 안동 2020. 8. 7. 08:45
아주 가파르고 비좁은 절벽 틈에 자리한 용추폭포는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구간이기도 했다. 계곡물이 바위 사이를 휘감아 나오면서 깊은 굴곡을 만들어 놨다. 유생(儒生)들이 유식(遊息)을 하던 공간이라는 안내가 있는데, 이게 그냥 비유적인 표현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사람들은 통풍도 안 되는 옷을 입고 땀흘리며 이런 곳까지 어떻게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폭포수로 빠져나가기 전의 물줄기가 무서운 기세로 소용돌이를 그린다.
용추폭포가 어느 지역에서든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라면, 절구폭포라는 이름은 접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절구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샛길로 약간 빠져서 200 미터 가량 걸어들어가야 하는데, 용추폭포를 둘러본 사람들이 굳이 절구폭포를 보기 위해 막다른 길로 들어올 생각을 안하는 모양이었다. 진입로에서부터 두 번째에 자리한 이 아담한 폭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있었다. 그래서 주왕산에서 본 세 개의 폭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포천의 비둘기낭을 연상시키는 이 폭포에서 나는 혼자서 온전히 나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신발을 벗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가도 보고, 폭포를 사진에 담기 위해 이번에는 셔터스피드를 여러 가지로 다르게 써보았다. 오전에 궂은 날씨를 감내하고 청송까지 온 값어치가 있었다. 비가 온 뒤에는 수량이 늘어난 폭포를 구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것까지 계산하고 청송에 온 건 아니었지만, 절구통에 한 번 담겼다가 절구통을 쓱 헹구고 다시 빠져나오는 폭포수를 보니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마지막 폭포인 용연폭포도 등산코스를 약간 벗어나야 구경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인적이 더 드물어졌는데, 이미 두 개의 폭포를 보고 온 뒤여서 그런지 폭포의 규모로 보자면 주왕산에서 가장 큰 폭포임에도 불구하고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할 생각으로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다가 기왕 온 김에 상단에 있는 용연폭포까지 보려고 수고를 들여 전망이 좋은 곳까지 오르막길을 올랐는데, 실제로 하단의 폭포만 볼 때보다는 위에 올라서서 폭포를 보니 폭포의 규모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후리메기 삼거리에 이르는 길은 점점 더 인적은 드물어지고, 그 빈자리를 끈덕진 산모기가 채우는 듯했다. 주봉으로 이르는 길은 언제쯤 나오나 싶을 정도로 평탄한 길이 계속되었다. 계곡의 물줄기는 점점 가느다랗게 줄어들고, 그 물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봐서는 경사진 길을 오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바위가 깔린 곳에서는 계곡물이 졸졸 흐르다가도 유속이 급격히 느려지는 구간에서는 무거운 정적이 짙은 습도만큼이나 사방을 에워쌌다.
마침내 칼등고개를 앞두고 후리메기 삼거리에 다다랐다. 스위스의 그린델발트에 갔을 때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을 알리던 츠바이뤼치넨(Zweilütschinen) 역이 떠오르는 장소였다. 차이라면 그때는 양잿물처럼 석회질이 섞인 탁한 개울이 흘렀다면, 이곳의 물은 아주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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